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월 16일 시중은행들을 ‘사기 세력(강 장관은 이를 ‘S기 세력’으로 표현)’으로 지칭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환(換)헤지가 필요하다며 ‘원화 강세’쪽에만 일방적으로 배팅하는 투기성 높은 통화 옵션 상품을 권유하는 행태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이 나온 당일 과천의 재정부 출입 기자 대부분은 강 장관이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표현하려다 ‘실언’한 것으로 생각했다. 발언의 강도가 워낙 셌기도 했거니와 정부는 그동안 수출 기업들에 환 위험을 피하기 위해 헤지를 하라고 권하기도 했기에 언뜻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로 보였기 때문이다.이날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강 장관의 강연(서울과학종합대학원 4T 최고경영자 과정 총원우회 초청 강연)을 직접 들은 기자는 몇 되지 않는다. 필자는 운 좋게도 현장에 있었고 이튿날 재정부 관계자들로부터 충분한 ‘백그라운드 브리핑’도 들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 장관의 직설적인 표현은 결코 실수로 흘러나온 게 아니었다.강 장관과 최중경 재정부 1차관은 환율을 국방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굳게 지켜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이날 동시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외환 파생상품을 파는 은행 등을 대놓고 비판한 것은 “환율을 떨어뜨리는 쪽으로 몰고 가면서 이익을 챙기는 세력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강력하게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백그라운드 브리핑에서 재정부 관계자는 ‘과도한 중소기업 헤지’라는 강 장관의 표현에 대해 ‘타깃 포워드’를 두고 한 얘기라고 설명했다. 타깃 포워드 옵션이란 합성 선물환 거래의 일종으로 녹아웃(Knock-Out) 및 녹인(Knock-In) 조건을 부여하는 대신 매입한 옵션 수에 비해 매도 옵션 수의 비율을 높여 가격 조건을 바꾼 상품이다. 비용이 없지만 환율이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대개는 상승 쪽)으로 크게 움직일 경우엔 기업들이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실제 이 같은 조건의 상품으로 환 헤지를 했다가 최근 환율 급등으로 막대한 환차손을 본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재정부 관계자는 “은행들이 지난해 하반기 수출 기업을 찾아다니며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설득해 투기성 높은 이 상품에 적극 가입하도록 권유했다”며 “나중에 수출업체들이 수출로 번 달러화를 손실을 보면서라도 팔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돈’을 들여 달러를 더 사서 갚아야 하는 경우도 생겨 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기업도 있다”고 말했다.갑자기 ‘사기꾼’으로 지목된 은행들은 “파생상품을 개발해 열심히 판촉한 것도 죄가 되느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발언 당일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성명서까지 내는 방안을 검토하다 재정부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면 좋을 게 없기 때문에 뜻을 접기도 했다. 대신 금융노조가 총대를 메고 강 장관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강 장관의 발언을 기점으로 환 헤지로 손실을 본 기업들이 은행을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자칫 은행권이 사면초가에 몰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나오고 있다.코스닥 상장 기업인 제이브이엠은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통화 옵션 거래에서 자기자본의 약 17.7%에 해당하는 135억 원의 평가 손실을 봤다고 공시했다. 또 다른 코스닥 상장 업체인 IDH도 지난 3월 12일 유로화 강세 여파로 옵션 거래에서 자기자본 대비 42.0%에 달하는 123억여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IDH 관계자는 “회사가 옵션 거래를 선택할 때 신중했어야 했다”며 일부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은행이 우리보다 금융 분야에선 전문가인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위기로 미국 경제가 악화되면서 유로화가 더 강세를 보일 것을 내다보고 조언을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은행에 대한 섭섭함을 표시했다.이처럼 통화 옵션 상품으로 손실을 본 기업들이 실제 은행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재정부 관계자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따져봐야겠지만 펀드의 불완전 판매를 규제하는 것처럼 은행이 설명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기업의 손해 배상 청구가 가능한 사례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