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는 신에너지 개발

일본이 고유가 시대를 맞아 발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은 하이브리드카나 전기자동차 등 소위 ‘저연료 자동차’ 생산을 크게 늘릴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고유가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하이브리드카 등을 전략 차종으로 내세우려는 것이다. 또 석유를 대체할 풍력 등 청정에너지 사업을 본격화하고 오일 셸(암석 석유) 등 신에너지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일본 정부는 ‘저탄소 사회’를 모토로 내 걸고 과감한 온실 가스 감축 계획을 추진할 태세다. 2013년부터 적용될 새로운 국제 환경 규제에 대응한다는 취지이지만 고유가 시대에 ‘저에너지 국가’를 지향한다는 뜻도 크다. 사상 초유의 고유가 시대에 맞는 경제 체제를 만드는 데 정부와 업계가 빠르게 공동보조를 맞추고 있는 모습이다.고유가 시대, 일본 기업들의 미래 대비는 자동차 업계에서 두드러진다. 대표적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자동차는 일본 미국 중국에 이어 2010년께부터 태국과 호주에서도 세계 전략 차종인 캠리의 하이브리드카 생산을 시작하기로 했다. 현재 캠리를 생산하고 있는 공장을 활용해 태국에서는 2009년 말, 호주에선 2010년부터 생산을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도요타는 이처럼 생산 거점을 늘리면 2010년대 하이브리드카 생산 대수를 현재의 2배 정도인 연산 100만 대로 늘릴 수 있게 된다. 이 회사는 지난해 하이브리드카를 전년 대비 25% 늘어난 43만 대 생산했었다.미쓰비시자동차도 전기자동차의 국내외 판매를 확대해 2011년 1만 대 생산 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이 회사는 내년에 일본에서 전기로 움직이는 경자동차 ‘아이(i)’를 본격적으로 시판한다. 당초 연산 2000대 생산을 계획했지만 이를 늘려 2011년 1만 대 생산 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2010년부터는 수출도 시작해 영국 프랑스 호주 싱가포르 미국 등에서도 판매할 예정이다.전기자동차 양산을 위해 리튬이온전지의 생산 체제도 강화한다. 미쓰비시상사 등과의 합작회사를 통해 2012년까지 100억 엔(약 1000억 원)을 투입해 2만 대의 전지 양산 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하이브리드카나 전기자동차는 아직 가솔린 자동차에 비해 가격이 30~40%정도 비싸지만 최근 휘발유 값이 급등하면서 점차 소비자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자동차가 양산 체제를 갖추면 가격 인하 효과도 발생해 판매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도요타자동차 관계자는 “당초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자동차는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 등 환경 규제 등에 대응에 개발한 자동차이지만 최근 휘발유 값 급등으로 인해 대중차로서의 보급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종합상사를 중심으로 활발한 신에너지 개발도 눈에 띈다. 미쓰이물산은 호주에서 대규모 풍력발전소를 건설해 운영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2011년까지 발전 능력 10만㎾의 대형 풍력발전소를 건설해 생산한 전기를 현지 전력 소매 사업자에게 팔기로 하고 내년 봄 발전소 착공에 들어간다. 미쓰이물산은 이 풍력발전소 건설에 총 300억 엔을 투자할 예정이다. 호주에서 일본 기업이 풍력 발전 사업을 하기는 미쓰이물산이 처음이다.미쓰이물산이 풍력발전소를 짓는 곳은 호주 남동부의 멜버른 시 외곽의 해안가로 이곳에 출력 2000㎾의 발전기 52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량은 현재 호주 풍력발전 능력의 10%가 넘는 것이다. 인근 6만2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다.호주에선 풍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팔 때는 일반 전기보다 좀 더 비싸게 팔 수 있다. 풍력발전은 화력발전 등에 비해 발전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풍력발전 사업자의 채산성을 맞춰주기 위해서다. 특히 지구온난화 대책으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선 재생 가능 에너지의 도입 확대를 위해 풍력발전의 개발을 장려하고 있다.세계풍력에너지협회에 따르면 2007년 9400만㎾였던 풍력발전 능력은 5년 후에는 2억4000만㎾를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호주는 작년에 출범한 노동당 정권이 당시까지 거부했던 교토의정서를 추인함에 따라 풍력발전 사업 등이 탄력을 받고 있다. 호주 정부는 온난화 가스 삭감을 위해 2020년까지 국내 소비 전력의 20%를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미쓰이물산은 원자력발전소 3기분에 해당하는 380만㎾ 생산 능력의 해외 발전소를 갖고 있다. 이 중 풍력발전은 3%인 10만㎾ 생산 능력에 불과하다. 이 회사는 앞으로 해외 발전소의 풍력발전 비율을 10%까지 끌어 올린다는 목표다.미쓰이물산은 신자원의 하나로 아직 이용되지 않고 있는 암석 석유를 미국에서 대대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브라질의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와 공동으로 개발해 2013년 이후 하루 5만 배럴 규모의 상업 생산을 개시할 예정이다. 미쓰미물산은 사업 지분의 최대 20%를 갖게 된다. 오일 셸에서 석유를 대량 생산하는 것은 세계 최초다.오일 셸은 개발비용이 커 지금까지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국제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에 육박하는 등 폭등함에 따라 본격적인 개발 프로젝트가 나오게 된 것이다. 두 회사는 미국의 벤처 기업이 개발권을 갖고 있는 유타 주의 광구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앞으로 1년 정도 개발과 생산에 필요한 사업화 조사를 실시한 뒤 채산성이 확인되면 2013년부터 하루 5000~1만 배럴에서 단계적으로 5만 배럴까지 생산을 늘릴 계획이다. 이 광구에는 일본의 연간 소비량의 2~3년분에 해당하는 30억~4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일본 석유회사들도 오일 셸과 같은 신자원에 대한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신자원은 중동 등 산유국 외에도 폭넓게 분포돼 있기 때문에 지정학적인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개발이 활발해지면 세계적인 자원 수급을 개선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신자원은 초중질유를 포함한 모래층인 오일 샌드다. 캐나다와 베네수엘라 등에서 생산되고 있다. 배럴당 70~80달러가 채산 라인이기 때문에 현재 140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채산성을 맞출 수 있다는 게 일본 기업들의 계산이다.일본 정부는 저탄소 사회 구축을 통해 고유가 시대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2050년까지 일본이 온실 가스 배출량을 현재보다 60~80% 삭감하고 올 가을 온실 가스 배출량 거래 제도를 시험적으로 도입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후쿠다 비전’을 최근 발표했다.후쿠다 총리는 2020년까지의 중기 목표에 대해서는 2005년에 비해 14% 삭감이 가능하다며 처음으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유럽연합(EU)이 주장해 온 1990년 대비 20% 삭감 목표와 비슷한 규모다. 후쿠다 비전은 온실 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 협력 방안으로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한 환경기금에 최대 12억 달러를 출연하고 △오는 7월 홋카이도 G8(주요 8개국) 정상회의에서 에너지 절약 기술 개발을 다국 간에 추진하는 ‘환경·에너지 국제협력파트너십’을 제안할 예정이다.또 국내 대책으로는 배출량 거래제도 도입 외에 올 가을 세제 개편 시 환경을 중시한 환경세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서머타임(일광 절약 시간) 제도도 조기 도입할 계획이다. 태양광발전을 2020년까지 10배로 늘리고,차세대 에너지 절약 차의 개발에 적극 나설 방침도 분명히 했다. 후쿠다 총리는 저탄소 사회의 실현을 ‘혁명’에 비유하며 기업과 가정에 대해 온실 가스 감축을 위한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후쿠다 비전은 2013년 이후의 국제적인 온실 가스 감축 체제(포스트 교토의정서)를 갖추는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한 포석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후쿠다 비전에 포함된 저탄소 사회로의 이행은 일본이 고유가 시대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 체제를 구축한다는 의미가 더욱 크다. 고유가 시대라는 패러다임 변화에 일본이 빠른 변신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