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하는 경제 부처들의 업무 보고가 지난 10일 기획재정부를 시작으로 보름 동안 진행된다. 재정부는 부처 건물에서 오전 7시 30분부터 이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 등 보고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서로 샌드위치로 아침식사를 함께하며 두 시간 동안 ‘속전속결’로 끝냈다. 재정부 관료들은 대체로 냉랭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이 작심한 듯 ‘공직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강조하는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 청와대는 “공무원 사회에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원칙적인 수준에서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관료들은 잔뜩 긴장했다. 대통령의 발언 수위에서 앞으로 다가올 공직 사회 개혁의 강도를 짐작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이 대통령은 업무 보고 자리에서 공무원들의 안일함을 과거 기업체 근무 당시와 비교했다. 한국 경제가 대외적인 어려움에 봉착한 상황을 들어 이 대통령은 “내가 기업에 있을 때 국제 여건이 나빠지고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면 회사 간부들은 잠을 못 잤다”고 몰아붙였다.이어 “재정에 위기가 오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고, 이렇게 된들 여러분은 감원이 되나, 봉급이 나오지 않을 염려가 있나, 출퇴근만 하면 된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른바 ‘철밥통’으로 통하는 공무원의 신분 보장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공무원들에게 “(회사가) 부도나면 어쩌나, 종업원 월급을 어떻게 줘야 하나, 이런 심정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대통령의 질타가 없더라도 재정부 공무원들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대체로 ‘죽을 맛’이었다. 아침 7시에 출근하는 ‘얼리 버드(early bird)형’ 장관을 맞은 때문에 출근 시간이 한참 앞당겨진 데다 수석 부처라며 ‘1번 타자’로 업무 보고 일정이 잡혀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보고서를 만들어왔던 터다. 그런데 이 같은 노력이 결실을 봐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타성에 젖어 있는 공무원 사회의 습성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비판이 나오자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일부 관료는 “공무원 사회에 대한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지금까지 알려져 온 수준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공직 사회를 향한 개혁의 칼날이 더욱 날카롭고 깊숙하게 밀고 들어올 것이란 걱정도 터져 나오고 있다.이 대통령은 또 새 정부 출범 이후 한두 시간씩 앞당겨진 근무 시간에 대한 일각의 불만에 ‘쐐기’를 박는 발언도 했다. “회의를 오전 7시 30분에 한다고 해서 앞으로 5년간 늘 그런 것 아닌가 하지만 공직자는 서번트(servant), 쉽게 말하면 머슴”이라며 “주인인 국민보다 앞서 일어나는 게 머슴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관료 사회에서 최고 엘리트라는 재정부 공무원들을 상대로 한 이 대통령의 강도 높은 ‘군기 잡기’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실용·현장·창의 등을 강조하며 누누이 변화를 주문했는데도 관료 집단이 기대만큼 부응해 오지 않는 데 따른 불만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반면 일각에서는 각료 인선 과정에서 몇몇 장관 후보자의 ‘자질론’이 불거지면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가 떨어진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공무원을 강하게 몰아세우는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실시된 일부 조사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50% 아래로 내려갔다. 당선 직후 70%를 넘나들던 것에 비하면 20%포인트 빠졌다.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 한 번 ‘MB 효과’를 불러일으키려면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평소 국민들에게 ‘타성’과 ‘복지부동’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관료들을 거세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지도 반전을 꾀한다는 해석이다.여태껏 숱한 정권이 공직 사회 개혁을 외쳤지만 이에 맞선 관료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는 “결국 어려울 땐 관료를 찾게 돼 있다”는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지금 과천 관가 분위기는 이 대통령이 내건 ‘작은 정부’론이 구호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때문에 잔뜩 얼어붙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