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보험

‘진작에 부모님 보험 들어드리는 건데.’경기도 일산에 사는 A 씨는 때늦은 후회감에 싸였다. 최근 어머니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나서였다. 어머니 명의로 암보험에 가입돼 있는 상태였지만 보험금이 많지 않아 마음껏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고혈압과 류머티즘 등의 병도 앓고 있어 병원비 부담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알아보니 실버보험에 미리 가입했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었다. A 씨는 요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인들에게 부모님과 자신을 위해 실버보험에 들라고 강조한다.A 씨와 같은 사연은 사실 흔하디흔하다. 노령의 부모님이 병에 걸리는 일은 다반사지만 정작 이에 대비한 자녀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A 씨의 경우 어머니가 암보험이라도 들어 놓아 근심을 덜었지만 이마저도 없는 부모들이 태반이다. 암은 아니라도 혈관질환이나 당뇨병 같은 질병이 발병하기라도 하면 자칫 집안 경제가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보험사들이 실버보험 가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하는 것은 괜한 장삿속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는 얘기다.실버보험은 보험 업계의 정식 용어가 아니다. 노년기의 건강과 재산상의 위험을 보장하는 보험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질병을 보장하는 건강보험, 상해를 보장하는 상해보험, 장기간의 간병을 지원하는 간병보험, 사후의 장례비용을 제공하는 장례보험 등이 실버보험에 해당한다.업계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가입이 가능한 연령과 보험 기간이 늘어나고 있어 과거에 비해 가입하기도 쉽고 보장성도 향상되고 있다. 최근엔 100세까지 보장하는 보험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전에는 80세 만기가 대부분이었지만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보험 기간도 점차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화재의 ‘올라이프보장보험’, 롯데손해보험의 ‘무배당롯데성공시대보험’, 현대해상의 ‘100세 행복보장보험’ 등이 대표적이다.전문가들은 실버보험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가입 전에 목적을 명확하게 정하고 상품을 골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실버보험은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보험료가 다른 상품에 비해 비싸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건강보험에 가입할 때는 어떤 질병을 보장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특히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도 해당 질환을 보장하는지 반드시 짚어봐야 한다. 만약 보장하지 않는다면 특약의 형태로라도 보장받을 수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정 질환이 염려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되도록 보장 범위가 넓은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보험금이 다소 적더라도 발병률이 높은 질환을 보장하는 상품을 고르는 편이 좋다. 보험 기간이 길수록 좋은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보험료를 아끼기 위해 보장 범위를 줄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이보다는 만기 환급형 상품 대신 순수 보장형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두 상품의 보험료 차이가 커지기 때문에 순수 보장형 상품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보험료 절약의 효과가 적지 않다.노인성 질환에 대비한다고 무조건 실버보험에 가입할 필요는 없다. 만약 일반적인 민영 의료보험에 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다. 민영 의료보험은 보통 실버보험보다 보장하는 질병의 범위가 넓은 데다 보험료도 저렴하기 때문에 유리하다. 실버보험은 일반 보험 가입이 안 될 때의 대체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질환이 아니라 골절 등 재해로 인한 상해를 보장하는 상품도 많이 선보이고 있다. 노인성 질환을 보장하는 보험에 비해 저렴한 것이 보통이다. 순수 보장형의 경우 월 2만~3만 원이면 가입할 수 있다.최근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실버보험은 간병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품은 장기간의 치료와 요양이 필요할 때 보험료를 지급한다. 특히 치매를 보장하는 상품의 인기가 높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치매 환자도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39만9000여 명이던 치매 환자는 2010년 45만1000여 명, 2020년 69만3000여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오는 7월 노인 장기 요양 보험 제도가 시행되면 보다 많은 관련 상품이 나올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이 제도는 치매 등 장기 요양이 필요한 경우 정부가 일정 비율의 자금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민간 보험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업계는 이 제도와 함께 간병 보험 시장도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치매보험에 가입할 때는 보장 개시일과 진단 확정 시기가 언제인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특약으로 치매를 보장받을 경우 치매의 보장 개시일은 주계약의 보장 개시일과 다른 게 일반적이다. 주계약의 경우 보장이 시작되는 날짜는 계약일이 되지만 치매 특약은 계약일로부터 90일, 길게는 2년 이후부터 보장된다. 당연히 보장 개시일이 빠른 것이 유리하다.진단 확정 시기도 살펴봐야 한다. 피계약자가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보험금이 바로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보험사들은 피계약자가 치매 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90~180일 정도 예후를 확인한 후 치매임이 최종 확정된 다음 보험금을 준다. 이 역시 최종 진단 기간이 짧을수록 유리하다.진단 후 보험금이 지급되는 형식은 한 번에 주는 방식과 매월 일정 금액을 일정한 기간 동안 나눠 주는 방식이 있다. 어떤 형태를 선택할 것인지는 계약자의 상황에 따라 정하면 된다. 교보생명의 ‘무배당교보CI 종신보험’의 경우 치매 등 장기 간병 상태가 발생하면 사망 보험금의 50%를 선지급한다.장례보험은 말 그대로 사후의 장례비용을 보장하지만 사망보험의 역할도 한다. 다시 말해 피계약자가 사망하면 사망 보험금과 장례비용이 모두 나오는 상품이다. 계약에 따라 이 두 부문의 보험금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세부 사항을 선택하면 된다. 사망 보험금이 많으면 보험료 역시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다.실버보험은 노령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보험료가 다소 비싸긴 해도 일반적인 보험에 비해 노인들의 가입이 쉬운 편이다. 하지만 병원 치료 경력이 많은 경우엔 실버보험에도 가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경우 고려할 수 있는 상품이 있다. 무심사 보험이 그것이다.무심사 보험은 말 그대로 병력이나 현재의 건강 상태를 심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을 가리킨다. 심지어 현재 질병 치료 중이라도 가입할 수 있다. 피계약자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에 관계없이 받아주므로 보험사의 위험 부담이 커진다. 이 때문에 무심사 보험은 일반적으로 보험료가 비싼 편이다. 사망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종신보험과 비슷하지만 보험료가 비싸므로 종신보험 가능 여부를 먼저 확인한 후에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무심사 보험이 누구나 받아주는 보험이라지만 모든 상품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상품에 따라 가입할 수 있는 연령이 다르다. 현재 나와 있는 상품의 가입 가능 연령은 성별, 보험기간, 납입 기간에 따라 50~80세다. 보험금은 많지 않다. 100만~3000만 원 사이에서 사망 보험금이 결정된다.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