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장경국 코지드 사장

장경국(61) 코지드 사장은 캄보디아를 해외 식량 기지로 삼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인물 중 한 명이다. 한일사료 대표를 지낸 그는 지난 2006년 국제 구호 단체 굿네이버스의 일원으로 북한 남포 지역에 사료 공장을 짓는 일에 깊이 관여했다. 그때 완공된 사료 공장에 지원할 사료용 곡물 재배지를 찾다 캄보디아의 잠재력에 주목하게 됐다. 캄보디아는 비료가 필요 없을 만큼 땅이 비옥한데다 3모작이 가능하고 미개척지가 무궁무진했다. 그 후 장 사장은 줄곧 ‘캄보디아 프로젝트’에만 매달려 왔다. 한때 포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으면서 올 들어 분위기는 달라졌다. 그가 대표로 있는 코지드(KOGID)는 지난 6월 초 부국사료, 에스씨에프(옛 신촌사료) 등 국내 사료 업체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해 만든 회사다. 1단계로 올 연말까지 캄보디아에 1000만 달러를 투자해 연간 15만 톤의 사료용 옥수수를 생산하는 시설을 확보할 계획이다.“국제 곡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실제로 깊게 생각해 본 사람을 의외로 많지 않아요. 다들 막연하게만 생각하지요. 아직도 농업 분야라면 무조건 쉽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동안 해외 농업 개발을 하지 않은 게 아니에요. 1960~70년대 남미 농장을 시작으로 수없이 시도했지만 성공 사례가 하나도 없어요.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지금 이야기되는 형태가 아니라 새로운 접근이 필요해요.”“해외 농업 자원 개발에 성공하려면 두 가지 선입관을 버려야 합니다. 첫째는 무조건 땅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지금도 해외 농업을 하겠다는 사람들 99%가 땅 생각만 해요. 땅을 사는 게 투자를 끌어오고 생색을 내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실제 사업에는 도움이 안 됩니다. 땅에 너무 집착해 오히려 현지 땅값만 올려놓고 있어요. 둘째는 생산한 것을 무조건 한국에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현지 국가는 나름대로 정체성이 있고 식량 정책, 농업 정책이 있어요. 거기에 맞게 거부감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해요. 또 일부 품목은 국내 농민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도 있지요.”“해외에 나가면 대부분 가능하면 넓은 땅을 사서 말뚝부터 박고 농장을 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대규모 농장을 경영해 본 경험이 없어요. 당장 농기계부터 문제죠. 필수적인 장비를 사서 운영하는데 보통 땅 확보 비용의 10배가 들어갑니다. 게다가 그 비싼 기계를 한철 쓰고 말죠. 그러니 농기계 값을 감당하지 못해 실패하는 곳이 많아요. 대규모 농장으로 시작하는 게 옳은 건지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해요.”“일부 코지드 주주들도 빨리 농지부터 사놓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사고 싶어도 못산다는 거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생산 이후 과정을 장악하는 겁니다. 일본도 초기에는 땅에 초점을 맞췄다가 전부 실패했어요. 그 결과 저장, 가공 시설 등 물류에 대한 투자로 방향을 바꾼 지 오래지요. 며칠 전 태국에 땅을 수천만 평 확보해 놓았으니 같이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싱가포르나 다른 나라들이 그 땅을 노리고 달려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은 안 그러지요?’라고 묻고는 거절했어요. 해외 농업 기지는 땅 문제가 아니라 저장과 가공 시설에 초점을 맞춰 접근해야 해요.”“1970년대 당시 미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인도네시아에서 원료를 재배해 들여오는 사업을 검토한 적이 있어요. 인도네시아 현지 가격이 국내 가격의 4분의 1밖에 안 돼 충분히 수익성이 있다고 봤어요. 그런데 결국 진출하지 못하고 포기했어요. 물류가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죠. 아무리 생산해도 그걸 효율적인 방식으로 운반해 들여오지 못하면 헛일이죠. 특히 곡물은 누가 뭐래도 물류 시설이 없으면 안 됩니다. 곡물 메이저들이 힘을 발휘하는 것도 물류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지요.”“현재 캄보디아 현지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서류를 접수해 놓은 상태입니다. 첫 단계는 현지 농민들이 재배한 사료용 옥수수를 수매해 들여오는 형태죠. 이를 위해 올 연말까지 1000만 달러를 투자해 건조 시설과 저장 시설을 확보할 겁니다. 1단계 사업으로 현지 농민들과의 신뢰 관계가 구축되면 2단계로 2010년부터 계약 재배에 나설 예정입니다. 마지막 3단계는 직접 농장을 개발해 운영하는 거죠. 스텝 바이 스텝으로 신뢰 관계를 쌓으면서 단계적으로 가는 겁니다. 최종 단계까지 1억5000만 달러가량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서남쪽 칸달 지역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어요. 현재 캄보디아의 옥수수 주산지는 서북부 바탐방 지역인데, 이쪽은 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생산된 물량이 대부분 태국으로 수출되고 있어요. 그러나 수매한 옥수수를 한국으로 실어오려면 캄보디아 유일의 항구인 시아누크빌이 가까운 칸달 지역이 훨씬 유리하지요. 캄보디아 정부에서도 칸달 지역을 추천하고 있어요.”“2년 전부터 여러 나라를 관심 있게 살펴봤어요. 요즘 연해주가 해외 식량 기지 후보지로 많이 거론되는데 개인적으로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봐요. 물론 미래에는 연해주가 동북아 식량 기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의 파워가 강하고 정책도 마음대로 바뀌고 있어 불안합니다. 또 최근 투자 붐이 일면서 땅값이 엄청나게 올라 경쟁력 있는 수익성을 확보하는 게 큰 과제죠. 이에 비해 캄보디아는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요. 전형적인 열대몬순 기후로 옥수수를 3모작까지 할 수 있어요. 인건비도 월 100달러 미만에 불과해 옥수수 재배지로는 최적의 조건이지요. 정치적으로도 안정돼 있고 일관되게 개방 정책을 펴고 있어요. 한국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지요.”“한반도 80%의 넓이에 일부 산악지대를 빼고는 평원이지요. 그런데 그 좋은 평원에 아직도 놀고 있는 땅이 굉장히 많아요. 현재 캄보디아의 옥수수 생산량은 작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늘어날 수 있어요. 인구가 1500만 명 정도밖에 안 돼 장기적으로 보면 농지의 기계화에도 유리해요. 인도네시아나 중국처럼 인구가 많으면 기계화가 쉽지 않아요. 물론 캄보디아의 현실은 열악하지요. 1인당 국민소득 589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죠.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어요. 캄보디아에 좋은 종자와 새로운 영농 기술을 보급해 주면서 우리도 안정적인 곡물 자원을 확보하는 거죠.”“얼마 전 ‘휴렛팩커드가 산골마을을 찾은 이유’라는 책을 읽었는데 평소 제가 갖고 있던 소신과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거기에 공정 무역으로 유명한 그린마운틴커피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정 무역으로 그동안 불공정 거래로 피해를 본 커피 재배 국가의 농가들을 돕는다는 거죠. 캄보디아 옥수수 구상도 같은 맥락이지요. 과거에는 상대를 배려하는 사업 개념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그런 요소들이 성공으로 이끌어요. 특히 해외 농업 개발 같은 사업은 상대국, 현지 농민에 대해 배려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현지에 가보니 건조장이나 도정 공장이 거의 없어요. 곡물을 제대로 보관할 수 있는 창고도 없어요. 그러니 우기 때는 수확해도 보관하고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그냥 버려야 해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예요. 생산을 해도 유통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해요. 이런 상황에서 저장 시설을 지어 캄보디아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또 캄보디아는 물류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옥수수를 재배하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태국이나 베트남으로 수출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싼값에라도 팔 수밖에 없는 거죠.”1947년 경기 시흥 출생. 69년 서울대 농대 졸업. 81년 두산곡산 근무. 97년 SJ필리핀 대표. 2002년 한일사료 부사장. 2003년 한일사료 사장. 2006년 굿네이버스 감사 및 굿네이버스 TINR 회장(현). 2008년 코지드 사장(현).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