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경영대학장 좌담회

한국의 경제 규모는 12위권에서 오르내린다. 기업들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대학은 갖고 있지 못하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대학의 현주소다.하지만 최근 대학들 스스로 대대적인 혁신에 나서면서 머지않아 세계적 수준을 갖춘 대학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특히 대학의 간판 단과대학으로 부상한 경영대의 변신은 눈부시다. 물론 걸림돌도 있다. 우선 정부의 규제가 곳곳에서 발목을 잡는다. 대학 내의 환경도 그다지 좋지 않다.그렇다면 정부, 대학본부, 대학 구성원들은 국내 대학, 특히 경영대학(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한경비즈니스는 국내 주요 대학 경영대학장과 싱가포르국립대(NUS) 부학장의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지난 6월 24일 서울 프라자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원래 우수한 인재들은 학부에서 인문학 등 기본 학문을 주로 배워야 한다. 그리고 직장 경력을 2~3년 쌓은 후 대학원에서 경영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남학생들은 군대도 갔다 와야 하므로 졸업하는데 6~7년의 시간이 걸린다. 실제로 학생들이 사회적 성공을 향해 더 나은 가능성을 보려면 경영학이 빠른 길이다. 안타깝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경영학이 사회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도 비슷하다. 많은 학생들이 공학 등 다른 학문보다 경영학을 전공하려고 한다. 기업들은 효율성을 가진 인재를 원한다. 경영학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는데 가장 적합하다. 그만큼 기업은 가시 트레이닝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학생들도 장기적인 커리어를 고려할 때 경영학을 전공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우리는 학생들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록 도와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볼 때 취업 위주의 교육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첫 직장을 잘 얻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능력을 가르치지만 경제와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어제 학교에서 배운 기술이 오늘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학생들이 경영학의 개념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도록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실행하는 것이다. 우수한 인재를 교육할 환경은 충분하다. 그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대학만큼 교수들의 배경과 수준이 높은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러 가지 규제로 인한 제약 조건 때문에 대학 스스로가 안주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문제는 재원이다. 재원만 확충된다면 국내 10개 대학은 세계적 대학이 될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우리나라와 기업이 갖고 있는 세계적 경쟁력에 비해 대학의 경쟁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역설인 것이 세계적 기업을 만들어 낸 것은 우리가 배출한 인재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질과 능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기업이 인재 재양성에 투자 없이 급한 대로 마구 이용했다고 본다. 급성장할 때 급하게 써먹는 형식의 인재 양성, 개발 방식을 우리 재벌들이 아직 가지고 있다. 아직 우리 대학들이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모순이지만 그 원인이 기업의 인재 채용 방식에도 있다. 지금 대기업의 사원 채용, 교육 방식이 20~30년 전에는 매우 성공적인 모델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처럼 교육이 시스템화 돼 있고 시장이 변화한 상태에서 그것이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동기부여가 잘 돼 있고 능력 있는 우수한 인재가 경영대에 들어온다. 이들은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인재이므로 사회적 책임 의식, 역할을 강조해서 교육해야 한다. 만일 이런 점이 간과된다면 뛰어난 인재라고 하더라도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교육과정에 이를 반영하고 있는지 적어도 현시점에서 봐야 한다. 말하자면 지속 가능한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경영학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식과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대학의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예를 들어 연구 성과 등을 가장 중요한 척도로 본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인재를 공급하느냐의 문제에서 볼 때, 연구 성과보다 '배출한 학생들이 사회를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재능과 덕성을 가졌나'로 경쟁력을 분석해야 한다고 본다. 우수한 교육 환경을 위해 대학을 혁신하려고 해도 교육부가 정한 법규로 인해 자율성이 떨어진다. 경영대는 경쟁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혁신을 하려고 해도 대학본부의 규제 때문에 막히기 일쑤다. 예를 들어 학생 정원, 선발 기준, 교수의 강의량 등 경영대 차원에서 뭔가 자체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힘든 구조다. 규제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탓을 하지만 실제로는 대학 내부의 규제가 더욱 발목을 잡고 있다. 대학 내에서 산술적인 평등이 문제다. 즉, 인문대와 경영대는 처한 환경이 매우 다르다. 경영대는 치열한 경쟁에 놓여 있고 인문대는 안정적 상황에 처해 있는데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한국의 대학 수준은 매우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현시점에서 국제화 경쟁력을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다. 한국 대학들이 국제화되지 않은 것은 약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최근 아시아 대학들은 본격적으로 국제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영대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옳다고 본다. 하지만 미국 쪽은 말할 것도 없고 홍콩과 싱가포르에 비해서도 5년 정도 뒤처졌다. 속도를 내서 따라잡아야 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재원 문제도 있지만 돈이 있어도 이를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한 제약이 많다. 우리는 시장 상황에 맞게 싸워야 하는데 내부 시스템에 맞추라고 하니 어려운 점이 많다. 예를 들어 경영대 교수의 채용과 월급 체계는 시장이 임금을 결정하는데 현재 다른 단과대와 같은 기준에 따라야하니 불합리한 점이 있다. 우리 사립대보다 국립대인 서울대가 겪는 어려움이 더 클 것이다. 서울대 경영대를 분권화 경영 체제로 만들어 파일럿 모델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자율과 책임이 같이 가는 학사 단위로서 성장해 갈 수 있다.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경영대는 이들을 국가에 도움을 주는 이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결국 이 과제에 대한 역할을 먼저 큰 대학이 수행해야 하는데 현재 구조적으로 서울대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대에 걸려 있는 규제의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다. 그런 식으로 한번 시도할 수 있길 바란다. 경영대에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할 것이다. 책임은 물론 잘 운영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와 함께 관련된 다른 기초 학문과 상생하는 방법 등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같은 것을 실험적으로 시도해 보면 경영대 혼자 살겠다는 방안이 아니라 타학문과 같이 발전하는 모델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두 가지다. 정부가 그동안 MBA를 제도적으로 허가해 주지 않았다. 국내 대학에 MBA과정이 설립된 지 3~4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업들의 채용 방식 탓도 있다.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채용 시장이 있지만 그 이후 제2차 채용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 그래서 MBA 졸업생들의 취업을 위해 추가적으로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사회인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바꾸기 위해 MBA에 가고 이 때문에 MBA가 발달하게 됐다. MBA가 활성화되면 학부 학생에게 조금 더 인성, 리더십, 사회적 가치를 유지 발전시키는 교육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기능적인 능력을 학부 학생에게 요구하니 MBA도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학부에서는 기형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다. 풀타임(주간) MBA가 활성화되면 우수한 인재들이 학부 때 경영대에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공학이나 인문학으로 골고루 분배되고 학부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직장 경력을 가진 후 MBA에서 더 나은 인재로 발전한다. 정부와 재계가 풀타임 MBA가 정착되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 대학이 교육기관이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업은 대학이 우수 인재를 미리 걸러주는 장치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기업들이 대학에 기대하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 결과 기업들은 지원자가 어느 명문대를 나왔느냐에만 관심을 두고 대학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때의 상황이 아직도 재현되고 있다고 본다. 지금 한국 경영대 사이에서 국제화는 가장 중요한 이슈이고 다음 단계를 밟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은 매우 빠른 속도로 학습하고 발전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 방식을 경영대의 국제화에 적용할 수 있다. 무엇이 국제화 경영대의 모델인지는 분명하다. 모든 세계 톱 경영대들은 공통점이 있다. 한국의 경영대가 발전시켜야 할 점은 첫째, 연구 능력을 늘리는 것이고 둘째, 수준급 MBA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야 한다. 한국 학생만을 위한 MBA는 의미가 없다. 외국 학생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MBA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 한국 대학인 외국인들에게 배타적이지 않는가라는 의견이 있다. 배타적이라기보다는 대학을 국제화하기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 자체가 안돼 있다. 학교생활을 하는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고 외국인들에게 잘 보이는 문제들이 많은데 이를 고치지 못하고 있다. 대학 평가 지표 중에 외국인 학생 수가 얼마인지가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일부 대학들은 외국인 학생을 많이 받아들이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외국인도 하나의 시민과 학생으로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인 학생과 교수의 수만 늘린다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무엇을 선행해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 국제화를 위한 인프라 부족의 사례를 들자면 현재 경영대의 행정 직원은 영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 학생과 교수에게 서비스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전체적으로 보면 행정 직원이 영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한편 외국인 학생에 맞는 기숙사 시스템이 없어 직원들이 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방을 구해 주기도 한다. 작은 것까지 국제화를 이뤄야 한다. 외국 학교의 경우 서신 발송은 교수를 대신해 행정 직원이 수행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한구겡서는 직원이 영어를 할 수 없으므로 교수가 직접 서신을 써야 한다. 국제화는 행정, 교육, 연구가 다 같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교수는 국제화됐다고 하더라도 행정이 따르지 못하면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 우리 기업들이 MBA 졸업생 채용 시장을 열면 그 후 5년 안에 세계적인 MBA과정이 나올 것이다. MBA 졸업생 채용 시장이 열리면 한국 학생뿐만 아니라 외국의 인재, 특히 아시아의 인재들이 국내 MBA에 몰려 올 것이다. 경영대 간 경쟁의 척도를 입학생의 수능 성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MBA 시장에서 얼마나 잘 하는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 재계·학교·교육부의 3박자가 어울려 변화가 시작되면 5~10년 안에 세계적 MBA가 탄생할 것이다. 지금도 사실 교육과 연구에 관해서는 세계 수준급 학교에 하나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의 수준이 갖춰지는 순간 규제도 자율적으로 풀릴 것이고 시장에서 수요가 발생하면 모든 조건을 갖추게 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한국 경영대에 하고 싶은 말은 한국 대학은 규모·수준·야망 등으로 볼 때 아시아 경영학 발전의 리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중국의 경영대학은 아직 많이 뒤처져 있고 홍콩은 잠재성이 있지만 규모가 너무 작은데 비해 한국은 진보적이므로 가장 적합하다. 단, 외국에서 언어 문제 때문에 한국에 오기 힘들다. 이러한 상황을 한국 대학들은 알아야 한다.사회= 김상철 한국경제신문 사회부장참석자: 안태식 서울대 경영대학장,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 박상용 연세대 경영대학장, 쿨원트 싱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 부학장.정리= 이진원 기자 zi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