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사막②

랜디 포시 ‘마지막 강의’내가 열두 살이고 누나가 열네 살이었을 때 우리 가족은 올랜도의 디즈니월드로 여행을 떠났다. 누나와 나는 용돈을 모아 부모님에게 감사의 선물을 사드리기로 했다. 우리는 가게에서 도자기로 구운 소금 셰이커와 후추 셰이커를 10달러에 샀다. 가게를 나와 메인스트리트를 걸어 올라갔다. 선물 꾸러미는 내가 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끔찍하게도 그것이 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누나와 나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지나가던 여성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가게로 다시 가져가는 게 좋겠다, 분명히 새것으로 바꿔줄 거야.”“그렇게는 못해요. 이건 제 잘못이었어요. 제가 떨어뜨렸잖아요. 가게에서 왜 우리에게 새것을 주겠어요?”라고 내가 말했다.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보렴.” 그녀는 우리를 설득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잖니.”그래서 가게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그 가게 직원들은 우리의 슬픈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우리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마침내 다른 소금 셰이커와 후추 셰이커로 바꿔가도 좋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들은 포장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으니 이 일은 자신들의 잘못이라고까지 말해주었다! “우리에게는 열두 살짜리 소년이 신나게 놀다가 떨어뜨릴 경우에도 버틸 수 있게 포장해야 할 책임이 있단다.”디즈니월드 가게에서 배우는 가장 크게 남는 장사하는 법이라고나 할까. 이들 가족은 그 감동을 잊지 못하고 디즈니월드를 계속 찾았다고 한다. 10달러에 감동해 10만 달러 이상을 쓴 것이다.이 일화는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살림 펴냄)’에 나온다. 뜻밖의 췌장암에 걸려 교수로 한창 일한 나이인 마흔일곱 살에 세상을 떠난 랜디 포시는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카네기멜론대에서의 마지막 강의를 통해 어린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쓴 삶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아직 열 살도 넘지 않은 자신의 세 아이들이 후일 자라 유언과도 같은 아빠의 마지막 강의를 들었으면 하는 희망과 함께.= 장벽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장벽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는지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때때로 가장 힘든 장벽은 사람이다.= 내 인생에서 마주쳤던 것들 중 가장 완강하게 나를 가로막은 장벽은 높이가 고작 167cm에 불과했다. 하지만 장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그것은 나를 눈물로 부서지게 했고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 장벽은 바로 재이(후에 랜디의 부인이 됨)였다.= 경험이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은 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누구에게나 멘토가 필요하다. 랜디 포시에게 인생의 멘토는 두 사람이 있었다. 어린 시절 풋볼 코치는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들려준다. 짐 그레이엄 코치는 혹독한 훈련으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기초 중시의 훈련은 그레이엄 코치가 선수들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 되었다. 그레이엄 코치는 아이들이 부상의 위험을 피하게 하기 위해 엄하게 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기초, 기초, 기초.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학생들이 손해를 보면서도 이 점을 무시하는 것을 보아왔다. 당신은 반드시 기초부터 제대로 익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화려한 것도 해낼 수 없다.= 십대 이후로는 한 번도 그레이엄 코치를 보지 못했지만 그는 내가 어떤 일을 포기하고 싶을 때에는 어김없이 머릿속에 나타나 더 열심히 하도록, 더 나아지도록 강요했다. 나는 그에게서 ‘회초리 평생 회원권’을 받은 셈이 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미식축구나 축구, 수영 등의 조직적인 스포츠를 가르칠 때 아이들이 경기의 룰만 배우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팀워크, 인내심, 스포츠맨십, 열심히 노력하는 것의 가치, 역경을 이겨내는 능력 등이 그것이다.랜디 포시는 미식축구에 나오는 테크닉인 ‘헤드 페이크(head fake)’를 잘 보는 사람이 인생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헤드 페이크는 선수가 머리를 어느 한쪽으로 움직여 상대방을 그쪽으로 유도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작 선수는 반대쪽으로 움직여 나간다. 마술사가 관객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유도하면서 마술을 행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레이엄 코치는 선수의 허리를 주시하라고 가르쳤다. “선수의 배꼽이 움직이는 방향이 그 선수가 움직일 방향이다.” 이런 행위로 인해 헤드 페이크는 ‘우회적인 가르침’을 뜻한다.인생에는 역할모델과 함께 ‘네덜란드 삼촌’도 있어야 한다. 네덜란드 삼촌은 정직한 의견을 조언해 주는 사람을 일컫는 표현이다. 랜디에게 네덜란드 삼촌은 브라운대학교 컴퓨터공학과의 앤디 밴 댐 교수였다. 그는 실제 네덜란드인이었는데 랜디의 이기주의를 꼬집어준 ‘네덜란드 삼촌’ 역할을 해주었다. 랜디는 극단적으로 자기만 알고, 지나치게 건방지며, 쉴 새 없이 의견들을 분출해 내는 융통성 없는 반골이었는데 이를 앤디 교수가 바로잡아주었던 것이다. “랜디, 사람들이 너를 거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안 된 일이야. 그렇게 되면 네 인생에서 이룰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니까.” 이는 ‘사실 넌 멍청한 놈이야’라고 말한 것이었다.랜디는 수업을 듣던 학생이 이전의 자신처럼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이자 네덜란드 삼촌 역할을 자임한다. “나도 딱 자네 같은 학생이었네. 그러나 나에게도 진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 주신 교수님이 한 분 계셨어. 나를 특별하게 만든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 내가 그의 충고를 귀담아들었다는 사실이지.”= 나는 언제나 멋들어진 사람보다 성실한 사람을 우선시한다. 멋은 짧고 성실함은 길다. 성실함은 너무나 과소평가되고 있다. 멋은 관심을 끌기 위해 겉으로만 노력하는 것이지만 성실함은 마음 밑바닥에서 온다.= 겉멋에 찬 사람들은 모방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시대를 초월하는 패러디를 찾기는 어렵다. 나는 세대를 거쳐도 길이 남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그래서 겉멋에 찬 사람들이 패러디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하는 성실한 사람을 더 존경한다.드라마 ‘스타트렉’에서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의 선장인 제임스 커크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여기서 리더십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그는 어떻게 권한을 위임하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열정의 소유자였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부하들보다 뛰어나다고 공언한 적이 없었다. 커크 선장은 부하들이 그들의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대신 그는 비전을 제시하고 기강을 확립했다. 그는 부하들의 사기를 책임졌다.”커크 선장은 능력 있는 인재들을 잘 쓸 줄 알았고 리더로서의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았던 것이다. 또한 자신의 자아에서 공기를 빼고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생기는 것이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한 말이다. 앞으로 적어도 2000년 동안은 더 반복할만한 가치가 있다.=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은 인간들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행위 중 하나다. 능률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나 같은 사람도 감사 편지는 종이에 펜으로 쓰는 옛날식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감사 편지가 누군가의 우편함에 도착한 후 어떠한 마술이 벌어질지, 그것 역시 모르는 일이다.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