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연중 특별기획:기업가 정신이 희망이다

‘파산 직전에 죽어라(die broke).’ 1998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 제목이다. 재산의 절반을 세금으로 바치느니 다 써버리고 죽는 편이 낫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다 써버리고 죽으면’ 그 결과는 무섭다. 자본이 줄고 일자리와 노동자들의 소득에도 악영향을 준다. 상속세는 폐지가 정답이다. 대신 상속받은 재산에 대해 소득세 성격의 세금을 매기면 그만이다.상속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자손을 남기고 번창하게 하는 일은 모든 생물에게 주어진 위대한 본능이자 과업이다. 그 본능 덕분에 지구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명들로 가득 차 있고, 또 지속적으로 새로운 종들이 등장하기도 한다.인간도 마찬가지다. 수만 년 전 들과 산을 헤매며 풀뿌리를 캐먹고 짐승을 잡아먹던 인류가 오늘날과 같은 안전과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된 것도 그 본능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이룩해 놓은 많은 것들을 자손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에 인류는 발전의 역사를 거듭할 수 있었다. 많은 지식과 기술과 부가 부모로부터 자식으로의 상속 과정을 통해 쌓여 나갔다.자식에게 남겨주려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본능이면서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자기가 이룩한 것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었다면 사람들은 뭔가를 이룩하려고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상속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능과 외모와 성격 같은 것들이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물려지듯이 재산도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상속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상속되는 재산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생각은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퇴역 군인을 위한 퇴직금 재원을 찾다가 사람이 죽으면 재산을 남긴다는 사실에 착안해 상속세를 도입했다.하지만 상속세라고 하더라도 요즘과는 상당히 달랐다. 지금은 상속세가 부자가 자식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는 일을 막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지만 로마시대의 상속세는 단순히 정부의 재원을 조달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것도 자식과 배우자에 대한 상속은 면세였다. 혈족이 아닌 사람에게 상속할 때만 5%의 상속세를 매겼다.근대에 들어와 네덜란드와 영국 등에서도 상속세가 들어오지만 동기는 로마와 마찬가지여서 단순히 정부의 재정을 조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했다. 재산의 상속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재산이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상속되는 것을 막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상속세가 ‘부의 세습’을 차단하는 장치로 바뀐 것은 19세기 말 사회주의 열풍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쓴 장 자크 루소 같은 학자들이 평등 세상의 이상향을 부르짖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결국 모든 인간이 완전히 평등한 공산주의 사회가 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가 오기 전까지는 다른 노력이 필요한데, 세금을 누진으로 매기고 재산이 대를 이어 물려지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속은 불평등을 영속화하고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나쁜 행위라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져 갔다. 나라들은 저마다 서둘러 상속되는 재산에 대해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우리나라의 상속세도 그런 시대사조의 산물이다. 세상 대부분의 나라가 상속세를 시행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한국인에게는 강점이자 단점인 하나의 특징이 있다. 외국 것을 받아들일 때 좋은 말로 하면 철저히, 그러나 나쁜 말로 하면 교조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송나라에서 시작된 주자학이 중국에서보다 조선에서 더 철저했고 사회주의 역시 러시아나 중국보다 북한에서 더 철저하다. 우리가 외국의 상속세를 받아들였지만 지금 우리의 상속세는 세계에서 가장 화끈하다. 상속세 역시 외국의 제도를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최고의 세율을 자랑(?)하고 있다.필자가 글로벌프로퍼티가이드닷컴(globalpropertyguide.com)에 나온 123개국의 데이터를 확인한 결과 71개의 나라에 상속세가 없었으며 상속세를 가진 나라는 52개였다. 상속세가 없는 나라의 세율을 0%라고 할 때 123개국 전체의 상속세 평균 최고 세율은 9%였다. 상속세가 있는 52개국만 평균하면 21%로 나왔다. 반면 한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다. 일본 대만 미국과 함께 단연 세계에서 가장 높다.게다가 경영권 상속에 대한 상속세율은 단연 한국이 세계 최고다. 대기업 경영권 상속은 30% 할증률이 적용되기 때문에 결국 65%의 세율이 적용되는 셈이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도 이렇게 높은 세율은 없다.오히려 다른 나라들은 경영권이나 가업 상속을 다른 재산의 상속보다 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개인 기업의 사업용 재산, 파트너 회사 지분, 주식회사의 지분 중 25% 이상의 지분의 경우에는 22만5000마르크의 기본 공제가 제공되며, 기본 공제를 초과하는 경우 상속 증여 재산 가액의 35%를 추가 공제해 준다. 영국에서도 사업체, 사업체 관련 지분 및 비상장회사 지분, 경영권이 있는 지분 등을 상속하는 경우 여러 가지의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 상속세로 인해 경영권이 증발하거나 또는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들이다. 어떻게든 경영권의 상속을 막으려는 우리나라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상속세가 세상을 좋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많은 문젯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여러 나라들에서 상속세가 폐지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상속세의 가장 큰 문제는 자본 형성을 막는다는 것이다. 자본이 풍부해야 생산성이 높아져 노동자 임금도 올라간다. 우리가 외국 자본을 유치하려고 하는 것도 자본이 풍부해져야 일자리도 늘어나고 임금도 오르기 때문이다.불행히도 상속세는 저축할 의욕을 떨어뜨리고, 그 결과 자본 형성을 방해한다.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후에 편히 살려는 것도 있지만 자식에게 좋은 것을 남겨 주기 위한 목적도 크다. 물론 자식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욕구는 돈을 벌고 저축하는 큰 이유일 것이다.그런데 상속세는 그 저축을 뺏어간다. 평생 저축해서 남겨 놓으면 결국 국가에 상속세로 빼앗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저축 욕구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나 하나 잘살기 위한 것이라면 사람이 지금처럼 열심히 살 이유가 없다.자식에게 좋은 것을 남겨 주겠다는 생각 때문에 안 쓰고 안 자면서 돈을 모으는 것이다. 상속세는 그런 부모의 행동을 바꾼다. 돈을 남기기보다 죽기 전에 그 재산을 다 써버리게 만든다. ‘파산 직전에 죽어라(die broke).’ 1998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 제목이다. 재산의 절반을 세금으로 바치느니 다 써버리고 죽는 편이 낫다는 내용이다.하지만 ‘다 써버리고 죽으면’ 그 결과는 무섭다. 자본이 줄고 일자리와 노동자들의 소득에도 악영향을 준다. 또 미국 의회의 합동경제위원회가 상속세에 대해 내린 결론처럼 부자들의 소비가 늘어나 오히려 위화감이 더 커질 수도 있다.경제에 끼치는 ‘상속세의 악영향’은 경영권에서 더욱 크게 나타난다. 상속세율이 50%일 경우 단순한 재산은 세금을 내고 난 후에 50%가 남을 것이다. 그러나 경영권은 50%는 세금 내고 50%만 상속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주식을 처분해 상속세를 낼 경우 지분율이 줄어들어 더 이상 최대주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된다면 경영권은 아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편법이나 탈법을 통해 상속세를 줄이려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내기 싫다는 뜻보다 경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절박함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그나마 상장회사라면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잃기는 하겠지만 회사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상장 기업은 상속세로 인해 해체될 수도 있다. 미국의 상속세 폐지 논쟁에 불을 붙였던 게 바로 이런 이유였다.물론 우리나라 소기업들이 기업을 해체해 가면서까지 정직하게 상속세를 납부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가 많은 편법과 탈법에 기초해 있듯이, 비상장 가족 기업들이 대를 이어 가족 기업으로 유지돼 갈 수 있는 배경에는 아마도 더 큰 편법, 탈법이 숨어 있을 것이다. 높은 상속세율에도 불구하고 대를 이어 기업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경영권의 상속이 차단돼 나타나는 효과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기업을 키우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들은 어렵사리 키워 놓은 기업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발전하길 원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것은 자식에게의 상속을 통해 이뤄진다. 경영권의 상속이 어렵다면 기업을 키우려는 의욕도 줄어든다.다행히 중소기업의 경영권 상속은 가업 승계라는 이름으로 너그럽게 봐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가고 있다. 세법상으로도 여러 가지의 감면 조항들을 마련해 두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욱 가혹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상속세법이다.기업의 규모가 다르다는 것 외에 대기업의 경영권 상속이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와 다를 것이 없다. 더구나 글로벌 대기업들의 경우 상장 주식의 상당 비율을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기관투자가들이 의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음을 생각해 본다면 대기업의 경영권 상속을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보다 불리하게 다뤄야 할 이유가 없다. 대기업의 경우 2세에게 주식을 넘겨주더라도 최종적으로 그 2세가 경영권을 가질 수 있을지 여부는 주주총회의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보다 무능한 2세가 경영권을 가지게 될 가능성은 낮다.미국 의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상속세로 인해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 상속세의 세수와 거의 맞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도 아마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많은 곳에서 상속세 폐지가 구체화되고 있고 학자들도 상속세 폐지 운동 대열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밀턴 프리드먼과 버넌 스미스, 조셉 스티글리츠 등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그렇고 그 밖에도 그레고리 맨큐, 앨런 블라인더, 하비 로센 같은 경제학자들이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도 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상속세 폐지의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필자도 상속세가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속세를 폐지하자. 그렇게 해서 평생 이뤄 놓은 것이 본인이 원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넘어가는 일을 막아야 한다. 특히 상속세로 인해서 경영권이 희석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그렇다고 해서 상속받은 재산에 대해 세금을 전혀 내게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상속을 받은 사람은 소득을 벌어들인 것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소득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상속받은 재산에 대해 소득세 성격의 세금을 납부하게 하는 것이 공정하다. 세금 부담을 지면서 경영권이 사라지는 일도 막는 방법은 상속 재산을 자본이득 과세로 다루는 것이다. 경영권을 처분할 때 그동안 본 이익 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이다.만약 상속세를 폐지할 수 없다면 상속세의 최고 세율을 소득세와 동일하게 35%로 내리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지배주주의 지위를 상속할 경우에 적용되는 30% 할증은 폐지해야 한다. 폐지에 그치지 않고 독일이나 영국에서처럼 오히려 감면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상속세로 인해 기업의 지배 구조가 바뀌는 것은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부모의 지능과 키와 운동신경 같은 능력을 상속하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재산과 경영권을 상속하는 행위도 자연스럽다.1956년 서울 출생. 1979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88년 미 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2000년 숭실대 법학 박사. 1990년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1997년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 2004년 자유기업원 원장(현).김정호·자유기업원 원장 kch@c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