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과천의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스스로를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은 몇 년씩 공부해도 합격하기 어렵다는 행정고시를 대학생 때 조기 합격한 사람, 수석 또는 차석으로 통과한 사람, 사시 외시까지 동시 패스한 사람 등이 한 과(課)에 두세 명씩 포진해 있을 만큼 기본적으로 재능이 뛰어난 관료들의 집단인 것은 사실이다.그래서인지 재정부 관료들은 지난해 3월 10일 겪었던 ‘참담한’ 수모를 아직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한 부처 업무 보고 자리에서였다. 이 대통령은 재정부 공무원들에게 “위기가 와도 공무원은 감원이 되나, 봉급이 안 나올 염려가 있나. 출퇴근만 하면 된다”는 질타를 서슴지 않았다.또 “슬림하게 조직을 개편하라니까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잉여 인력을 한 방에 모아 놓았다”며 “이렇게 편법적으로 하니까 ‘모피아(옛 재무부를 뜻하는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재정부 관료들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재정부 공무원들은 당연히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한 과장급 공무원은 “정신 차리라는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섭섭했고, 앞으로 이런 공무원관(觀)을 가진 대통령과 어떻게 일해야 하나 싶어서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꼭 재정부뿐만은 아니었다. 집권 초 이 대통령은 공무원 사회 전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오랫동안 기업인으로 일하면서 공무원들에게 많이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공무원 앞에서 항상 ‘을(乙)’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 기업인의 시각으로 보면 관료 집단은 현장은 모르면서 탁상공론만 하고, 툭하면 계파를 만들어 상전 노릇이나 하려고 드는 사람들로 비춰질 수도 있다. 각료 인선에서도 이 대통령은 ‘탈관료’ 지향을 분명히 했다. 전통적으로 모피아가 장악했던 금융위원회의 첫 수장으로 우리금융지주회사 부회장 출신의 전광우 전 위원장을 앉히고 지식경제부 장관에도 민간인(이윤호 장관)을 임명한 것이다.이 대통령의 공무원관에 조금씩 변화가 엿보인 것은 지난해 5~6월 서울 도심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집회’를 거치면서부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싼 이른바 ‘광우병 소동’의 와중에서 위기관리에 능하고 국정에 중심을 잡아주는 공무원 사회의 역할에 눈을 뜬 것이다.지난해 6월 5일 고위공직자와의 대화에서 이 대통령은 “공무원은 개혁의 대상이 아닌 주체다. 위축되거나 불안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 집권 초 매섭게 질타하던 것과는 정말이지 180도 달라진 모습에 공무원들은 안도했다.특히 ‘모피아’는 1년 새 지옥에서 천당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해야 할 만큼 집권층 내부에서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정부 요직 곳곳에 옛 재무부 출신들이 중용됐다. 금융위원장으로는 정통 모피아계인 진동수 전 재정경제부 차관이 왔다. 경제 부처 수장인 재정부 장관에는 재무부 금융 라인의 대부 격인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을 앉혔다.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포진한 청와대 경제수석까지 합치면 경제팀 삼각편대가 모두 ‘모피아’로 채워졌다.실국장급에서도 재정부 관료들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싶을 정도로 호시절을 보내고 있다. 재정부 차관 두 자리는 모두 내부 출신(허경욱 1차관, 이용걸 2차관)이 한 계단씩 올라섰다. 뒤따르는 1급 인사에서도 예산실장에 류성걸 예산총괄심의관, 기획조정실장에 김교식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대책본부장에 이성한 대외경제국장 등이 차례차례 승진했다.육동한 경제정책국장은 국무총리실 국정운용실장으로, 최종구 국제금융국장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단장으로, 장영철 공공정책국장은 미래기획위원회 단장으로 각각 임명됐다. 앞서 김근수 국고국장은 국가브랜드위원회 단장으로 선임됐다. 재정부 국장 대부분이 내부에서 1급으로 승진되거나 외부의 1급 상당 자리를 꿰찬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지난 1년간 경제 위기 대응에 밤낮없이 일했는데 승진이라도 잘 돼야 사기가 오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