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 업종, ‘긴 호흡’이 필요하다

제지 업종 지수는 시장 하락에도 불구하고 공급과잉 완화와 이익 개선 기대로 지난 10월 초까지 견조한 흐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불안한 시장 환경 속에서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환 관련 손실이 부각되면서 주가지수 하락과 동조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2007년 제지 산업의 이슈는 인쇄용지 생산 능력이 감소하면서 본격적인 제품 가격 인상이 시작됐다는 점이고 2008년에는 펄프 가격 하락이 본격화됐다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공급과잉 완화에 따른 제품 가격 인상과 펄프 가격(원가) 하락, 특히 펄프 가격은 7년 이상 상승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지 업종의 수익성 기대가 컸던 점이 10월 초까지 시장 대비 초과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최근에 부각된 외환 관련 손실의 확대는 일시적으로 악재를 불러왔지만 제지 산업의 변화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 개선의 몸짓이 계속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오랫동안 앓아 왔던 중병이 한순간에 좋아질 수 없는 것처럼 제지 산업도 호전되는 과정에서 이래저래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아직은 완벽하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지만 시장 대비 프리미엄을 받았던 1995년 이전의 호황기에 근접하는 10% 이상의 자기자본이익률(ROE)에 다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 시장 대비 할인을 받을 요소는 대부분 사라졌다고 판단된다. 2007년 최악의 국면을 통과한 이후 이익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가는 여전히 밸류에이션 매력이 존재한다고 판단된다.2007년 국내 주요 인쇄용지 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 0.9%로 2002년 12.3%를 고점으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 왔다. 원인은 공급과잉과 펄프 가격 상승이었다. 2008년은 상황이 달라졌다. 2008년 1분기부터 주요 인쇄용지 업체들의 영업이익 개선이 나타났고 전 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한국제지와 이엔페이퍼의 흑자 전환, 한솔제지와 무림페이퍼의 영업이익률 개선이 나타나면서 이익의 질적 개선이 이뤄졌다고 판단된다.이익 개선의 1등 공신은 2007년 중반부터 시작된 제품 가격 상승이었다. 2008년 2분기를 기준으로 펄프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24% 상승했고 3사(한솔, 한국, 무림)의 평균 제품 가격은 21% 올랐다. 2007년 중반 제품 가격 상승이 나타난 시점이 공교롭게도 이엔페이퍼와 계성제지 생산 능력 중 약 15만 톤이 폐쇄된 때다. 즉, 제지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공급과잉은 펄프 가격 상승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었지만 지난해 중반부터는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구조적인 측면을 좀 더 들여다보면, 2008년 한솔제지의 이엔페이퍼 인수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한솔제지는 이엔페이퍼의 인쇄용지 부문 인수를 통해 국내 인쇄용지 시장점유율을 18%에서 30%로 확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국내 1위 업체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시장 영향력 확대, 펄프 구매 시 원가 절감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로써 주요 제지 3사인 한솔제지, 한국제지, 무림페이퍼의 시장점유율은 70% 이상으로 확대되며 과점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약 30만 톤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남한제지의 경영 악화와 감자 등을 고려하면 시장은 새로운 구도를 형성한 것으로 판단된다.하지만 실물경기 위축이 예상되는 만큼 일부 중소 제지 업체들의 경영난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2009년 제지 산업은 경기 침체의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제지 3사의 입장에서는 2보 전진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1993년에서 2001년까지 연평균 펄프 가격 증가율은 2.7%였지만 제품 가격 증가율은 4.5%를 기록했다. 그만큼 수요가 견조했던 시기였다. 반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펄프 가격은 9.9% 증가했지만 제품 가격은 오히려 1.5% 감소했다. 낮아진 경제성장률과 수요 둔화, 그리고 공급과잉으로 인해 과거처럼 펄프 가격 상승을 곧바로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변화된 상황에서 펄프 가격의 변동은 제지 업체의 수익성을 좌지우지하는 절대적인 요소였기 때문에 펄프 가격의 하락 가능성이 조금만 제기돼도 제지 업체의 주가는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펄프 가격이 상승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그러나 최근 펄프 가격은 7년이 넘는 긴 상승을 마치고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7월에 톤당 800달러였던 활엽수 펄프 가격은 10월 들어 690달러까지 떨어졌다.세계 펄프 재고는 약 465만 톤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재고 일수도 지난 6월 32일에서 지난 10월에는 44일로 급격히 늘어났다. 펄프 생산업자들의 감산 발표에도 불구하고 공급 증가로 인한 하향 압력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펄프 가격을 변동시키는 가장 큰 원인인 공급 대비 수요 비율은 2011년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펄프 가격의 하락이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펄프 전망 기관인 호킨스 라이트는 펄프 공급의 증가로 인해 수요 공급 비율이 2008년 90.8%에서 2011년 88.6%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용도가 높은 활엽수 펄프의 수요 공급 비율은 2008년 90%에서 2011년 86%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 시장은 1% 이하의 낮은 수요가 예상되는 반면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은 6% 이상의 신·증설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2007~12년까지 세계 마켓 펄프 수요는 연간 2.6% 성장하는데 반해 펄프 공급량은 3.2%, 특히 활엽수는 약 6.3%의 신·증설이 추진되고 있어 펄프 가격의 상승보다는 하락에 무게를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된다. 수요 약세로 인해 제품 가격의 하락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공급과잉 완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펄프 가격 하락이 지속된다는 측면에서 현재 실물경기 침체는 주요 제지 업체들의 2보 전진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최근 제지 업체들의 당기순손실을 야기한 환율의 영향은 4분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수출 비중이 낮은 업체는 펄프 구매 대금 지불에 있어 더욱 불리한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수출 비중이 50%에 가까운 한솔제지와 무림페이퍼도 외환차손 및 외화환산손실의 증가로 인해 영업이익 개선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을 전망이다.2008년의 환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점을 고려하면 2009년에는 오히려 반대의 효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순이익 측면에서는 올해보다 내년이 개선의 여지가 높다고 판단된다. 구조적 변화와 펄프 가격 하락, 환율 상승 등 호재와 악재가 겹친 과도기적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긍정적인 요인들이 더 많다는 점에서 여전히 투자 매력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제지 업종 최선호주는 업종 대표주인 한솔제지를 제시한다. 최근 한솔제지의 주가는 단기적으로 외환 관련 손실의 확대와 자회사인 한솔건설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기되면서 낙폭이 확대됐다. 그러나 이엔페이퍼 인수를 통해 구조 변화에 있어 가장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또 한솔건설에 대한 리스크는 위험에 대한 사실보다는 불확실성이라는 투자 심리의 영향이 컸다는 점, 리스크가 현실화되더라도 이를 감내할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주가는 저평가됐다고 판단된다.정봉일·대신증권 애널리스트 cbi@daish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