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마음 따로 노는 호주

“호주는 몸은 중국에, 마음은 미국에 묶였다.”이코노미스트지가 최근호에서 빠른 속도로 중국의 경제 영향권 하에서 들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을 아시아의 보안관으로 여기고 있는 호주의 딜레마를 보도해 주목된다.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호주는 중국의 경제성장과 산업혁명의 혜택을 가장 명확하게 보는 국가다. 호주산 석탄이 중국의 발전소들을 달구고 있고, 지난해까지 중국은 철광석을 비롯해 각종 호주산 광물들을 끊임없이 소화해 냈던 것. 중국은 이제 호주의 명실상부한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이 된 것이다.여기에 최근의 경제 위기가 호주의 대중국 의존도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큰 흐름 자체를 바꾸기엔 이미 늦었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전망이다.이처럼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호주는 글로벌 경제 위기를 돌파하는 탈출구 역시 중국에서 찾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4조 위안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을 때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아주 아주 좋은 뉴스”라며 손뼉 치고 좋아했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상상도를 그렸다.하지만 이처럼 중국과 호주 간의 경제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지만 정치 관계까지 덩달아 밀접해지는 것은 아닌 상황. 역설적으로 대중국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캔버라의 호주 정계에선 ‘반중국’ 감정이 쉽게 감지되고 있다.근본적으로는 서구인의 시각에선 매우 독재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의 각종 정책들이 ‘보통’ 호주인들의 공분을 사기 쉽기 때문이다.게다가 중국의 경제성장이 호주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함께 온다는 점이 문제를 키우고 있다. 중국이 단순히 호주 원자재의 구매자가 아니라 지역을 지배하는 ‘총을 든’ 뒷골목 형님으로 부상하고 있는 점이 호주 정계 관계자들의 중국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돋우고 있는 것이다. 이제 호주 최대의 잠재적 위협은 인도네시아의 ‘보트 피플’이 아니라 중국이란 점은 분명해졌다.이에 따라 호주 정부는 지난 5월 2일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대비한다며 대대적인 군비 확장을 선언하며 대외적으로 중국과 각을 분명하게 세우는 강공을 폈다. 2030년까지 해군과 공군의 전투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투함과 전투기, 잠수함 등을 대대적으로 구입하고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도 보유하겠다는 것.구체적으로 총 1000억 호주 달러(약 95조 원)를 들여 잠수함과 F-35 전투기 100대를 증강 배치하고 사거리 2500km의 크루즈미사일 기지를 새로 건설하기로 했다. 차세대 잠수함 12척도 새로 갖춰 호주 전 해안에 대한 경계도 강화하기로 했다. 호주 정부는 “미국이 더 이상 호주를 지켜줄 수 없다”며 “이제 중국과 인도 등 역내 주요 군사 대국들로부터 우리를 스스로 보호할 때”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군사 강공책에도 불구하고 침체를 겪고 있는 호주 경제는 점점 중국의 영향권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서 중국 자본은 호주 광산 업체 지분을 보유 내지 확대하는 움직임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호주 일각에선 “중국 정부가 계획적으로 호주 경제를 파멸시키려고 한다”는 음모론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분야에서 중국의 호주 접수를 막겠다는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결국 호주 정부는 지난 3월 중국 민메탈(우쾅그룹)이 호주 광산업체 OZ미네랄을 인수하는데 제동을 걸고 나서며 급한 불은 끈 형국이다.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문제가 계속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으로 호주 경제 중심이 급속히 아시아권으로 편입되고 있는데 비해 호주의 안보는 여전히 미국 중심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 모순 현상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게다가 호주가 미국과 중국 양편 모두에 속하거나 중립을 취할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도 제약으로 다가오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는 호주가 자체 군사력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자신만의 정확한 역할을 찾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미국이란 보안관이 사라지고 중국의 힘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호주가 어떤 행보를 취할지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김동욱·한국경제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