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영역과 시장의 위험

사람들은 흔히 자기 자신의 행동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 의사결정을 들여다보면 인간은 비합리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모두 10번 던지는 동전 던지기 게임이 있다고 해 보자. 지금까지 9번의 게임이 진행됐는데 전부 앞면이 나왔다. 드디어 마지막 10번째 게임. 앞면과 뒷면 중 어디에 베팅하는 것이 좋은 전략일까. 실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뒷면에 베팅했다. 지금까지 9번 모두 앞면에 나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뒷면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확률론적으로 보면 명백한 오류다. 10번째 게임에서도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50%이기 때문이다.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뱀과 자동차 중 어느 것이 더 무서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도 확률론적 오류다. 현대 사회에선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이 뱀에 물려주는 사람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선 이런 확률론적 오류를 범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투자의 세계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투자에는 ‘판돈’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투자에서 확률론적으로 오류를 범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시장 전망이다. 내일 증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두고 항상 의견이 분분하다. 상승 혹은 하락 전망을 하든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이는 매우 간단한 확률 게임이다. 내일 오를 확률과 내릴 확률은 각각 50%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장 예측을 통한 투자를 하고자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장 타이밍을 투자의 근거로 삼는다. 일종의 자기 자신을 마켓 타이머(market timer)로 생각하는 것이다. 시장 타이밍과 관련된 실증적 연구 결과와 과거의 경험을 보면, 이는 별 실효성이 없는 전략이다. 아니, 설사 일시적으로 실효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전략이다.샌포드 번스타인 & 컴퍼니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26년부터 1993년까지 수익률이 가장 좋았던 60개월간 평균 수익률은 11%였다. 하지만 수익률이 가장 좋았던 60개월은 1926년부터 1993년까지 전체 기간의 7%에 불과한 짧은 기간이다. 이 60개월 제외한 나머지 93%의 기간은 수익률이 평균 0.01%밖에 안 된다.또 다른 분석 결과도 있다. 지난 1980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의 대표적인 우량주 500개로 구성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은 17.6%였다. 이 기간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10일 동안 주식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수익률은 12.65%로 낮아진다. 수익률이 높았던 20일 동안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었다면 9.3%, 30일간 주식에 투자하지 않았으면 6.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투자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짧은 기간을 누가 어떻게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과거의 데이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투자 성과를 결정하는 여러 가지 변수 중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투자 성과를 둘러싼 변수 중에는 시장 타이밍, 투자 기간, 자산 배분 등이 있다. 시장 타이밍은 시장 가격의 변화를 기준으로 투자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시장 가격 변동을 가격 변동 위험, 또는 시장 자체의 위험이라는 의미에서 고유 위험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고유 위험은 우리의 통제 밖에 존재한다.최근의 예만 보더라도 그렇다. 미국발 제2차 신용 위기를 촉발한 미국 정부의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 맥이 이렇게 급속도로 위기에 빠질 줄 누가 사전에 알 수 있었을까. 최근 미국 금융시장의 위기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금융 회사들이라고 하더라도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실례라고 할 수 있다.여담이지만 패니메이는 한때 금세기 최고의 투자자라고 하는 워런 버핏이 보유했던 종목이고, 또한 지난 세기의 최고 펀드매니저로 꼽혔던 피터 린치가 가장 아꼈던 종목이다. 당대의 투자가들과 인연이 깊었던 기업이 위험 관리의 실패로 위기에 빠지는 것을 보면 시장에서는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고유 위험은 우리의 통제 밖에 존재한다. 하지만 고유 위험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것은 우리의 통제 영역 안에 존재한다.먼저 투자 기간이다. 손실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는 투자 기간에 초점을 맞춰 투자하는 것이다. 미국의 S&P500지수를 기준으로 보면 1926~91년의 66년 동안 투자 시점을 언제 선택하더라도 4년간 투자하면 돈을 잃을 확률을 대폭 줄일 수 있다. 63년 동안 단 한 차례만 마이너스 손실을 기록했는데, 바로 1929년 대공황 이후의 기간이다. 이 기간은 미국 국민들의 4분의 1이 실업자일 정도로 극심한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 시기였다. 이 기간을 제외하곤 4년만 유지하면 기간별 차이는 있지만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우리나라도 기간에 초점을 맞출 경우 손실 확률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도 100으로 시작한 코스피지수(옛 종합주가지수)는 단순 계산으로 28년 동안 지수 기준으로 대략 15배 정도 성장했다. 우리나라는 대략 3~5년 정도 투자하면 이 28년 동안 어느 시점에 투자를 시작하더라도 돈을 딸 확률이 80%가량으로 늘어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약세장에서는 투자 기간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 더욱 유효하다.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1997년 말 외환위기, 2001년 9·11 테러 등 수많은 정치 경제적 이벤트가 있었다. 하지만 대개 3~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시장은 다시 약세장을 극복해 왔다.시장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또 다른 전략은 자산 배분이다. 물론 시장 위험과 달리 자산 배분도 내 통제 영역에 존재한다. 자산 배분의 기본은 저축 상품과 투자 상품으로 나눠 투자하는 것이다. 이것이 첫 단추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간과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간단한 예로 2000만 원의 자금으로 5년의 시간축을 확보했다고 해 보자. 1000만 원은 저축상품인 상호저축은행의 복리식 정기예금에, 1000만 원은 주식형 펀드에 투자했다. 5년 동안 이런 자산 배분을 유지한다고 하면, 먼저 저축 부문에서 연 6%를 5년간 받을 수 있다. 단순 계산으로 30%의 수익이 결정돼 있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얘기하면 주식형 펀드에 30%의 손실을 발생하더라도 그 위험을 수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현재 지수는 1500대로 전고점인 2000에 비해 25%가량 하락해 있다. 25%의 하락률에도 우리는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간단하게 저축과 투자 상품으로 5 대 5로 자산 배분을 해 놓기만 해도 우리가 현재 느끼는 하락의 고통은 크게 줄어든다.‘능력 범위(the circle of competence)’란 개념이 있다. 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즉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의사결정을 하라는 얘기다. 투자에선 자신의 능력 범위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시장 위험과 같은 통제력 밖의 문제보다 투자 기간과 자산 배분과 같이 자신의 통제 범위 안에 문제를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투자 손실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