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그동안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 온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을 완전 해체하고 계열사 독립 경영이라는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삼성은 지난 6월 25일 이건희 회장의 경영 일선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의 내용을 담았던 ‘4·22 경영쇄신안’의 후속 대책을 내놓았다. 앞으로 재계 1위 삼성그룹은 40여 개 계열사 사장이 참여하는 사장단협의회가 이끌어가게 된다. 이로써 1959년부터 이어져 온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 사장단’이라는 삼성 특유의 삼각편대 경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사장단협의회-각 계열사’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삼성의 새로운 경영 체제는 계열사별 독립 경영을 기본으로 한다. 사장단협의회는 느슨한 형태의 협의체일 뿐이다. 이에 따라 과거처럼 그룹 사장단 인사를 한꺼번에 발표하는 모습도 볼 수 없게 된다. 상법 등에 따라 계열사별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이사와 대표이사 선임권을 행사한다. 사내외 이사들이 주주를 대신해 경영권을 행사하고 법적 책임도 진다.사장단협의회에서는 그룹 차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만 협의한다. 사장단협의회에는 삼성전자와 삼성SDI,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등 15개 상장 계열사 사장과 삼성에버랜드, 삼성생명 등 주요 비상장 계열사 사장들이 참여한다. 별도의 협의회 회장직은 두지 않는다. 다만 이건희 회장 퇴진 이후 대외적으로 그룹을 대표하게 된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이 회장이 참석하지 않을 때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이기태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이 회의를 이끌기로 했다.사장단협의회는 협의 기능만 있을 뿐 과거 전략기획실처럼 구속력 있는 결정 권한은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룹 차원에서 꼭 필요한 업무를 협의하기 위해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중복 사업 조정과 신사업 발굴 등을 맡을 투자조정위원회와 ‘삼성’이란 통합 브랜드 관리를 맡을 브랜드관리위원회를 비상근 조직으로 신설했다.투자조정위원회는 이윤우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김순택 삼성SDI 사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임형규 삼성전자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이상대 삼성물산 사장, 고흥식 삼성토탈 사장 등이 참여한다. 브랜드관리위원회는 이순동 사장이 좌장을 맡는다. 여기에 김인 삼성SDS 사장, 지성하 삼성물산 사장,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 등이 위원으로 참여한다.이건희 전 회장도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지난 4월 경영쇄신안 발표 이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및 등기이사직을 사임한 이 전 회장은 일반 사원 신분마저 포기하고 대주주로만 남게 됐다. 이에 따라 호칭도 ‘삼성그룹 전 회장’으로 바뀌었다. 퇴임 회장에 대한 예우 규정에 따라 최소한의 사무실과 비서, 전화 등이 제공된다. 사무실을 어디에 둘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주력 계열사의 대주주로서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주주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삼성특검 재판에 전념하고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활동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전략기획실 정리 등이 마무리됨에 따라 이학수 부회장 등 전략기획실 고위 임원들의 거취도 결정됐다. 이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은 원래 소속사인 삼성전자의 고문과 상담역을 맡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나머지 팀장급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계열사 사장보좌역으로 발령된 뒤 추후 정기 인사 등에서 보직을 맡게 될 예정이다.이제 지난 4월 경영쇄신안에서 밝힌 10대 과제 중 업무 관련이사의 사외이사 배제, 이 전 회장 차명계좌 처리, 지주회사 및 순환 출자 해소 등 세 가지 과제만 남았다. 사외이사 문제는 계열사들의 내년 정기주총 때 해소하기로 했다. 2조 원대의 차명계좌 처리 문제는 국세청이 증여세를 확정하면 잔액을 유익한 일에 쓴다는 방침이다. 지주회사 전환 등은 사장단협의회를 중심으로 중장기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