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아!!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다….”갑자기 고향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리 바쁘게 살고 있는지, 이럴 때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 전화 한번 제대로 못하는 내가 밉기만 하다. 늘 그렇듯 아버지 전화를 받고서야 자책을 하곤 한다.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아버지의 세대가 모두 그러하듯, 내 아버지 역시 온갖 역경을 넘고 넘으면서 가족을 이끌어 오셨다. 어린 시절에 광복과 큰 전쟁을 겪은 터라 웬만한 어려운 일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이다.하지만 남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정은 유별나시다. 이런저런 고난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키워 오셨으리라. 나는 항상 당신의 얼굴과 인품에서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을 느끼곤 한다.누구라도 그러하듯 나에게도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 나쁜 기억이 있다. 유난히 또렷한 것은 코흘리개 시절의 부산 여행 추억이다. 여름방학이 되면 나와 형은 부모님 손을 잡고 외갓집이 있는 부산으로 향하곤 했다.여행길을 신나게 따라나선 이유는 오로지 자장면 한 그릇의 유혹 때문이었다. 여행길을 오가며 꼭 한번은 먹곤 했던 그 자장면을 제외하면, 그렇게 유쾌한 여행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억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아버지와의 소중한 추억이지만, 철부지였던 그때는 그 여행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나 보다.여행의 코스는 늘 비슷했다. 부산의 태종대, 용두산공원, 자갈치시장 등을 한 바퀴 돌아 보고 다시 완행열차를 타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특히 자갈치시장은 한 번도 빠지지 않는 필수 코스였다. 시장통 입구에서부터 풍겨나는 특유의 생선 비린내는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아버지가 자갈치시장을 빠짐없이 들른 이유는 멍게와 해삼, 그리고 고래 고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아버지의 “한번 먹어 보라”는 말에 마지못해 입을 벌렸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고래 고기 접시를 앞에 둔 부자의 모습이 너무나 그립다.지금은 고래 고기가 참 귀한 음식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서민들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별미였다. 내 기억으로는 자갈치시장에선 지폐 한 장이면 한 봉지 가득 고래 고기를 담아 주었다. 고래 고기를 파는 곳도 많았다.그때 아버지는 “고래 고기에선 열두 가지 맛이 난다”고 하셨다. 좌판에서 소주 한잔과 함께 몇 점을 드시고, 남은 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완행열차에서 드시곤 했다. 시장과 열차 안에서 반강제로 형과 나에게 한 점씩 먹이면서 흐뭇해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나에겐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생겼다.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어릴 때 느끼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 내 자식을 키우면서 조금씩 느끼고 있다. 쑥쑥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가슴깊이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그랬듯, 내 아이들 역시 이 아버지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다.그 시절의 아버지도 지금의 나처럼 서운한 마음이었을까. 좋은 음식을 맛보여 주겠다고 물어물어 맛집을 찾아가도 별 감흥을 느끼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의 내 마음이 그때 고래 고기를 한 점 억지로 먹이시던 아버지의 심정이었겠지….사람들은 어릴 적 추억과 함께 평생을 함께 산다. 소중한 추억이 인생의 자양분이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추억을 되뇌고 그리워하며 행복해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순간이다.아직 인생의 쓰고 단맛을 많이 겪어 보진 못했지만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 아버지의 추억과 사랑을 생각하면 참 뿌듯해지고 행복해진다. 오늘, 못난 둘째아들 목소리 듣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에게 고향집 안방까지 들리도록 목청껏 외치고 싶다.“아버지 사랑합니다!!!”김경창·삼가에프씨컨설팅 대표프랜차이즈 법률 전문가인 가맹거래사들로 구성된 창업 컨설팅 업체 삼가에프씨컨설팅을 이끌고 있다. 또한 예비 창업자와 자영업자를 위한 웹진 ‘3+ 창업투데이(www.3fcall.com)’를 통해 활발한 온라인 컨설팅 활동을 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