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7일 경상남도 창원시 두대동의 ‘더 씨티 풀먼 앰버서더 호텔’ 그랜드 볼룸. 전국의 여성 경영인 360여 명이 모인 ‘2009 전국 여성 CEO 경영연수(주최 중소기업청, 주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후원 경상남도)’는 여성 경영인들의 저력을 어렴풋이나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식전 행사가 끝나고 내빈이 소개되는 순서. 가장 먼저 소개된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지금은 기업하는 사람이 애국자다. 여성이 이 척박한 땅에서 기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며 여성 경영인들을 독려했다.이어 단상에 오른 권경석 의원(경남 창원갑)은 “행정고시, 사법고시 등에서 여성이 석권하고 있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는 여성 파워가 석권할 것”이라며 “남자의 특성과 여자의 특성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네 시간에 걸친 강사 세 명의 강의가 시작됐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들락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보통의 워크숍이 강의보다 사교와 여흥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경우도 많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너무나 진지했다.엄숙한 분위기는 저녁 만찬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이완되기 시작했다. 행사장을 다시 방문한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건배 제의에 이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큰 키에 미남인 김 지사가 여성들 앞에서 인기 몰이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행사가 개최되는 장소의 광역단체장들이 노래 한 곡을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그간의 관례라고 한다. 이어 홍석우 중소기업청장 등 또 다른 내빈들의 노래가 이어졌다.행사의 백미는 각 지역 지회에서 준비한 장기 자랑 순서. 회원들에 따르면 어떤 지회는 이를 준비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모여 연습했다고 한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경쟁이 붙어서 더 잘하려는 의욕들이 대단하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얘기였다. 참가팀 대부분은 대표로 한두 명이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가 적당히 박자를 맞추는 정도였지만 다섯 팀 가량은 범상치 않은 의상과 몸짓으로 좌중에 폭소를 안겨주기도 했다. 마치 소풍 나온 여고생처럼 나이를 잊은 ‘여사장님’들은 마냥 흥겨운 분위기를 즐겼다.여성들만 모여서인지 워크숍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남성들이 다수인 워크숍이었다면 공식 행사는 요식 행사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자리를 옮겨 여흥을 곁들인 식사에 이어 2차, 3차가 새벽까지 이어지겠지만 이날 행사는 공식 석상에서 밤 10시 넘게까지 이어졌다. 물론 그 뒤 비공식 행사가 이어진 것도 사실이다.다음 날 아침 9시, 정시에 모두 자리에 앉은 참가자들의 모습에서 전날 밤 풀어진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날 첫 참가 때의 모습처럼 모두 정장 차림에 깔끔하게 화장을 한 모습이었다. 9시 5분부터 예정된 강의가 다시 시작됐다. 한 회원은 “이렇게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것이 여성의 힘”이라고 강조했다.현재 국내 여성 기업인들의 수는 약 107만 명(2006년 말 기준)으로 전체 사업자(약 320만 명)의 35%를 차지한다. 여성 경제활동인구 증가 추세에 힘입어 여성 경영인 비율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지만 기업 규모는 여전히 영세하다. 종업원 수 5인 미만의 여성 기업이 전체의 92%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개인 기업이 98.3%, 회사 법인이 1.4%로 개인 기업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그러나 남성을 위해 희생해야 했던 구세대 여성 경영인과 달리 신세대 여성 경영인이 대거 배출되면 이런 경향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남성들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했고 오히려 사법시험, 행정고시 등에서는 더 뛰어난 자질을 보일 때가 많다. 이미 검찰, 법원의 신입 검사·판사 절반 이상이 여성일 정도로 이들이 중견으로 성장하는 10년 뒤부터는 ‘폭탄주’ 문화로 대변되는 남성 위주의 분위기가 확 바뀔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마찬가지로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여성이 많아지고 국내 산업에 기여하는 비중이 커지면 여성 문화가 남성 위주 문화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불과 10년 뒤면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여성과 공존하는 법을 만들어 가야 할 때다. 여성 기업인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