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여성고객 마케팅
“지갑을 열려고 하지 말고 핸드백을 열어라.”경기 불황에 여성 고객들을 겨냥한 마케팅이 붐이다. 여성들의 구매력이 클 뿐만 아니라 ‘입소문’을 통한 제품 홍보에도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여성 소비자들이 비(非)생활필수품 구매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 기업들이 매출을 늘리기 위해 제품 개발과 홍보 전략을 여성 고객들의 취향에 맞게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펩시코의 자회사인 스낵 회사 프리토-레이는 최근 감자칩과 팝콘이 단지 맥주를 마시는 남성 스포츠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여성 고객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여성만의 세상에서(Only In a Woman’s World)’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미용에 신경 쓰는 여성들을 위해 칼로리를 낮추고 섬유질 성분을 강화한 신제품을 내놓는가 하면, 여성들이 손가방에 쉽게 넣고 다닐 수 있도록 1회 분량의 개별 포장으로 바꾼 제품 등을 출시했다. 또한 여성 블로그 사이트 등과 연계해 여성들끼리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기도 한다.미국 내 2위 사무용품 회사인 오피스맥스는 여성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트와 파일 홀더 등의 디자인을 바꾸고 여성들에게 자신들의 공간을 보다 ‘컬러풀하게’ 바꿀 것을 권유하는 광고를 시작했다. 또한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날드는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에게 새로운 음료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지난 2월 처음으로 뉴욕 패션 주간에 스폰서로 나섰다.컨설팅 회사 베인&컴퍼니의 에릭 알므퀴스트 글로벌컨슈머인사이츠 부문 대표는 기업들이 경기 불황을 계기로 여성 고객들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막강한 소비 주체라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여성들이 식품의 90%, 가전제품의 55%, 신차의 상당 부분을 구매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그런데 불황이 닥치면서 기업들이 여성 고객에 대한 접근 방식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씨티은행과 필립스 등의 기업 고객에게 ‘여성 마케팅’을 조언해 주는 컨설팅회사 쉬스픽스(SheSpeaks)는 불황이 시작된 이후 고객 수가 3배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일부 여성 잡지들도 생전 광고를 하지 않던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혜택을 보고 있다. 실제로 란제리나 화장품 등 여성용 소비 제품들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견조한 판매세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이색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영국의 란제리 전문 업체 ‘아장 프로보카퇴르(Agent Provocateur)’는 지난해 매출이 8% 늘어난데 이어 올해도 추가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화장품 역시 ‘작은 사치재’로서 좀처럼 불황을 타지 않는다.여성들이 구매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외에 기업들이 여성 고객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고 이코노미스트지는 분석했다. ‘여성들에 대한 마케팅’이란 책의 저자 마르티 바레타는 “여성 고객들이 충성도가 더 강하고 브랜드가 마음에 들면 해당 브랜드를 계속해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또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좋아하는 제품에 대해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나 입소문으로 정보를 퍼뜨리길 좋아한다. 덧붙여 지금까지의 구조조정은 제조업 건설업 등 주로 남성 근로자들이 중심을 이루는 분야에서 진행됐다. 이는 향후 여성들의 소득이 가계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물론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이 모든 기업에 향상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강한 남성 지향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브랜드가 여성 고객을 끌어들이려고 섣불리 애쓸 경우 단기적인 매출 증대 효과는 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쉐가 여성들을 위해 디자인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출시했을 때 판매가 일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남성 고객들은 포르쉐가 ‘남성적’이라는 이미지를 손상시켰다는 점 때문에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박성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psw@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