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보고 들어왔다가 상사 때문에 나간다.’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꼈을 법한 말이다. 실제로 여러 조사를 보면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상사와의 갈등 때문에 사표를 썼거나 쓰고 싶은 충동을 가져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과반수의 직장인들이 상사를 폭행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 적도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보면 상사와의 관계는 직장 생활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임에 분명하다.하지만 아쉬운 것은 한국의 직장인들 가운데 상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직장의 프렌드십 점수는 100점 만점에 52.4점에 불과하다. 낙제점이다. 그중에서도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프렌드십은 절망적인 수준이다. 상호 존중감은 49.6점, 신뢰감은 51.7점, 상호관계의 양은 47.8점에 그쳐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10명 중 6명은 현재의 상사와 다시 일하고 싶지 않다며 넌더리를 냈다.더욱 곤혹스러운 사실은 상사 때문에 직장 안에서 프렌드십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응답자가 상당히 많았다는 점이다.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상사의 존재’는 14%의 응답을 얻으며 직장 내 프렌드십 구축을 방해하는 요인 중 2위를 차지했다. 상사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지만 상사 때문에 직장 생활 전반이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상사가 아니라 ‘원수’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문제는 요즘 같은 불황일수록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프렌드십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적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상사들이 부하 직원들을 챙기기보다 압박하는 빈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하 직원들의 불안감이 더욱 증폭돼 상사와의 바람직한 관계를 구축할 필요성을 느끼는 직장인도 불어나게 마련이다. 이런 분위기는 출판가에서도 이미 감지된다.살림출판사의 이남경 편집인은 “직장 내 인간관계나 상사에 대한 대처법 등은 불황일수록 수요가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며 “관련 도서가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상사와 좋은 관계를 맺으며 서로 이익이 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술자리에서 상사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헐뜯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직장인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마당에 상사를 술자리 안주로만 삼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의 성장을 돕는 파트너로 관계를 재구축해야 한다.직장 상사를 ‘원수’에서 ‘동료’로 삼기 위해서는 상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능력 있고 관대하며 부하를 끌어주는 진정한 상사는 사실 이상에 불과하다. 상사들이 모두 이렇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고민할 이유도 없다.그러나 나쁜 상사를 모시고 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다. 아무리 나쁜 상사라고 하더라도 접근하기에 따라 좋은 상사 노릇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접근할 것이냐’일 뿐이다. 구본형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장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나쁜 관계”라며 “상사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맺는 시작”이라고 조언한다. 무작정 ‘나쁜 놈’이라고 매도하기보다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라는 얘기다.구 소장의 지적은 최근 리더십학에서 각광받고 있는 ‘팔로워십(followership)’과 일맥상통한다. 팔로워십은 리더십의 상대적 개념으로 이끄는 자가 아니라 따르는 자들을 연구한다. 하버드대 존 F 케네디 스쿨의 대중리더십센터 강사인 바버라 켈러만은 나쁜 팔로워와 좋은 팔로워를 구분하며 좋은 팔로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좋은 팔로워는 주변 동료와 상사의 추천을 받는 직원, 상사의 지시에 호불호를 명확히 하는 직원이다. 좋으면 적극 협력하고 나쁘면 나쁜 이유를 대고 개선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업무의 효율이 높아진다. 반면 나쁜 팔로워는 ‘불만을 위한 불만’을 일삼는다. 조직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는 2009년을 맞는 부하 직원의 자세는 결국 ‘좋은 팔로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윈-윈하는 상사-부하 관계, 다시 말해 신상사학이다.김현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좋지 않은 상사라고 하더라도 그를 성공시키는 데 기여해야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중국의 고사가 있듯이 상사를 비난하기보다 건전한 방식으로 뒷받침하는 팔로워십을 발휘하는 것이 현명하다”며 “리더십과 팔로워십을 결합해 프렌드십을 강화한다면 회사가 불황을 극복하는 데에도, 자신이 성장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황일수록 팔로워십의 효과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는 얘기다.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