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월마트 웨이

월마트 웨이(walmart way). 월마트를 세계 최대 유통 업체로 만든 비즈니스 모델이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어느 곳에서나 늘 월마트 웨이가 통하는 건 아니다. 월마트는 독일과 한국에서 철수했다. 세계시장으로 급부상한 중국에서도 사정은 좋지 않다. 중국 시장에서 라이벌인 프랑스의 까르푸에 비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 월마트가 중국에 진출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으로, 까르푸와 차이가 없다. 하지만 2007년 초까지만 해도 까르푸가 중국 유통시장 매출 6위에 오른 반면 월마트는 10위권 밖에 머물렀었다.월마트 웨이의 실패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다국적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처럼 특색 있는 시장에서의 현지화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중국 돋보기’로 월마트 웨이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월마트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성장 비결은 가격 경쟁력이다. 제품 차별화보다는 ‘매일 저가격(Every Day Low Price)’으로 대변되는 가격 정책에 승부를 걸었고 이게 먹혀 들어갔다.하지만 중국에선 달랐다. 저가격 전략 자체가 통하기 힘든 토양인 게 월마트에는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중국에서는 월마트보다 저가격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이른바 ‘가격의 살수’가 즐비했기 때문에 가격으로 차별화하는 게 힘들었던 것.중국 고객들의 구매 패턴도 월마트 저가격 정책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자동차를 몰고 와서 한 번에 벌크 형태로 물건을 사가는 미국인들과 달리 중국인들은 자주 와서 조금씩 사가는 구매 행태를 보였다. 이는 비용 증대로 이어졌다. 대량 조달해 대량 판매하는 식의 ‘규모의 경제’ 효과를 중국에선 누릴 수 없었던 것.특히 중국인들은 신선 제품을 유달리 선호하기 때문에 월마트는 점포가 있는 지역 인근에서 물건을 조달해야 했다. 더욱이 중국의 뒤떨어진 물류망은 글로벌 제품 조달망을 십분 활용하는 데 장애가 됐다.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중국의 교통 인프라는 미국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토지 면적당 도로 길이가 미국의 20% 안팎 수준인 게 대표적이다. 불법적으로 부과되는 물류비용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중국의 고속도로에는 곳곳에 불법 톨게이트가 있다. 지방정부가 눈감아 준 탓에 쉽게 근절되지 않는 이 같은 불법 톨게이트들이 거둔 수입만 231억 위안(약 3조234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베이징에서 중국 남부 푸저우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 데 드는 톨게이트 비용은 1600위안(약 22만4000원)이다. 이는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보다 비싸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같은 중국적 환경으로 월마트의 저가격 정책은 한계를 보였다. 정보기술(IT) 인프라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도 월마트의 저비용을 토대로 한 저가격 전략에 걸림돌이 됐다. 월마트는 미국에서 제품 공급 업자와 실시간 정보 교류가 가능한 IT망을 구축해 가격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왔다. 제품 공급 업자는 진열대에 부족한 상품과 구매 패턴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제때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중국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제품 공급 업자의 30% 정도 만이 전산망을 갖추고 있었던 것. 중국 현지에서 95% 이상을 조달해 온 월마트로서는 가격을 내릴 수 있는 요인이 그만큼 없어진 셈이다.중국 특유의 지방 보호주의 장벽도 월마트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중국은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지방 정부에 세금 징수권을 확대하는 등 권한을 대폭 이양했다. 그래서 심화된 게 지방 보호주의다. 자기 지역에 세금을 많이 내는 기업을 우대해 주는 풍토가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된 것. 월마트는 중국에서 벌어들인 모든 소득의 결제 창구를 남부 선전에 있는 헤드쿼터로 일원화했다. 선전시에만 세금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 라이벌인 까르푸에 비해 중국내 출점 속도가 늦었던 것도 지방 정부의 인가가 제때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지난 2005년 중국의 유통시장이 완전 개방되기 전까지만 해도 출점을 좌지우지한 건 지방정부였다.중국 최대 경제 도시 상하이에 2005년이 돼서야 첫 출점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같은 지방 보호주의 장벽 탓이 컸다. 특히 상하이시는 물류센터를 상하이에 세울 것을 요구했지만 월마트가 이를 거부해 괘씸죄에 걸렸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물류센터 1개당 120개 점포를 관할하는 게 규모의 경제를 갖출 수 있다고 본다. 이를 감안하면 중국내 점포 수가 100개도 안 되는 상태에서 물류센터를 3개로 늘리는 건 월마트가 수용하긴 힘든 조건이었던 것.미국에서 통했던 시골(small town) 진출 전략도 중국에선 통하지 않았다. 월마트는 미국에서 초기에 대형 마트와의 경쟁에 따른 비용 증가를 피하기 위해 이들이 진입하지 않은 시골부터 치고 들어갔다. 무주공산인 시골에서 우위를 점한 뒤에는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다. 문제는 중국에도 시골은 많지만 월마트 문턱을 드나들기에는 이들 지역 주민의 지갑이 너무도 얇다는데 있다. 중국에서 계층 간 소득 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988년 0.38에서 2006년 0.45로 높아졌다. 0.4 이상은 심각한 수준의 불평등을 의미한다. 세계은행은 2010년께 지니계수가 폭동을 유발할 수준인 0.6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사회과학원은 총인구의 10%는 평균 국민소득의 33% 정도밖에 안 되는 소득으로 살아간다고 분석한다. 이들이 몰려 있는 곳이 중국의 지방도시다.월마트의 반노조 정책도 중국에선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세계 5000여 개 점포에 노조를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는 월마트는 캐나다에서 한 점포에 노조가 생기자 이를 폐쇄할 만큼 노조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중국에서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이 큰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월마트는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월마트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의 모습으로 중국 언론의 뭇매를 맞기 시작했고 이는 최근 들어 중국에서 심화되고 있는 반외자 정서와 맞물려 월마트의 이미지를 악화시켰다. 급기야 월마트는 2004년 11월 중국 내 노조 설립 허용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어 2006년 7월 노조 설립을 허용했다.반면 경쟁사인 까르푸는 대만에서 오랜 경험을 한 팀을 그대로 중국에 옮겨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현지화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지방정부에 세금을 충실히 냄으로써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공격적인 점포 확장을 꾀할 수 있었다.월마트는 최근 들어 중국에서의 성장 전략을 수정하고 나섰다. 지방 보호주의 장벽을 뛰어넘는 전략으로 인수·합병을 택했다. 중국 유통 업계 매출 9위에 해당하는 대만계 하오요우둬의 트러스트마트 101개 점포를 인수하면서 까르푸를 점포 수와 매출에서 앞서기 시작한 것. 까르푸를 제치고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자계 할인점으로 거듭난 것이다. 2006년만 해도 월마트는 68개 점포에서 거둔 매출이 중국 유통 업계에서 22위에 머물렀고 까르푸는 95개 점포에서 올린 매출이 6위를 기록했다.까르푸는 올해 말까지 점포를 130여 개로 늘릴 계획이지만 월마트는 하오요우둬 인수와 점포 신설 덕에 연말이면 점포 수가 260개로 늘어난다.중국에는 세계 250대 유통 업체 가운데 100개 업체가 이미 진출했다. 2006년 말까지만 해도 41개 업체만이 진입했지만 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본격적인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월마트 웨이의 개조가 중국판 월마트 드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