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큰 철강 회사는 인도 출신 락시미 미탈 회장이 이끌고 있는 아르셀로 미탈이다. 지난해 6월 미탈스틸과 아르셀로의 합병으로 탄생한 이 업체는 한 해 동안 1억1720만 톤의 강철을 생산해 낸다. 그 뒤를 일본 철강 업체 두 곳이 큰 격차를 두고 뒤쫓고 있다. 신일본제철이 3270만 톤으로 2위, JFE가 3200만 톤으로 3위다. 포스코는 지난해 조강 생산량 3010만 톤으로 이들에 이어 4위에 머물렀다.포스코는 한때 세계 최대 철강 업체에 오르기도 했다. 1998년과 1999년, 그리고 2001년 당시까지만 해도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던 신일본제철을 밀어내고 조강 생산량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유럽과 일본에 인수·합병(M&A) 붐이 일면서 세계 철강사 순위는 요동쳤다. 포스코의 조강 생산량은 2001년 2783만 톤에서 매년 꾸준히 증가했는데 순위는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현재 생산 규모에서 포스코를 4배 가까이 앞지르고 있는 아르셀로 미탈은 바로 M&A 경쟁의 화려한 승자다.그러나 양적 기준이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 세계 철강사 순위를 매긴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미국의 권위 있는 국제 철강 산업 조사 업체인 WSD(World Steel Dynamics)가 매년 발표하는 ‘World-Class Steel Makers’는 철강사들의 경쟁력을 재는 척도로 자주 인용된다. 포스코는 WSD의 올해 조사에서 2006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1위는 자체 보유한 철광석 광산과 저렴한 인건비를 토대로 높은 가격 경쟁력을 보유한 러시아의 세바스탈이 차지했다. 포스코는 수익성과 제품 품질, 기술력 등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철광석 자원 보유, 설비 확장 등에서 세바스탈에 밀렸다. 이는 천연자원이라는 불가항력적인 변수를 제외하면 포스코가 세계 철강 업체들 가운데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실제로 포스코는 원자재 값 폭등으로 광산 보유 여부가 중요해지기 이전에는 WSD의 경쟁력 평가에서 2002년 이후 줄곧 1위를 지켜왔다.포스코는 수익성과 효율성이 뛰어난 철강 기업으로 꼽힌다. 중국 철강 붐이 본격화된 2004년 이후 매년 5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남기고 있다. 2004년 5조54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면 2005년에는 5조9120억 원으로 기록을 갈아치웠다. 영업이익률도 2004년 25.5%, 2005년 27.2%로 고공행진을 했다. 지난해에는 영업이익 3조8920억 원, 영업이익률 19.4%로 성장세가 다소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경쟁사에 견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둘러보면 포스코의 뛰어난 경쟁력의 비밀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1970년 모래바람 몰아치는 영일만 허허벌판에서 첫삽을 떠 1983년 대역사를 끝낸 포항제철소는 해안을 따라 ‘U’자 형으로 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호주에서 실어온 철광석과 석탄을 쌓아놓은 거대한 야적장에서부터 쇳물을 뽑아내는 용광로와 전로, 각종 철강 제품을 만들어내는 열연공장, 냉연공장, 거기다 최종 제품을 실어 나르는 부두까지 모든 공정이 끊이지 않고 연결돼 있다. 공정 내 물류 흐름이 최적화돼 있는 것이다. 각 공장들이 산재해 있어 쇳물이나 중간재를 실어 나르고 관리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을 써야 하는 다른 철강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첫삽을 뜰 때부터 10년, 20년 후를 내다보고 제철소 배치를 구상한 혜안에 절로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1985년 착공해 1992년 종합 준공식을 가진 광양제철소는 이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꿈의 제철소’로 불린다. 바다를 메워 부지를 조성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지형의 제약을 받지 않는 이상적인 ‘레이아웃’이 가능했다. 철광석과 석탄 야적장에서부터 용광로, 전로, 열연공장, 냉연공장까지 마치 하나의 라인처럼 ‘1’자로 배치돼 있다. 철광석과 석탄을 넣으면 하나의 라인을 타고 각 공정을 차례로 거치면서 마지막에 철강 제품이 튀어 나오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또한 광양제철소는 항구 입지도 뛰어나다. 수심이 22m로 깊어 25만 톤급 선박 두 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다. 이는 주원료인 철광석과 석탄을 한 번에 대량으로 들여올 수 있고 그만큼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곳에서 전 세계 60여개국으로 철강제품이 팔려나간다.광양제철소는 단일 제철소로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면적만 해도 여의도의 7배에 달한다. 단순히 면적만 넓은 것도 아니다. 광양제철소는 전기로를 제외한 고로형 일관제철소로는 가장 최근에 지어진 최신형 제철소다. 1992년 광양제철소 완공 이후 세계를 통틀어 이만한 규모의 제철소가 새로 지어진 적이 없다. 광양제철소의 뒤를 잇고 있는 곳은 바로 포항제철소다. 포항제철소는 단일 제철소로는 광양제철소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포스코의 이런 강점들은 경쟁사들과 비교해 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현재 세계 최대 철강 업체인 아르셀로 미탈은 부실 제철소를 공격적으로 사들이며 성장했다. 미탈 자신이 새로 지은 제철소는 전무할 정도다. 이 때문에 외형은 크지만 수익성이 낮고, 낙후된 제철소가 상당수다. 다른 철강사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랜 역사를 가진 유럽과 북미 제철소들은 끊임없는 합리화 과정을 거치면서 느리게 이합집산을 거듭해 왔다. 물류의 효율성과 집적도에서 포스코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 최근 20~30년 동안 대규모 일관제철소를 직접 건설해 본 경험을 갖고 있는 곳은 포스코가 거의 유일하다. 이는 인도 오리사주 제철소 건설 프로젝트 등 포스코의 해외 ‘그린필드 투자’에 경쟁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지난 5월 말 포스코는 세계 철강 업계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친환경 제철 기술인 ‘파이넥스(FINEX)’ 공법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것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하늘 높이 치솟은 굴뚝과 독한 유황 냄새는 제철소의 변치않는 이미지로 자리 매김했다. 하지만 파이넥스의 등장으로 제철소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지게 됐다.기존 제철 공정에서는 원료인 철광석과 석탄을 단단한 덩어리 형태로 만드는 사전 처리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렇게 만든 소결광과 코크스를 용광로에 교대로 차곡차곡 장입한 다음 초고온의 열풍을 불어넣어 쇳물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문제는 소결광과 코크스를 만든 과정에서 환경오염 물질의 대부분이 발생한다는 데 있다. 제철소에서 가장 높은 굴뚝이 솟아 있는 곳은 바로 소결 공장과 코크스 공장이다.파이넥스는 철광석과 석탄을 사전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투입해 쇳물을 만들어내는 획기적인 방식이다. 제철소에서 소결 공장과 코크스 공장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기 오염 물질 배출량을 기존 고로 방식에 견줘 최대 99%까지 줄일 수 있다. 파이넥스의 강점은 이뿐만 아니다. 파이넥스는 경제성에서도 기존 고로 방식을 훨씬 앞지른다.그동안 제철 원료로 쓸 수 있는 철광석과 석탄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철광석은 덩어리 형태인 괴철광석, 석탄도 덩어리 형태로 잘 뭉쳐지는 고점결성 유연탄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전체 매장량의 15~20%에 불과해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100여 년간 제철 과정에 집중적으로 사용돼 고갈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파이넥스는 자연 상태에 훨씬 풍부하게 존재하는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일반 석탄을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전체적으로 파이넥스 설비는 공정 단축으로 기존 용광로보다 건설 비용은 20%, 제조 원가는 15%가량 절감해 준다. 신성기 포스코 파이넥스기술팀 리더는 “가장 많이 쓰이는 300만 톤 규모 용광로를 짓는데 1조5000억 원이 필요한데 여기서 20%면 3000억 원으로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고 설명한다.지난 5월 가동에 들어간 파이넥스 공장은 U자형으로 배치된 포항제철소의 한쪽 끝에 위치해 있다. 현재 파이넥스 공장의 설비 용량은 연간 150만 톤 규모로 포스코의 총 조강 생산량의 5% 남짓을 겨우 차지할 뿐이다. 하지만 포스코에서 파이넥스가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파이넥스 공장은 포항제철소 내에서도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는 보안 구역이다. 특히 철강사 관계자들의 경우 엄격한 사전 심사를 거쳐야만 견학이 가능하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지난 8월 한국공학한림원 CEO포럼에서 “파이넥스는 포스코의 해외 진출을 위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최근 세계 철강 업계의 최대 화두는 환경 문제다. 그동안 친환경 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됐지만 철강 산업은 여전히 공해 유발 산업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들은 제철소 신·증설에 점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동희 포스코 부사장은 최근 영국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부 국가들은 포스코가 파이넥스 공법을 사용하는 경우에만 공장 건설을 허가하려 할 정도”라며 “상당수 중국 철강 업체들이 포스코와의 협력을 희망하는 주요인도 다름 아닌 파이넥스”라고 말했다. 파이넥스는 설비비가 적게 들 뿐만 아니라 질 낮은 철광석과 석탄을 사용해 생산비가 적게 들며 기존 공법에 비해 환경 친화적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포스코는 우선 현재 인도와 베트남에 추진 중인 일관제철소에 파이넥스 공법을 도입할 계획이다.공격적인 해외 생산기지 구축은 포스코 성장 전략의 한 축이다. 포스코는 양적 측면에서 ‘글로벌 빅3’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1년까지 국내외를 포함, 5000만 톤 이상의 글로벌 조강 생산 능력 확보를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포스코의 조강 생산 능력은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합해 연간 3000만 톤 수준이다. 당장 최소 2000만 톤의 생산 설비 확대가 필요한 셈이다. 그런데 성숙 시장인 국내에서는 설비 확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방법은 적극적인 해외 진출뿐이다. 글로벌 성장 전략은 미래 성장 시장의 선점과 점점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철광석, 석탄 등 핵심 원료의 안정적인 확보라는 차원에서도 필수적이다.포스코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곳은 중국과 인도, 베트남이다. 중국은 세계적인 철강 붐의 진원지다. 연 10% 안팎의 고도 성장을 거듭하면서 전 세계의 철강 제품을 빨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2002년 이후 대규모 시설 투자를 통해 2004년 철강 순수입국에서 순수출축으로 전환했으며 2006년 이미 세계 최대의 철강 수출국 자리에 올라있다. 현재 중국 정부가 용광로 증설 억제 정책을 펴고 있어 중국 내 제철소 신규 건설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기존 중국 철강 업체와의 M&A를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고급 강종인 스테인리스 스틸의 경우, 지난해 중국 장쑤성에 연간 80만 톤 규모의 장가항포항불수강 스테인리스 스틸 일관제철소를 준공하는 성과를 거뒀다.2005년부터 인도 오리사주에 추진 중인 1200만 톤 생산 능력의 일관제철소 프로젝트도 내년 초 본격 착공한다. 인도 제철소는 현재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지닌 광양제철소보다 생산성이 30% 이상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값싸고 질 좋은 인도 철광석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데다 가장 최신의 설비로 건설되기 때문이다.베트남 일관제철소는 현재 타당성 검토가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포스코는 베트남 최대 국영 조선소인 비나신그룹과 일관제철소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채결했다. 베트남 중남부 해안 지대인 반퐁만에 연간 800만 톤 생산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한다는 것이 대략적인 구상이다.‘글로벌 톱3’ 도약은 포스코 성장 전략의 또 다른 축이다. 범용 철강 제품에서 고부가가치 고급 강재로 중심을 옮기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강판, 고급 API 강재, 400계 스테인리스강, 건기강판, TMCP 강재, 고기능 열연 및 냉연, 고급 선재 등 고부가가치 전략 제품 비중을 2009년까지 80%대로 끌어 올리겠다는 게 구체적인 목표다. 지난해 이들 전략 제품의 판매 비율은 57%를 돌파했다.광양제철소는 ‘글로벌 톱3’ 전략의 핵심 기지다. 8대 전략 제품 중 가장 비중이 큰 제품은 단연 자동차용 강판이다. 광양제철소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강판 전문 제철소’를 내걸고 있다. 자동차 강판에 ‘올인’한 셈이다.현재 세계 자동차 강판 소비량은 연간 7000만 톤가량이다. 이 중 10%에 가까운 600만 톤을 포스코가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쓰는 물량은 연간 250만 톤 안팎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전세계 자동차 회사들에 공급된다. 아르셀로 미탈과 티센그룹은 주로 유럽 자동차 회사에, 신일본제철과 JFE는 주로 일본 자동차 회사에 자동차 강판을 공급한다. 하지만 포스코는 닛산 혼다 폭스바겐 피아트 GM 등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에 가장 광범위하게 제품을 팔고 있다. GM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메이커로 올라선 도요타의 경우 해외 공장들은 포스코의 강판을 쓰고 있지만 일본 국내 공장은 여전히 일본 제품을 고수하고 있다.최근 자동차 산업의 트렌드는 경량화다. 이에 따라 자동차 강판을 생산하는 철강 회사들은 무게는 가볍고 강도는 높은 새로운 강종과 가공법을 개발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자동차 강판은 운전자 및 보행자의 안전, 연비 등과 직결되는 하이테크 제품이다. 무조건 튼튼하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강한 곳은 강해야 하지만 찌그러져야 하는 곳은 잘 찌그러져야 한다.포스코는 2005년 광양제철소에 유압을 이용해 복잡한 형상을 성형할 수 있는 하이드로포밍 공장을 건설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두께와 강도, 재질이 서로 다른 강판을 적절한 크기와 형상으로 절단해 레이저로 용접하는 맞춤재단용접강판(TWB) 공장을 완공했다. 하이드로포밍과 TWB는 자동차용 차세대 철강 기술로 불리는 첨단 기술이다.하이드로포밍은 금형 안에 강관을 넣고 순간적으로 고압의 수압을 가해 원하는 형상으로 가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주물 제작이나 여러 개의 강재를 덧대 만드는 것보다 부품 수는 적어지고 품질은 향상된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리어 서스펜션’의 경우 하이드로포밍을 사용하면 부품 수는 4개에서 1개로, 무게는 9.1kg에서 6.8kg으로 줄일 수 있다. TWB는 다양한 강판을 섞어 사용하는 맞춤식 재단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를테면 자동차 문짝의 경우 주변부와 중심, 위와 아래 부분에 필요한 강도가 다 다르다. 무조건 똑같은 강도로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TWB는 적정 강도의 강판을 필요한 만큼 쓸 수 있게 해 전체 무게를 대폭 줄여준다.광양제철소가 자동차 강판 분야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부터다. 박하선 포스코 자동차가공연구그룹 책임연구원은 “최근 몇 년 사이 포스코의 자동차 강판 품질이 엄청나게 발전했다”며 “이미 JFE는 추월했으며 신일본제철을 따라잡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자동차 강판 분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동차 회사들의 눈높이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제 자동차 연구개발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포스코는 2001년부터 초기 고객사 차량 개발단계 개입(EVI)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