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보이는 우주 강국의 꿈

일본의 중공업 도시 나고야의 남부 해안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오에 공장. 나고야 역에서 버스로 40여 분 만에 도착한 이 공장의 첫인상은 ‘낡았다’였다. 2층 건물 높이의 회색 벽돌 공장은 톱니형 삼각지붕으로 옛날 창고풍이다. 공장 벽에 그려진 빨간 다이아몬드 3개의 미쓰비시 마크와 공장 이름도 페인트가 벗겨졌다.이 공장은 역사가 길다. 1920년 완공돼 일본 해군의 함상 전투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 공격에 쓰였던 ‘제로센(零戰)’도 여기서 나왔다. 90년 가까운 일본 전투기 역사의 산실이다.그러나 지금 이곳에선 로켓이 제조되고 있다. 인공위성 등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로켓 부품이 이 공장의 주력 제품. 작년 9월 일본에서 처음 달 탐사 위성 ‘가구야’ 발사를 성공시켜 일본을 우주 강국 대열로 밀어올린 일본 로켓 산업의 심장부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오에 공장 외에도 인근의 도비시마·고마카미나미 공장, 복합재 주익 센터 등 4개 공장을 묶어 1989년 항공우주시스템제작소로 체제를 정비했다. 규슈 가고시마엔 발사센터도 구축했다. 로켓 부품에서부터 조립, 발사에 이르는 일관 생산·서비스 체제를 갖춘 것. 그 첫 작품이 가구야를 쏘아 올린 로켓 H2A 13호기였다.2000년대 초반 잇단 사고로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았던 미쓰비시중공업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로켓 제조·발사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는 가운데 최근엔 중형 항공기 개발 프로젝트도 띄워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영 실적도 개선돼 수주액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순이익도 불어나고 있다.‘기술의 미쓰비시’라는 옛 명성이 되살아나고 있는 셈이다.미쓰비시중공업이 최근 눈길을 끈 것은 가구야 발사 성공을 계기로 로켓 사업이 탄력을 받으면서다. 일본에서 로켓 사업은 원래 정부가 주도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비용 절감을 위해 2003년부터 이 사업을 미쓰비시에 이관했다. 로켓 산업을 상업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쓰비시는 최근 해외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연간 제조 가능한 로켓 3기 중 정부 수요 2기를 뺀 나머지 1기는 외국에 판다는 구상이다.첫 타깃은 한국이다. 한국 정부가 2010년께 발사할 예정인 인공위성 ‘아리랑 3호’를 우주에 띄울 로켓 제작·발사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러시아의 드네프르사와 경합 중이다. 일본은 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쓰비시는 최근 입찰에서 러시아의 절반 가격인 약 160억 원에 응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해외 진출인 만큼 사활을 건 셈이다.미쓰비시중공업은 지난 3월 말 세계 항공기 업체들의 이목도 집중시켰다. 미쓰비시가 전일본공수(ANA)로부터 자체 개발한 중형 제트 여객기 25대를 수주했다고 발표한 때문이다. 이는 미쓰비시가 보잉 에어버스 등이 장악하고 있는 항공기 시장 진출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쓰비시는 중형 여객기의 세계 수요가 향후 20년간 5000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그 가운데 1000대를 수주한다는 목표를 세웠다.미쓰비시중공업은 한때 잇단 악재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지난 2002년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던 호화 여객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가 전소되는 사고가 발생, 1884년 창사 이후 최대 불상사를 겪었다. 2003년엔 ‘H2A로켓’ 발사에 실패했고, 또 다음 해에는 자회사인 미쓰비시자동차의 제품 결함 은폐로 불매 운동이 일어나면서 경영난에 빠지기도 했다.계속된 사고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던 2003년 6월 미쓰비시는 해외 사업 담당이었던 쓰쿠다 가즈오(65) 상무를 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회사 재생의 임무를 맡겼다. 쓰쿠다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기술의 미쓰비시’를 내걸었다.그는 전국 각지의 생산 현장을 방문, 보유 기술력을 살려 미래 시장에서 패권을 겨룰 수 있는 하이테크 제품을 개발하라고 사원들을 독려했다. 성장 잠재력이 큰 중형 여객기와 로켓 개발에도 매달렸다.어려운 여건 속에서 투자를 늘리고 신기술 개발 사업에 승부를 걸었다. 총사업비 3000억 엔에 달하는 제트 여객기 개발은 창사 이후 최대 프로젝트였다. 그는 또 신규 사업 전략을 ‘사업소 최적’에서 ‘사업 최적’으로 바꿨다. 전국 사업장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을 한곳에 모아 신제품 개발에 나서도록 한 것이다. 올 초 선보인 방사선 암 치료기 ‘MHI-TM2000’은 이런 방식으로 개발한 제품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벌써 30기의 주문을 받았다.제품 신뢰도가 다시 높아지고 수주가 늘면서 수주액은 지난해 3조2000억 엔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2007 회계연도(2007년 4월~2008년 3월)에는 3조5000억 엔에 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2004년 40억 엔에 불과했던 순익은 2006년 488억 엔으로 급증했다. 회사가 부활에 성공하면서 쓰쿠다 사장은 지난 4월 초 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회장 취임사에서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은 기술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최근엔 밖으로부터도 호재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미쓰비시중공업으로부터 우주 화물선을 구매할 것이란 뉴스가 대표적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최근 일본우주항공개발기구(JAXA)를 인용해 NASA로부터 우주 화물선을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일본이 우주 화물선을 수주하면 미쓰비시중공업이 주도적으로 제조하게 된다.NASA가 구매하려는 ‘H-2 운반선(HTV)’은 현재 JAXA와 미쓰비시중공업 미쓰비시전기 등이 공동 개발 중이다. 이 운반선은 1기당 가격이 약 1억3100만 달러다. 이번 거래가 최종 성사되면 일본 우주 개발 50년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된다.미국은 현재 사용 중인 우주 왕복선이 2010년 퇴역하면 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물과 식량, 과학 실험 기기들을 실어 나를 새로운 운반선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올 4월 우주 왕복선의 뒤를 이을 우주선을 개발하도록 미국 기업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우주 왕복선의 퇴역을 불과 2년 남겨 놓은 상황에서 후속 왕복선이 제때 개발될지가 불투명해 외국 우주선 구매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최대 6톤의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일본의 HTV는 내년 가을 취역할 예정이다. 매년 1기 정도씩을 만든다는 게 미쓰비시중공업의 계획이다. JAXA는 NASA와 올 2월부터 비공식적으로 HTV 판매 문제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미쓰비시중공업은 앞으로 독자 기술로 2명의 비행사를 달 표면에 보내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미쓰비시중공업의 유인 달 탐사 계획은 일본산 로켓을 이용해 유인 탐사선을 달 표면에 보내 1주일간 탐사를 마친 뒤 귀환하도록 하는 것. 기술적으로는 오는 2020~25년 실현이 가능할 것으로 미쓰비시는 보고 있다.이 계획은 미쓰비시가 2005년부터 검토를 시작했다. 현재로서는 아폴로와 비슷한 계획이지만 1대의 초대형 로켓이 아닌 기존 H2A 로켓의 발사 능력을 2배로 향상시킨 개량형 로켓 6대를 사용한다는 게 다른 점이다. 계획에 따르면 비행사 3명을 태운 사령선과 무인 착륙선, 그리고 사령선과 착륙선을 달 궤도로 진입시키는데 필요한 로켓 2대를 각각 발사한 뒤 지구 주위를 도는 궤도상에서 도킹시킨 후 달로 출발시키게 된다.사흘에 걸쳐 달 궤도에 도달하면 우주인 3명 가운데 2명은 착륙선으로 옮겨 타 달 표면에 내린다. 그 후 2명의 우주인은 7일간의 탐사를 마치고 사령선으로 옮겨 탄 뒤 지구로 출발해 복귀한다는 계획이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