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석좌교수로 ‘컴백’ 안철수의 꿈

한국에서 ‘안철수’라는 이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안철수’는 ‘원칙’, ‘신뢰’와 동의어로 통한다. 그가 하는 말에는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그가 세운 안철수연구소가 하는 일은 바른 기업이 가야 할 길로 인식될 정도다. 안철수연구소를 성장 가도에 올려 놓고 지난 2005년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나 미국 유학길을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대기업 총수들을 제치고 ‘존경받는 CEO’, ‘가장 닮고 싶은 CEO’ 1위에 단골로 선정되곤 한다. 그가 현업에 있을 때 ‘안철수’라는 이름은 경쟁 업체들이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한 경쟁 업체 CEO는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도 실린 안철수 사장 회사의 제품을 쓰겠다는 말을 여러 번 들어야 했다”고 토로하기도 한다.그런 그가 오는 2학기부터 석좌교수로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KAIST) 강단에 선다. 카이스트 관계자는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임용을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며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의장의 교수 임용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안 의장이 맡게 될 직책은 학부과정인 ‘비즈니스 이코노믹스 프로그램’ 석좌교수다. 이 프로그램은 재미 벤처 기업가인 이종문 암벡스그룹 회장이 지난 2004년 200만 달러를 기부해 설립된 ‘카이스트 기업가정신연구센터’가 개설한 학제 간 교육과정이다. 성공적인 기술 벤처를 키우기 위해서는 경영 마인드 함양이 필수적이라는 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기업가정신연구센터 소장 겸 비즈니스 이코노믹스 프로그램 학과장을 맡고 있는 양태용 교수는 “안 의장이 미국 유학을 떠날 때부터 계속 의견을 나눴다”며 “교수 임용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지난해 가을부터”라고 말했다.안 의장은 지난해 10월 일시 귀국해 카이스트 재학생을 대상으로 ‘안연구소의 사례에서 본 벤처기업의 성공과정’을 주제로 한차례 특강했다. 이날 특강에 앞서 이례적으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직접 참석해 인사말을 하기도 했다.양 교수는 “평소 안 의장은 기술벤처를 설립해 경영하면서 마땅히 도움을 받을 곳이 없었다는 걸 안타까워했다”며 “그런 면에서 후배 벤처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 왔다”고 전했다. 안 의장은 카이스트 교수 임용 후 장기적으로는 ‘러닝센터’ 설립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업에서 뛰는 벤처인들을 위한 조언과 컨설팅, 재교육을 담당하는 형태다.카이스트는 지난 1985년 국내 최초로 석좌교수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화학과 김성각 교수 등 8명이 석좌교수로 있다. 카이스트의 석좌교수제는 대학발전기금으로 운영되는 일반 석좌교수와 기업의 기부금 등 특정 기금으로 운영되는 기금 석좌교수로 나뉘어 있다. 안 의장은 이 가운데 대학발전기금의 지원을 받는 일반 석좌교수로 임용될 예정이다. 석좌교수는 일반 교수와 달리 기금 사정에 따라 임용 기간이 유동적이다. 하지만 안 의장의 경우 정년을 보장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양 교수는 전했다.카이스트는 안 의장과 서울대 캠퍼스 커플로 성균관대 의대 교수로 근무하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부인 김미경(45) 씨도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부교수로 함께 임용할 예정이다. 김 씨는 워싱턴 주립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스탠퍼드 법대에서 법학과 생명공학을 접목한 생명 윤리와 지식재산권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최고경영자 MBA(executive MBA) 과정을 밟고 있는 안 의장은 졸업 시험을 마치고 5월 초 귀국할 예정이다. 안철수연구소 관계자는 “안 의장이 5월 초 귀국하면 비상근 형태로 안철수연구소의 최고학습경영자(CLO: Chief Learning Officer) 역할을 함께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의장은 2005년 CEO에서 물러난 후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미국 유학 중에도 일시 귀국해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해 왔다.벤처 업계의 위기감이 팽배한 현 상황에서 ‘한국 벤처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안 의장이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