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하는 경영권 승계 논란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은 그것이 없었을 경우에 비해 한 국가의 경제성장에 실질적인 차이를 가져온다. 전화나 자동차, 비행기를 만들어 낸 획기적 혁신의 예는 말할 것도 없다. 반도체나 자동차산업 부문 등에서 발현된 기업가 정신이 없었다면 변방에서 세계 1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한국 경제의 기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기업가 정신의 발현은 사회제도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기업가 정신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유익하게 나타나는가는 사회제도적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경제에서의 보상 시스템이 변화함에 따라 기업가 정신을 소유한 자는 자신의 행동이 보다 많은 결실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가령 고대 로마의 장수들이나, 마피아 범죄와 탈세에 협력하는 변호사들도 기업가 정신을 갖고 있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새로운 형태의 사업 구조나 조직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그들의 기업가 정신은 중국과 이탈리아 경제의 생산성 혁신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한국의 경우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제도와 사회적 관점이 기업가 정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기업 경영은 전문경영인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오너 경영자가 훌륭한 경영 성과를 내더라도 그것을 예외적인 현상으로 치부한다. 오너 경영을 위축시키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실증적 연구 결과를 보면 전문 경영이 오너 경영보다 훌륭한 경영 성과를 낸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돈이 직접 투자된 회사이기 때문에 느끼는 오너 경영자의 책임감과 집중력이 긍정적 성과로 이어지는 사례는 흔히 발견된다.기업의 오너십도 분산된 것이 바람직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또 기업을 가업으로 승계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대기업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생각인가. 한국 사회는 잘못된 생각으로 불필요하게 오너 경영을 죄악시하고 이들을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우선 기업의 오너십은 분산된 것이 바람직하고 선진국은 모두 오너십이 분산돼 있다는 주장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소유권이 집중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소유권이 분산돼 있는 것이 예외다. 벨기에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의 경우 상장기업의 80% 이상이 특정 지배 주주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1주는 1표만 행사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주장도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러한 주장의 허점이 나타난다. 가령 주가 차익을 위해 일시적으로 주식을 보유한 단기 투자자의 1주와 기업을 창업하고 여기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기업가의 1주가 동일한 취급을 받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그 어느 나라보다 민주주의가 발달된 프랑스는 차등 의결권을 보장하고 대개의 기업이 2∼4년간 주식을 소유한 장기 보유자에게 1주 2표를 주는데 이것은 불합리한 것일까. 유럽집행위 의뢰로 행해진 2005년 조사에 의하면 유럽 상장 300대 기업 중 35%의 기업에 차등 의결권이 도입돼 있다. 피라미드나 상호출자, 혹은 순환출자 또한 각 국가들이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주주 자본주의자의 시각에서 볼 때 각국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기업가 정신의 고양이다. 기업을 창업한 자가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것은 기업을 성장시키고 자본금을 확대해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일이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상장이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는데, 이는 또한 창업자의 지배권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창업자는 기업의 상장을 꺼리게 되는데 차등 의결권은 바로 이 과정에서 도입된다. 누구보다 기업을 잘 알고 애정을 지닌 창업 기업가의 지배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성장에 필요한 자본금을 사회로부터 조달하고자 하는 두 개의 목적이 상호 충돌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차등 의결권이 도입된 역사적 배경이다. 공공의 선을 위해 사회와 기업이 타협하는 셈이다.이렇듯 오너 경영은 각 국가의 현실이고 오너 경영의 유지와 기업 외부에서의 자본금 확충을 통한 기업의 성장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대부분의 나라가 차등 의결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오너 경영이 마치 후진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주식이 분산돼 있는 미국이나 영국 사회의 특수한 경험을 각 국가의 일반적인 현상인 것처럼 착각한 데서 오는 오류임에 불과하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영향력이 확대된 외국 자본과 금융 투자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포된 논리로 봐야 할 것이다.상속세제 문제 또한 유사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상속증여세율이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한다. 많은 나라가 상속세를 자본 이득세로 대체하거나 폐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고세율 50%와 50% 이상 대주주 지분이 상속될 때 30%의 추가 할증이 더해짐으로써 무려 65%의 상속세가 부과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합법적인 상속이 이뤄질 경우 가업의 승계는 거의 불가능하다.상속세에 대한 한국에서의 찬반론을 살펴보면 마치 소유 경영을 둘러싼 논의처럼 미국에서의 논리가 판박이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고율의 상속세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부의 집중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든가 부의 세습은 각 개인에게 보장되어야 할 동등한 기회를 방해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하지만 독일로 눈을 돌려보면 사회적 형평이 강하게 추구되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부인이나 자녀가 상속을 받을 경우 세를 면제해 주거나 매우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상속세에 대한 최고세율은 15∼38%였으며 최저세율은 2∼7%에 불과했다. 최고세율이 한때 77%에 달했던 미국보다 상속세에 대한 태도가 훨씬 관대하다. 상속세는 가족의 가치를 훼손하며 상속세의 부과는 결국 가문과 가족을 파괴하고 가문의 재산에 대해 국가가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가족 기업의 승계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이들 기업이 경영 성과를 통해 사회보험이나 세금을 바탕으로 사회보장제도의 유지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훨씬 바람직하다고 본다. 세계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초일류 중소기업의 수가 500여 개에 달하는 독일의 경쟁력을 만든 것도, 또 이러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가업을 중시하는 것이다. 퀀트 가문이 BMW를 지배하고 BMW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었던 것도 관대한 상속세제에 힘입은 오너 경영에서 비롯된다.100년 만에 불어 닥친 경제 위기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고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기업가 정신의 발현이 요구된다. 우리의 제도적 환경과 이를 뒷받침하는 지배적 관념이 우리와 환경이 판이한 미국의 특정한 논리를 그대로 모방함으로써 우리의 기업가 정신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왜 한국이나 미국보다 훨씬 더 사회 정의와 형평성을 추구하는 독일이나 프랑스가 오너 경영과 차등 의결권을 당연시하고 낮은 상속세율을 채택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국민과 정부가 패밀리 비즈니스를 사랑하고 이를 국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기업 스스로도 사회에 지금보다 더 큰 관심을 갖는다면 좋을 것이다.김용기·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ykim@seri.org©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