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시위’

중국 남부 둥관에서 완구를 만들어 오던 카이다 공장. 11월 25일 밤 이곳은 무법천지로 바뀌었다. 이 공장을 운영하던 홍콩 기업이 근로자들을 해고하면서 7년 이상 근로자에게는 1030위안(20만6000원),7년 이하 근로자에게는 770위안(15만4000원)의 퇴직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하자 부당하다며 근로자들이 들고 일어난 것. 2000여 명의 근로자들이 공장으로 몰려갔고 이 가운데 500여 명은 공장에 난입, 사무실 기물을 집어던지고 유리창과 컴퓨터를 파손했다. 이어 출동한 진압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찰 차량 5대를 파손했으며 이 과정에서 5명이 다쳤다.중국 대륙이 민란(民亂)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급격한 경기 둔화로 거리로 내몰리는 근로자가 급증하고 살기 힘들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회 불만이 경찰차를 방화하며 공권력에 대항하는 과격한 모습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하지만 경기의 급격한 둔화로 생계형 시위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칭다오시의 버스 운전사들은 지난 11월 17일 계약 기간 연장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고, 광둥성 광저우에서는 불법 영업을 하는 승용차에 대한 단속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택시 운전사들이 집단 시위를 벌였다. 10월 말 충칭에서도 9000대의 택시가 일시에 정지했으며 하이난성 싼야에서도 택시 운전사들이 시정부 청사에 몰려가 불법 영업 택시 단속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특히 미국발 금융 위기로 5년 만에 두 자릿수 고성장 시대가 마감되면서 주룽지 전 총리의 성장 위주 노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강하다. 2003년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취임하면서 내건 질적 성장론과 허셰(和諧: 조화) 사회론이 최대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후 주석은 과열 성장해 온 중국 경제의 속도를 늦추면서 환경오염, 에너지 다소비, 노동자 착취, 저부가가치 생산, 가공무역 등을 서서히 퇴출시키고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는 쪽으로 경제 노선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 위기가 이 같은 접근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의 공장에서 ‘식물공장’으로 변해버린 중국의 제조 허브 광둥성 등에서 벌어지는 잇단 과격 시위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광둥성에 있는 중국 경제특구 1호인 선전에서만 올 들어 해고된 인력이 5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최근 6개월간 중국 전역에서 발생한 대형 시위만도 10건 이상에 달한다.이 때문에 매년 두 자릿수 상승을 해오던 최저임금 인상을 동결하고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는 등 주룽지 시절에서 볼 수 있던 친기업 정책까지 등장하고 있다. 광둥성 정부는 광저우~주하이 간 경전철 등에 2조3000억 위안(460조 원)을 쏟아 붓기로 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내수를 진작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룽지식 성장 모델로의 회귀는 아니라는 게 중국 정부의 메시지다. 환경오염 등 질 나쁜 기업의 도태는 계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중국 정부는 그 대신 공격적인 재정 지출 확대와 함께 9월 이후 4차례나 금리를 인하하는 통화 팽창 정책까지 동원하고 있다. 11월 27일부터 적용된 중국의 금리 인하 폭 1.08%포인트는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발했던 1997년 이후 최대 폭이다.이 때문에 경착륙 리스크의 정치 리스크로의 점염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의 집단 시위는 △빈부 격차 확대와 △부패한 관료들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면서 크게 늘어왔는데 여기에 △미국발 금융 위기가 기름을 얹은 형국이 돼버렸다. 멍 부장이 “국제 금융 위기가 사회 안정에 야기하고 있는 새로운 도전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한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IMA아시아가 중국의 정치 리스크 등급을 저급에서 중급으로 상향 조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IMA아시아는 건설과 수출 기업에서 해고에 직면한 수많은 민공(농촌 출신 도시노동자)들의 잠재적인 소요 사태를 우려했다. 유엔개발기구(UNDP)도 미국과 유럽의 경기 둔화 때문에 수출로 먹고 살아 온 아시아 지역에서 소요 사태가 촉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루에 1.25달러로 생활하는 빈곤층(세계은행 기준)이 아시아에만 9억 명에 이르고 경기 둔화로 실업이 늘게 되면 이들이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것. 이들에 대한 강력한 사회 안전망을 갖추지 못하면 거리에서 많은 시위를 보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 한가운데 중국이 있는 것이다.더욱이 유엔은 최근 발표한 ‘중국의 인간개발지수’에 대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극심한 빈부 격차가 소비와 생산성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유엔은 국민소득과 의료 복지 등을 종합해 산정하는 인간개발지수에서 상하이와 베이징 등은 유럽 국가와 비슷한 반면 구이저우 같은 농촌 지역은 가장 후진적인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와 나미비아 수준으로 낙후해 있다고 지적했다.정치적 민주화 지연으로 권력에서의 소외, 사회 불평등 심화 같은 문제점이 점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정부가 공무원의 부패 방지에 힘쓰는 것도 부패가 주민들의 불만을 부채질해 사회 불안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최근 4조 위안(800조 원)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한 직후 이들 자금이 제대로 집행되는지를 살피기 위한 감찰단을 각 성에 파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 잇따른 것도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선량이 아니라 공산당이 임명한 관리들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 때문이다.지난 11월 17일과 18일 간쑤성 룽난시에서 일어난 과격 시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민 2000여 명은 공산당 청사를 약탈하고 당 위원회 간부들과 경찰을 향해 돌과 화분 등을 던지고 쇠파이프와 도끼를 휘둘렀다. 이 시위로 차량 11대가 불에 타고 경찰과 공무원 60여 명이 다쳤다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11월 19일 시위는 멈췄지만 이는 간쑤성 정부에서 비상 진압 부대를 긴급 파견한데다 오후 10시 이후 통행금지 조치를 취하고 모든 도로의 통행이 제한된 때문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번 시위는 룽난시가 재개발 계획을 변경하자 당초 예정지의 지역 주민들이 반발해서 일어났다.이 지역 주민들은 재개발 계획에 따라 임시 주거지에서 살고 있었으나 이 계획이 변경되면서 닭 쫓던 개꼴이 됐다며 들고일어난 것. 평소 신망을 얻지 못했던 지방정부의 변심(?)에 자극 받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진 사태 복구 기금으로 청사를 짓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만은 더욱 커져 갔다.하지만 중국 정부가 경기 위축으로 사회 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사회 안정을 깰 수 있는 민주화 조치에 선뜻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국의 민주 개혁은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는 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국에서 벌어지는 집단 시위가 과거 황건적의 난처럼 지역에서 전국 단위로 확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 정부가 파룬궁을 그토록 억제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사회 불만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그러나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000달러를 초과할 내년에는 과거 한국 등 다른 개도국의 사례에 비춰볼 때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여건이 무르익을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중국에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결단까지 요구하는 의외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