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2’ 삼성경제연구소 vs LG경제연구원

국내 기업 연구소들 중 가장 큰 규모로 꼽히는 것이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이다. 규모에 있어서는 연구 인력 250명 수준의 삼성경제연구소가 100명 연구 인력의 LG경제연구원을 압도하지만 23세 동갑내기인 이들은 재계 맞수인 모그룹의 위상에 걸맞게 경쟁하며 성장하고 있다.이들 두 연구소는 비슷한 면이 많다. 모두 1986년에 설립됐다. 당시 증권 열풍이 불면서 대기업들이 증권사 부설 경제연구소를 잇따라 세우던 때였다. LG경제연구원이 4월생으로 조금 빠르고 뒤이어 삼성경제연구소가 7월 출범했다. 10월에는 현대경제연구원이 뒤를 이었다.태생도 비슷하다. LG경제연구원은 당시 럭키투자증권 조사부 인력을 중심으로 럭키증권이 100% 출자한 자회사인 (주)럭키경제연구소로 출범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맞아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민 경제 발전을 목표로 그룹 직할 조직으로 위상이 한 단계 올라섰다.삼성경제연구소도 최초 출범은 삼성생명 부설 연구기관으로 설립했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다부치 세쓰야 일본 노무라증권 회장을 만난 뒤 설립이 추진됐다. 일본의 대표 싱크탱크인 노무라종합연구소(NRI)가 벤치마킹 대상이었다.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은 당시 연구소 이름에 ‘동방’이라는 이름을 어떻게든 넣으려고 했지만 한국의 대표 싱크탱크를 꿈꿨던 이 전 회장은 ‘삼성경제연구소’로 명명했다. 1991년 ‘주식회사 삼성경제연구소’로 독립 법인이 됐다.초기 경제연구소들에서 지금과 같은 위상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초기에는 연구소가 계열사들의 기획부서장들에게 연구 과제를 문의했지만 대리급 사원이 알아서 적어 보내는 식이었다. “하려면 하고 알아서 하라”는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다.삼성경제연구소 연구조정실의 신현암 상무는 “보통 연말에 연구 과제를 물어봐도 6월이 지나면 상황이 항상 달라지게 마련이어서 연구 보고서가 별 의미가 없었다. 그 후에는 6월과 11월 연간 두 차례 물어보는 것으로 바꾸기도 했다”고 전했다.1990년대 들어 두 연구소는 그룹 내 연구를 탈피, 외부 경영 컨설팅에 나선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990년 경영 컨설팅 사업에 진출했고 LG경제연구원도 기업 및 정부 부처, 학교, 공공기관 등의 다양한 고객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수행하며 국내 업체로는 드물게 지명도 있는 컨설팅 업체로 성장했다.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들이다 보니 이들 연구소의 역량은 쑥쑥 커나갔다.삼성경제연구소의 신 상무는 “내부 계열사들을 컨설팅하면서 축적된 경험을 통해 의미 있는 메시지들을 많이 뽑아낼 수 있었다. 처음 내부 컨설팅 때는 정치적 또는 다른 이유가 작용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컨설팅에서도 현장의 목소리를 70~80% 전달하고 고유의 메시지를 10~20% 전달하게 됐다”고 얘기했다.서울올림픽에 이어 국내 기업 연구소들에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시기를 전후해 또 한차례 거듭나는 기회가 찾아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터넷의 태동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996년 10월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다음해 7월부터 연구 자료 데이터베이스(DB) 서비스를 개시했다. LG경제연구원도 1997년 5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했다.홈페이지를 통해 자료들이 공개되면서 이들 연구소들은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IMF 구제금융은 경제연구소가 싱크탱크의 역할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됐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역량을 집중했다.LG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 김영민 실장은 “당시 많은 기업이 사회적 부담만을 남긴 채 몰락하고 건실하다고 평가받던 기업도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LG의 자회사를 한층 탄탄하게 성장시키는 것이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연구원은 계열사들의 주요 사업의 경쟁력 강화, 신사업 창출 등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LG경제연구원은 LG그룹의 지주회사 출범 과정에서 이론적 뒷받침과 조직 운영 구상에 이르기까지 큰 그림을 그렸고 기업의 중·장기 발전 전략, 사업 구조조정, 신사업 전략 수립 등을 수행해 오고 있다.반면 삼성그룹은 1998년 출범한 구조조정본부가 싱크탱크를 맡으며 삼성경제연구소는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측은 “국가 부도의 상황에서 개별 기업들의 경쟁력만을 연구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이후 국가적 이슈와 정책을 연구하면서 외부로 발언을 시작했다”고 전하고 있다.지난해 상반기 국제 유가가 150달러를 위협하며 고공행진할 때 삼성경제연구소는 하반기 유가 전망을 60~70달러로 예측하며 당시의 분위기와 정반대의 보고서를 냈다. 골드만삭스가 200달러를 예상하던 때였다. 결국 지난해 하반기 경제 위기와 함께 국제 유가는 5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올해 4월 유동성 장세가 벌어졌을 때 삼성경제연구소는 펀더멘털 회복이 더딜 것이라며 경기 회복에 대한 회의적 시선을 보냈다. 그 어느 학자나 애널리스트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무게감이 더 느껴졌다.반대로 LG경제연구원은 기업 내부를 파고드는 것에 집중했다. 김영민 연구조정실장은 “기업을 가장 잘 아는 싱크탱크가 LG경제연구원의 강점이다. 현업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기업에 적용 가능한 실용적인 리서치와 최적의 솔루션 도출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현업과의 인적 교류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주요 산업별 전략, 마케팅, 인사, 연구·개발(R&D) 부문에서 이론과 실전을 겸한 균형 잡힌 인재의 육성에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LG그룹은 전자 화학 텔레콤 상사 유통 등 주요 계열 기업에 연구원 출신의 임직원을 포진하고 현업 출신의 임직원이 연구원으로서 현업에서의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의 이러한 차이는 조직 구성에서도 잘 나타난다. LG경제연구원은 전자전략실 화학전략실 통신전략실 인사조직연구실 경영연구실 경제연구실 금융연구실 미래연구실 연구조정실의 총 9개 조직으로 구성된다. 전자 화학 통신 금융 등 산업별로 연구 조직이 구성돼 현업과의 교류가 가능하다.반면 삼성경제연구소는 거시경제실 경영전략실 공공정책실 지식경영실 인사조직실 기술산업실 글로벌연구실 중국(베이징)사무소 연구조정실의 총 9개로 구성된다. 거시경제, 공공 정책, 지식 경영, 글로벌 등이 LG경제연구원에는 없는 부문이다. 반면 기술산업실은 하나로 구성된다. 물론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 인력이 LG경제연구원의 2.5배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연구 역량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지난해 삼성그룹이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하면서 삼성경제연구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룹 내 싱크탱크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산업의 트렌드 분석과 신사업 발굴이라는 과제가 그것이다. 이와 함께 2005년 중국 베이징에 상주 인원 20명 규모의 사무소를 개설하며 글로벌 경제연구소로의 레벨업을 꿈꾸고 있다. 연구조정실 신 상무는 “중국은 통계 자료가 미흡하고 전달이 늦기 때문에 직접 가서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