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코드 정복하기

매일 아침 우리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고르든 누군가 골라주든, 그날에 입을 아이템을 그날의 상황에 맞게 현명하게 정해야 하는 것이다.이렇게 원하든 원치 않든 매일 입을 아이템이 존재하는 것처럼 상황과 장소에 맞게 특별히 지정하는 패션 코드를 좀 더 유식한 말로는 ‘드레스 코드’라고 한다. 한두 번쯤 행사나 파티에 가 본 남성이라면 그다지 이 단어가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대한민국 남성들은 유독 드레스 코드를 어색해하거나 남세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어쩌면 두려워한다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드레스 코드라는 말이 요즘처럼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파티 문화가 성행하기 시작한 때부터다. 파티에서는 그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할 패션 스타일에 관한 약속인 이 ‘드레스 코드’가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 것은 분명 아니었다. 행사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20~30%만 겨우 지키고 오는 명목뿐인 약속이었던 이 ‘드레스 코드’는 최근 파티나 행사를 빛내주는 최고의 콘셉트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 무언의 약속을 통해 행사장에서의 일체감을 느낄 수도 있게 되며 서로의 변신한 모습을 통해 웃음과 교감을 나누게 될 수도 있게 됐다.한 예로 필자는 몇 주 전에 청담동 있는 PKM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상하이 현대 아트 페어(SH CONTEMPORARY ART FAIR)’를 알리는 프로모션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다. 초대장에 명시돼 있던 이날의 드레스 코드는 다름 아닌 ‘상하이 시크(Shanghai Chic)’였는데 말 그대로 중국풍의 의상을 나름대로 세련되게 해석해 입고 행사에 참석하면 되는 것이라 믿고 행사 며칠 전부터 살짝 흥분돼 있었다. 다만 실제로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부분에서는 막상 좀 당황하긴 했는데 그 이유는 여자들이야 늘씬한 몸매를 돋보이게 해 줄 중국의 전통의상 치파오를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거나 ‘돌체 앤 가바나’ 같은 몇몇 해외 명품 브랜드에서도 중국풍의 의상을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남자들이 중국풍 의상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잘못 입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분명 많은 남성들이 그날 드레스 코드를 지키지 않았지만 행사 주최 측이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색 스카프를 준비해 행사장 입구에서 나눠 줬다. 드레스 코드를 지키고 오지 않는 남성들에게 행커치프 혹은 완장으로 착용하게 하기 위트 있는 아이디어이지 않은가.남자들에게 있어 드레스 코드는 우선 파티나 행사의 성격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양복을 입고 가야 하는 점잖은 행사와 그냥 편하게 입고 갈 수 있는 행사다. 전자의 경우에는 보통 드레스 코드를 ‘블랙 타이(Black Tie)’라고 명시한다. 말 그대로 ‘검은색 넥타이’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이 말의 행간의 의미는 바로 ‘턱시도 내지는 제대로 갖춰 입은 양복을 입는 아주 격식 있는 행사’다. 잘못해서 검은색 넥타이만 메고 재킷도 없이 셔츠 바람으로 캐주얼하게 나타났다간 행사장 입구에서 입장이 불가할 수도 있음을 각오해야만 한다.후자의 경우인 편한 파티나 행사에 초대되는 남성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흔한 드레스 코드는 바로 ‘스마트 캐주얼(Smart Casual)’이다. 처음 이 단어를 접하게 되면 잠시 몇 초 동안 고민하게 된다. “과연 똑똑한 ‘캐주얼’이란 무엇일까”라고 말이다. 그러나 스마트 캐주얼의 행간의 의미는 일종의 일탈이 허용되는 패션이다. 파티 분위기 또한 당연히 ‘블랙 타이’의 파티보다 한결 가볍다. 켈빈클라인 진에 마크 제이콥스의 재킷을 걸친다거나 우영미의 솔리드 옴므 슈트에 샌들을 신어도 허용되는 분위기가 ‘스마트 캐주얼’의 파티다.이제 커다란 두 용어를 이해했으니 다음은 남성들을 매번 고민에 빠지게 하는 다소 모호한 드레스 코드를 표현하는 몇몇 용어들을 정복할 순서다. 필자만의 노하우가 담긴 조금은 주관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정의를 내려 볼까 한다. 부디 필자의 이 용어 설명이 많은 남성들을 파티에서 구제해 주길 바란다.= 사전적 정의를 빌리자면 말 그대로 ‘멋있는, 세련된, 맵시 있는’ 등의 설명이 나온다. 만약 패션 뉴스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글을 읽은 적이 있는 독자라면 ‘시크’라는 단어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구태여 멋있다는 표현을 시크라는 외국어로만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사전적 대표 의미는 그렇지만 이방인의 단어인 ‘시크’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으며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도 있는 위험한 단어이기도 하다.다만 2008년 기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시크’에 대해 정의한다면 ‘남녀의 성별 기준도, 나이에 대한 편견도 넘어서는 에너지’라고 말하고 싶다. 동시대 누가 봐도 멋진 차림. 익숙한 느낌 속에서 은근하게 풍기는 멋스러움, 어느 정도 블랙이 녹아있는 듯한 느낌, 지난 몇 년간 에디 슬리먼이 보여주었던 스타일’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개개인마다 다르게 해석되는 단어의 뜻 말고도 ‘시크’라는 단어는 주로 다른 단어와 어울려 새로운 조합어를 이루기도 한다.= 글램 룩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황홀하게 보이는 룩,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할 룩’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글램 룩이 드레스 코드라고 적힌 초대장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어떻게 코디해야 글램 룩이 될 수 있을까. 여성에게 노출과 보디라인을 강조하는 도발적인 느낌이 글램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면 남성들에게 글램의 의미는 멀고도 험난하다고 할 수 있다. 남자가 노출을 잘못하다간 느끼해 보일 수도 있고 ‘몸짱’이 아니라면 타이트한 아이템도 남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글램이 주는 넓고도 사려 깊은 의미를 조금은 너그럽게 이해한다면 뭔가 반짝거리는 느낌을 연상케 하는 아이템과의 연결을 통해 글램 룩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랑방의 페이턴드 소재(반짝이는 원단의 소재의 일종)의 구두처럼 비닐 소재의 아이템을 한 개만 치장했어도 당신과 글램은 교집합이 생긴다. 락스타만큼 과격하게 입을 수는 없겠지만 그런 느낌을 가슴속 깊이 새기면서 평소보다 통이 조금 좁은 바지에다 단추를 평소보다 한 개쯤 더 풀어 헤친 블랙셔츠를 매치해 입는다면 당신도 ‘글램’이 될 수 있다. 영국의 국민 밴드 ‘비틀스’ 같은 위트를 연출할 수 있다면, 일상으로부터의 탈피를 저마다 자유롭게 표현했다면 그날의 당신은 ‘글램’이다.= 파티에 초대받았을 때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드레스 코드는 바로 ‘트렌디’ 와 ‘에지’다. ‘트렌디’란 말은 ‘최신 유행의 스타일’이며 ‘에지’는 ‘날’ ‘가장자리’라는 뜻이다. 누구나 다 하는 게 요즘 세상의 트렌디하다는 정의 아닐까. 한 시즌을 풍미하는 몇 가지의 규칙, 그러나 살짝 무시해도 좋을 규칙이 바로 트렌디 함이다. 반면 ‘에지’라는 것은 친절하지 않으나 왠지 끌리는 것, 불편해도 참을 수 있는 매력이다. 에지가 있으려면 스타일이 까칠해야 한다. 마치 클래식의 악동으로 불리는 천재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바흐’ 연주가 ‘에지’다.그러나 정작 많이 들어본 이 만만한 두 영어 단어를 패션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역시나 ‘대략 난감’이 아닐 수 없다. 가장 트렌디하게 입은 파티 룩은 필자에게 있어서 멋지게 피트된 럭셔리한 진 바지에 뽐내려고 입지 않은 듯하지만 질이 아주 좋은, 동시에 몸 사이즈에 아주 잘 맞아 그 사람이 빛이 날만한 그 시즌 최고의 티셔츠 하나만을 입은 남자다. 여기에 ‘에지’를 살려보자면 손목에 있어야만 하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우 있어 보이는 빈티지 시계다. 하지만 절제된 코디네이션이 중요함으로 액세서리로 반지와 목걸이는 생략해야만 에지가 산다. 대신 그가 마지막으로 에지를 살리기 위해 갖춰야 하는 최후의 필살기는 바로 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신발이어야 할 것이다.1994년 호주 매쿼리대학 졸업. 95~96년 닥터마틴·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지큐·앙앙·바자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버블 by 샴페인맨’이 있음.황의건·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