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한나라당이 4·9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하면서 정부가 이른바 ‘MB 노믹스’를 추진하는데 탄력을 받게 됐다. 정국 주도권을 쥔 여당이 그동안 물밑에서 경제 개혁 프로그램의 밑그림을 그려온 경제 부처의 도움을 받아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그동안 각 경제 부처의 정책 추진 움직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정중동(靜中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규제 개혁, 감세, 금산 분리 완화,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운하 건설 등 큰 정책 방향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벌써 나와 있었다. 하지만 정부 부처들은 최근까지 총선을 의식해서인지 구체적인 계획 발표나 법안 제출에 소극적이었다. 청와대의 ‘돌격 앞으로’ 신호만 나오면 일제히 추진할 수 있도록 실·국 단위로 계획을 꼼꼼히 세워 놓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이다.총선 다음날(10일) 아침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여당에 과반 의석을 준 것은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만들기를 잘하라는 뜻”이라며 “핵심 규제 완화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비서관들을 독려했다. 그러면서 출총제 폐지, 법인세 인하, 금산 분리 완화, 국책은행 민영화 등 그동안 잔뜩 벼르기만 해 왔던 개혁 정책들을 하나하나 언급했다.이 중에서도 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가 가장 먼저 이뤄질 전망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는 확정적이다. 대기업 집단 계열사 간의 빚보증과 상호 출자를 금지하는 기준도 현행 자산 규모 2조 원 이상 그룹에서 5조 원 이상으로 올려 대상 기업 수를 축소하는 공정거래법 개정도 지금 상황이라면 어렵지 않게 통과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감세 법안 처리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침체 국면에 진입한 내수 경기를 띄울 카드로 정부는 감세를 1순위로 꼽고 있다. 내수를 이루는 요소는 크게 봐서 투자와 소비인데 법인세 부담을 줄여서 그만큼 기업 투자를 늘리고 개인 소득세를 낮춰서 소비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법인세 인하는 이르면 상반기 중 입법화가 가능할 전망인데 우선 최고 세율을 현재 25%에서 내년에 22%로 낮춰 2008년 귀속 소득분부터 적용하게 된다. 2013년에는 다시 20%로 내린다는 일정까지 잡혀 있다.아울러 연구·개발(R&D) 시설 투자세액 공제율을 확대하고 계열사 적자분을 상계해 주는 연결납세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사업용 토지에 대한 보유세 부담을 줄여주는 등 다양한 세금 부담 완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 기업 활동하기에는 한결 숨통이 트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소득세 부담도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총선 공약으로 종합소득세율을 1%포인트 낮추고 소득 과표 구간을 물가에 연동해 월급이 단지 물가를 따라서 실속 없이 오르더라도 세금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기로 했다.부동산 정책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가장 큰 관심사는 종부세와 양도세를 얼마나 줄여 주느냐다. 우선 고가 주택 기준을 기존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올리는 방안이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렇게 되면 서울지역에서 종부세를 내야 하는 아파트가 전체의 23%에서 11%로 낮아진다. 아울러 1가구 1주택자 중 9억 원 이하 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3년 보유 요건을(서울 과천 5대 신도시 등은 2년 거주 요건 추가) 채우면 양도세를 낼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도심 재개발·재건축의 용적률을 올려주는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게 생겼다. 그동안 재개발 재건축 절차를 간소화하자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그동안 여야와 서울시의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 부동산 시장이 또다시 들썩거릴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정부가 선뜻 손을 쓰지 못했지만 여당의 과반 의석 확보로 실타래가 풀릴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다.대운하 추진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대운하 전도사로 통하던 이재오 전 의원이 역풍을 맞고 쓰러지면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5월 17~18일 열기로 한 ‘경부대운하 토론회’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지만 순탄치는 않게 생겼다. 특히 한나라당 안팎에서 주요 세력으로 등장한 ‘친박’ 의원들이 대운하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을 경우엔 특별법 제정이 ‘불발’로 끝나면서 대운하 자체가 좌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