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트레이드의 귀환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가 돌아왔다. 투자자들은 금리가 낮은 미 달러화와 유로화 엔화를 빌려서 금리가 높은 브라질 헝가리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 등 이머징마켓 통화를 사들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몰리면서 지난 3월 이후 달러화 대비 가치가 12%가량 올랐다. 저금리 통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 자산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는 지난해 가을 리먼브러더스의 붕괴 이후 안전 자산 선호 현상으로 인해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최근 시장의 공포가 잦아들고 이머징마켓을 비롯해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재개되고 있다. 특히 금융 위기 이전엔 주로 호주 뉴질랜드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국가의 통화들이 캐리 트레이드 대상이었지만 최근엔 이머징마켓 통화들로도 자금이 움직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일부 투자회사들은 캐리 트레이드 전략이 ‘매력적’이라며 추천하기 시작했다.캐리 트레이드의 귀환은 선진국들의 과감한 금리 인하와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이머징마켓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가 머지않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란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데일 토마스 인사이트투자자문 외환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경제는 지금 변곡점에 와 있는 것 같다”며 “달러를 팔고 이머징마켓 통화를 사들이고 있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일본이나 미국의 정책금리는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반면 인도네시아 기준금리는 연 7.5%, 브라질 11.25%, 러시아는 13%에 달해 (환율에 변화가 없을 경우) 금리 차에 따른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일례로 1.13%의 3개월물 달러 표시 리보(런던은행 간 금리)에 돈을 빌려 브라질에서 10.51%의 이자를 지급하는 3개월짜리 예금에 넣어둘 경우 환율이 불변이라면 연 수익률은 9.38%에 이른다. 3개월물 달러 표시 리보는 리먼 사태 이후 지난해 10월에 4%를 넘어섰지만 최근엔 1%대로 낮아졌다. 그만큼 차입비용이 줄어든 것이다.환율 변동 폭이 크게 줄어든 것도 캐리 트레이드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선진 7개국(G7) 환율 변동성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치를 반영하는 JP모건 내재변동성지수는 리먼 사태 이후 지난해 10월 27%까지 치솟았으나 최근 14%대로 떨어졌다. 골드만삭스는 이달 초 보고서에서 “외환 변동성이 정점을 찍었다는 신호들이 늘고 있다”며 “캐리 트레이드가 다시 매력적인 전략이 될 수 있는 여건들이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9개월 전인 2007년 9월부터 금리 인하에 나서기 시작했다. 스탠더드 라이프 인베스트먼트의 앤드루 밀리건 글로벌 전략 헤드도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는 정부의 추가 발표가 나오고 경제활동이 개선되면서 환율 변동성은 계속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그러나 아직 낙관하긴 이르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변동성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UBS의 제프리 유 외환전략가는 “환율 변동성이 고점을 찍었지만 여전히 상당한 불확실성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머징마켓 통화에 집중하는 캐리 트레이드 전략은 새로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금융 위기 이전의 캐리 트레이드는 일본의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고금리이면서도 안정적인 호주나 뉴질랜드 달러 표시 자산 등에 투자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투자자들은 엔화나 미 달러화를 빌려 인도네시아 루피아, 브라질 헤알, 러시아 루블화 등 이머징마켓 통화에 주로 베팅하고 있다. 금융 위기 이전 캐리 트레이드 투자에선 얼마나 많이 빌릴 수 있느냐(레버리지)가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열쇠였다. 그렇지만 금융 위기 이후 신용 위축으로 이 같은 레버리지가 축소됐다. 대신 더 높은 금리를 쫓아 이머징마켓 통화에 베팅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 웨스트팩 은행의 숀 칼로 투자전략가는 “전통적으로 아시아 통화들은 호주나 뉴질랜드 통화에 비해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투자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했다.박성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psw@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