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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방 경제는 언제나 천수답인가. 나라 경제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살기가 어렵다고 난리고 경제가 전반적으로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뒤늦게야 겨우 효과가 미치는 것이 지방 경제다. 우리와는 역사적 배경부터 많이 달라 비교하기가 쉽지 않지만 독일의 경우를 보면 우리의 지역 경제는 언제쯤이나 자립 기반을 하나둘 마련해 나갈지 또 하나의 국가적 과제다.모두가 걱정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이들은 수백 년 이상 내려온 서울 중심의 중앙집권적 정치 문화 때문이라고 한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나면 서울로”라는 근대 이후 사회적 성공 신화 때문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지방 경제를 활성화하고, 종합적으로 지방도 사람 살기에 넉넉한 곳으로 만들어 보자는 논의가 이전 정부 때 본격화되기도 했다. 균형 발전론이 그것이다. 지방의 경제가 뒤처지고 무기력한 것이 서울 등 수도권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과 무관할 수는 없다.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 균형 발전 정책은 실행이 쉽지 않은 구조였다.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논리와 정책 추진에서부터 무리수는 담겨 있었고 정책을 추진할 정치적 동력도 마련되지 못했다. 수도권을 직접 억누르며 공장 증설을 억제하는 식의 규제 강화 정책은 이래저래 실효를 내기 어려웠다. 수도권에서 투자가 어렵게 되자 지방 대신 중국 등 외국으로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니 지방으로서는 중앙정부에 떡 하나 달라는 식의 소극적인 지원 대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수도권 억제 논리는 급속히 위축됐다. 그렇다면 지방 경제의 활성화와 자립화는 답이 없는 과제인가.한국은행이 8월 후반에 발표한 ‘지방 경제 동향’ 자료를 보면 2009년도 2분기 들어 국가 경제의 여러 지표들이 상승세로 돌아섬에 따라 지방 경기도 덩달아 침체를 벗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분기 들어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건설 수주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1% 상승, 5분기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전분기 대비 주택 매매 가격도 0.3%로 플러스 전환됐다. 미분양 아파트는 3월 말 16만3000가구에서 6월 말 14만3500가구로 줄었다. 건축 허가 면적과 착공 면적도 상당히 개선됐다. 물론 지역별 편차는 상당히 컸다. 소비도 회복세를 보였다.문제는 지역이 경기변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불황의 충격만 고스란히 받는다는 점이다. 자립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돌파구가 없는 한 앞으로도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최근 홍성군청에서 열린 충남도·홍성군·일진그룹 간 투자 양해각서 체결은 이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지역 경제의 살길이 무엇이며,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또 한 번 보여준 훌륭한 사례였다.충남도와 홍성군은 서해안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지리적 입지를 활용하면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내세워 전력 통신 분야의 중견 그룹인 일진을 유치했다. 일진은 2015년까지 1조6000억 원을 투입해 3개 주력 계열사 공장을 홍성에 건립하기로 했다. 예정대로 입주하면 향후 6년간 2조 원 이상의 생산 유발 효과에다 1만 명이 넘는 고용 창출까지 내다볼 수 있다는 게 충남도 산하 충남발전연구원의 분석이다.지자체가 지방 경제의 활로 모색에 나선 곳은 또 있다. 최근 강원도 양구군과 신세계이마트의 농축산물 공급 협약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국 유통망을 가진 이마트와 거래하기로 하면서 양구의 농가는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했다. 물론 이마트는 ‘청정지역 강원도’라는 이미지를 양구산 제품에 얹어 팔 것이다. 전북 군산시는 울산에 기반을 둔 현대중공업의 새 조선소를 유치했고 지금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나비 축제’를 열어온 전남 함평군은 물 장사에도 나섰다.결국 지방 스스로가 활로를 찾아야만 한다. 시·도, 시·군·구 할 것 없이 지자체부터 낡은 인식의 틀을 깨고 전면에 나서야 한다. 지방의 대학과 기업도 함께 변해야 한다. 파주시와 경기도가 협력해 LG의 초대형 디스플레이 공장을 휴전선 인근 야산 지대로 유치, ‘접경지역’을 상전벽해로 만든 것을 보면 지역 경제를 위해 지자체가 경쟁에 나서고 총력전을 벌여야 하는 시대임을 입증한다. 충남도-홍성군-일진의 투자 협약이 다른 지자체에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다.허원순·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