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업계 화두 트리플 플레이 서비스(TPS)

야구에서 ‘트리플 플레이(Triple Play)’는 수비 팀이 3명의 공격 선수를 한 번에 아웃시키는 것을 말한다. 삼중살(三重殺)이라고도 부르는 트리플 플레이는 단 한 번으로 공격과 수비를 바꿀 수 있는 플레이로 주자가 2명 이상 나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나오기 힘들다.하지만 최근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에는 야구장에서도 보기 힘든 ‘트리플 플레이’가 화두가 되고 있다. KT 하나로텔레콤 LG파워콤 등 주요 통신 업체 수장을 비롯해 케이블TV 업체들 대표까지 입만 열었다 하면 ‘트리플 플레이’를 강조하고 있다.IT 분야에서 트리플 플레이는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 TV(IPTV)’ ‘인터넷 전화(VOIP)’를 하나로 묶어 제공하는 ‘트리플 플레이 서비스(TPS: Triple Play Service)’를 뜻한다.쉽게 생각하면 가정에 들어오는 하나의 상수도를 주방 화장실 베란다에 연결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의 초고속 인터넷 선을 이용해 PC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TV에 연결해 인터넷 TV를 보고,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는 것이다.통신 업체 입장에서는 TPS는 마케팅적인 면에서 중요한 포인트다. 초고속 인터넷만 사용하는 사용자라면 쉽게 다른 업체로 옮길 수 있지만 3가지 서비스를 모두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한 가지 서비스를 이용할 때보다 쉽게 서비스 업체를 바꾸지 못한다. 이 때문에 통신 업체들은 고객들을 오래 잡아둘 수 있고 TPS를 장기간 계약하는 대가로 높은 할인율을 제공한다. 통신 업체는 신규 고객 유치 및 기존 고객을 보존하는데 필요한 마케팅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통신비가 절감된다는 장점이 있다.몇 년 전까지만 해도 TPS는 케이블 TV 업체들의 전유물이었다. 초고속 인터넷이 확산되던 2000년대 초 미국에서는 케이블 TV 업체들이 TPS 가입자를 늘리며 승승장구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TPS는 케이블 TV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TPS 시장을 케이블 TV 업계가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은 ADSL 등 전화선을 이용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와 달리 케이블 TV 선은 3가지 서비스를 모두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대역 폭을 갖췄기 때문이다.그러나 최근 국내 사정은 미국과 조금 다르다. KT 하나로 LG파워콤 등 초고속 통신 업체들이 ADSL 이후 VDSL, FTTH 등 케이블 TV 업체 못지않은 대역 폭을 제공하는 초고속 서비스를 갖췄기 때문이다. 여기에 콘텐츠를 움직일 수 있는 자본력, 까다로운 고객들을 상대했던 고객 관리 시스템 등 장점을 더해 초고속 통신 업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TPS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티브로드(T-broad), CJ케이블넷, 씨앤앰(C&M) 등 케이블 TV 업계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들도 TPS를 강화하고 있다. MSO들이 초고속 통신 업체와 다른 점은 인터넷 TV 대신 케이블 TV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MSO들은 초고속 인터넷 업체들이 제공하는 인터넷 TV보다 화질이 우수한 디지털 케이블 TV와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VOD) 등을 앞세워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인터넷 전화의 경우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용자끼리는 무료로 통화할 수 있는 네트워크 효과가 크기 때문에 각 업체들은 초반 기세에 눌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업계 관계자들은 TPS의 핵심으로 ‘인터넷 TV’를 꼽는다. 초고속 인터넷과 인터넷 전화는 상대적으로 차별화가 어려운 반면 TV 서비스는 각사마다 개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 때문에 KT 하나로텔레콤 LG데이콤 등 초고속 인터넷 업체와 케이블 TV 업계는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하기 위해 경쟁 중이다.하나로텔레콤은 초고속 통신 업체 중 하나TV를 가장 먼저 출범해 인터넷 TV 시장에 빠르게 자리 잡았다. KT는 메가TV를 보급 중이며 소니 플레이스테이션3을 셋톱박스로 활용하는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LG데이콤은 ‘마이LGTV’를 출범하며 하나로텔레콤과 KT를 쫓고 있다.초고속 인터넷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케이블 TV 업계는 공동으로 VOD 업체 ‘홈초이스’를 출범시켰다. 이런 노력에 따라 디지털 케이블 TV 가입자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디지털 케이블 TV 가입자는 지난 2월 100만 명을 넘어 3월에는 110만 명을 돌파했다. 케이블 업계는 올해 가입자 250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각 업계에서 인터넷 TV 시장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수익이 고정된 초고속 인터넷과 인터넷 전화에 비해 다양한 콘텐츠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으로 제공하는 채널 외에 교육, 영화, 취미, 성인 콘텐츠 등 무궁무진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 인터넷 TV는 결제가 리모컨으로 간단히 진행되기 때문에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그렇다면 현재 출시된 TPS 중 어떤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 단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 TV, 인터넷 전화를 3년 약정으로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각 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자료를 보면 KT는 3만4830원으로 개별 이용 시 4만5200원에 비해 23% 할인, 하나로텔레콤은 3만3120원으로 4만1400원에 비해 20% 할인, LG파워콤은 한 달에 3만5200원으로 개별 이용 시 4만 원에 비해 10% 이상 할인된다. 각사마다 초고속 인터넷 속도, 부가 서비스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격과 할인율만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1년에 10만 원 이상 할인이 가능하다.케이블 TV가 제시하는 할인율은 더욱 공격적이다. 올해 1월부터 TPS를 시작한 CJ케이블넷은 3만1800원(개별 이용 시 6만4000원)에, 씨엔앰은 3만1700원(개별 이용 시 6만2000원) 등으로 최대 50%까지 할인해 주고 있다.하지만 너무 치열한 경쟁 때문에 업체 간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우려다. 이미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서는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과다하게 책정해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TPS마저 경쟁이 과열될 경우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인터넷이 가정과 산업의 큰 파급효과를 가져온 것처럼 TPS도 기존 유선 전화 시장, TV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KT는 인터넷전화 전환이 기존 유선 전화 시장과 겹치는 문제가 발생한다. 유선 전화 시장을 포기하고 TPS를 택할 것인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인터넷 TV는 공중파 TV 및 TV 홈쇼핑의 채널 약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는 인터넷 TV는 채널과 시간이 고정돼 있는 공중파 TV의 영향력을 줄이고, 채널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채널 사이에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던 TV 홈쇼핑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TPS가 활성화되면 우선 인터넷 TV 부문이 급속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 TV 성장은 영화 산업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기존 영화관, DVD, TV로 이어지던 영화 개봉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이 같은 빠른 VOD 서비스 제공이 기존 영화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우선 인터넷 TV를 통한 VOD 서비스는 DVD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영화사는 극장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 TV를 출시할 경우 홍보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인터넷 TV가 극장 수입을 줄일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극장 관객과 인터넷 TV 관객은 겹치는 부분이 적어 수익을 오히려 극대화할 수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관객이 인터넷 TV를 통해 다시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소비자는 극장이나 비디오 대여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이형근·디지털타임스 기자 brupr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