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등서 크롬 망간 등 확보… 기업들은 ‘아껴쓰기’로 화답

일본의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경제산업부 장관은 지난 11월 15일과 16일 각각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보츠와나를 방문했다. 일본에서 비행기로만 20시간 이상 걸리는 남아공까지 아마리 장관이 출장을 간 것은 희귀(稀貴) 금속 때문이다.아마리 장관은 남아공의 타보 음베키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일본의 하이테크 기술을 남아공에 전수해 주는 대신 일본 기업의 희귀 금속 광산 개발에 남아공 정부가 적극 협조해 줄 것을 약속 받았다. 보츠와나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자원 탐사 기술 제공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아마리 장관의 남아프리카 방문에는 이토추상사 등 일본 기업인 60여 명이 동행했다.일본이 디지털 가전제품 등의 제조에 필수적인 백금 코발트 니켈 등 희귀 금속을 확보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지역에 입질을 시작했다. 희귀 금속의 안정적 조달을 위한 자원 외교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석유 천연가스 우라늄과 같은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경쟁이 이제 희귀 자원을 둘러싼 2단계 자원 전쟁으로 접어들고 있다. 일본은 이 같은 경쟁에서 발 빠르게 희귀 금속의 주요 산지인 남아프리카 공략에 나선 셈이다. 특히 중국의 고속 성장 여파로 세계적인 희귀 금속 품귀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세계 최대의 디지털 가전제품 생산국 중 하나인 일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희귀 금속은 특수강 제조용 첨가제나 초경량 공구, 최신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연료전지,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부품 등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소재다. 예컨대 백금(Pt)은 자동차용 배기가스 정화 촉매제로 쓰이고, 망간(Mn)은 철강을 생산할 때 탈산화제로 사용된다. 인듐은 LCD 제조에, 몰리브덴은 합금이나 필라멘트에 쓰인다.제조업에서 사용량은 많지 않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약방의 감초’ 같은 것이 희귀 금속이다. 특히 신기술 제품이 많아지면서 희귀 금속의 수요는 더욱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특히 일본 기업들의 주력 수출 품목들은 거의 모두 희귀 금속을 필요로 한다. 타이어에서 리튬이온 배터리까지 다양한 곳에 쓰이는 코발트와 LCD에 많이 들어가는 인듐의 경우 일본은 세계 1위 소비국이다. 금속은 아니지만 희귀 자원으로서 다용도로 쓰이는 희토류(稀土類)는 일본이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이 소비한다.문제는 이 같은 희귀 금속들이 지구상 몇몇 곳에서만 생산된다는 점이다. 석유나 천연가스보다 매장지 편중이 더 심하다. 희토류의 경우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백금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전체의 약 80%를 생산한다.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희귀 금속의 수요는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공업화에 따라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했다. 지금은 일부 희귀 금속의 경우 품귀 현상마저 우려되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아프리카와 중남미 개발도상국들 사이에 자원민족주의 흐름이 강해지면서 희귀 금속 수출 통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희귀 금속의 자원민족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중국이다. 중국은 수년 전부터 희귀 금속의 대외 수출을 통제하며 자원민족주의화 경향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 실제 중국은 선진국에 수출하던 희귀 금속들을 최근 상당 부분 내수로 돌렸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희귀 금속의 유출을 막기 위해 자원 수출 허가제를 대폭 강화하기도 했다.특히 텅스텐 안티몬 주석 등 일부 금속은 수요 급증으로 인한 부족 현상에 대비해 통제를 더욱 엄격히 하고 있다. 2010년께엔 중국도 희귀 금속 등 광산 자원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중국은 텅스텐 안티몬 주석 등 희귀 금속 광산 자원이 비교적 풍부한 나라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세계 주요 희귀 금속의 수출국으로서 입지를 굳혀 왔다.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들은 희귀 금속 원료를 상당 부분 중국에 의존했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광산 자원 등에 대한 수요도 급증했다. 이대로 가다간 희귀 금속 공급이 자체 수요를 따라가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게 중국 정부의 설명이다.이 같은 우려를 배경으로 중국 정부는 국내 광산에서 생산된 희귀 금속이 대량으로 해외에 유출되는 것을 막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미 2000년부터 희귀 금속에 대한 채굴과 수출 절차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2004년부터는 수출을 장려하던 수출환급정책 시행도 점차 줄이기 시작했다.어쨌든 중국의 자원민족주의화 경향 등으로 인해 희귀 금속의 값은 급등했다. 지난 5년 동안 인듐 값은 8.5배, 강력 터빈이나 항공기에 들어가는 몰리브덴 값은 6배나 뛰어올랐다. 텅스텐은 4.7배가량 올라 사상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희귀 금속에 대한 수출 통제 등이 강화되자 일본은 자원 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아마리 장관의 남아프리카 방문도 그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 일본은 남아공과 보츠와나뿐만 아니라 주변 14개국으로 구성된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를 중심으로 다른 남아프리카 각국과 기술 협력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또 희귀 금속을 석유와 우라늄 못지않은 자원 외교 대상으로 보고 자원 확보를 위해 공적개발원조(ODA) 등의 외교 수단도 활용하기로 했다. 그동안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엔 차관 제공을 중단해 왔던 아프리카 국가에 대해서도 차관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일본 정부는 이와 함께 희귀 금속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국가 비축 대상 품목을 7개에서 대폭 확대하고 비축량도 늘리는 ‘희귀 금속 확보 종합대책’을 최근 마련했다. 일본 정부가 만든 종합 계획에 따르면 희귀 금속 공급 루트를 확대하기 위해 독립 행정법인인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가 자원 생산 국가에서 조사 사업에 본격 나서기로 했다.민간 기업이 해외에서 희귀 금속 개발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하기 위해 국제협력은행 등 정부계 금융사가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내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희귀 금속 쓰레기를 모아 재활용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희귀 금속을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를 개발하고 새로운 수입처를 확보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일본 기업들은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비철금속이나 희귀 금속의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말에 판매할 신형 세단에 사용되는 구리(銅)의 양을 기존 모델에 비해 10% 정도 줄이기로 했다. 설계 등을 바꿔 제어용 컴퓨터를 서로 접속해 주는 배선의 구리 사용량을 10%가량 삭감한다는 계획이다.혼다자동차는 세계 자동차 메이커 중 가장 먼저 연료전지차의 전지에 들어가는 백금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미쓰비시금속은 프린터 기판용 공구에 쓰이는 텅스텐 사용량을 90% 줄이기로 했다.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대체 소재·재료를 활용하는 기업도 많다. 미쓰비시전기는 에어컨 실외기 부분 구리철사를 알루미늄 선으로 바꿨다. 이를 통해 에어컨 1대당 구리 사용량을 20% 가까이 줄였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평균 6~7kg, 에어컨을 만드는 데 5~6kg의 구리가 사용된다. 따라서 일본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와 에어컨에 각각 도요타 방식과 미쓰비시전기 방식을 적용하면 연간 100억 엔 이상의 원가 절감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계산이다.희귀 금속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마찬가지다. 닛신제강 등 철강 회사는 건자재에 들어가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방수제용 소재에 쓰이는 니켈을 대신해 크롬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니켈을 사용하는 제품 비율을 종전 60%에서 50%로 낮추기로 했다.닛산제강 관계자는 “크롬과 티타늄을 사용해 내식성을 높인 제품을 만들면 니켈 사용 비율을 10% 내릴 수 있다”며 “그 경우 일본 철강 업계 전체로 1000억 엔(약 8000억 원) 정도의 원가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