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초 숱한 화제를 낳았던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센터(DMC) 내 팬택계열 사옥이 최종 매각됐다. 팬택계열의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 일환으로 매각이 진행됐던 이 사옥은 ING생명, 마이다스에셋과 매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세부 사항을 놓고 이견을 보여 매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다 결국 아지아(AJIA)펀드에 2000억 원에 팔렸다. 아지아펀드는 골드만삭스에서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던 인도·중국계 직원들이 설립한 인수·합병(M&A) 전문 펀드로 운용 자산이 약 5조 원에 이른다. 협상 결과는 관련 업계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우선 이 건물은 정보기술(IT) 관련 업체만 입주할 수 있도록 용도가 지정이 돼 있다. 물론 팬택계열이 건물의 60%를 쓰고 추후 리스 백(임대 후 재매입 시 우선 협상)이 가능하도록 했지만 40%에 달하는 임차인을 마음대로 구할 수 없다는 점은 치명적인 약점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지아펀드는 상암동 건물을 3.3㎡당 1000만 원에 매입했다. 불과 몇 달 전 바로 옆 건물이 국내 모 부동산 펀드에 3.3㎡당 700만 원에 매각된 것과 비교해 볼 때 상당한 차이다.한 국내 오피스 관리 업체 관계자는 “월 임대료가 3.3㎡당 5만 원에 불과한 데다 인프라도 아직 덜 갖춰져 있고 역세권도 아닌 상암동 부동산을 이토록 고가에 구입했다는 것 자체가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더군다나 상암동 DMC는 특혜 논란이 진행 중인 곳”이라며 아지아의 행보에 놀라움을 표시했다.외국계 업체들이 국내 부동산 매입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98년 외국인들이 국내 부동산을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외국인토지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지난 1999년 여의도 고려증권 사옥이 980억 원에 미국 휴렛팩커드에 팔린 것을 시작으로 국내 상당수 오피스 빌딩들이 거대 외국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 물론 당시는 외환위기라는 특수 상황도 맞물린 때였다.극한으로 치닫던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외국계 부동산 회사들의 행보도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안정적인 임대 수익을 올리며 중장기 투자가 가능한 물건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최근 들어서는 사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간접 투자 시장이 커지면서 국내 증권사, 보험사, 자산운용사들이 대항마로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1분기부터 올 3분기까지 서울 시내에서 거래된 오피스빌딩 중 국내 업체가 인수한 사례는 총 97건으로 외국계 업체들(93건)을 앞질렀다. 외국계와 국내 업체가 공동으로 인수에 나선 경우는 지난해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본사사옥을 메릴린치와 신한은행이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과 중구 을지로2가 내외빌딩을 GE부동산부문과 국민연금이 공동으로 인수한 것 등 2건이다.요지에서 물건을 찾는 것 또한 옛날이야기가 돼 버린 지 오래다. 국내 시장을 기웃거리는 해외 기관투자가 수도 과거에 비해 3~4배 이상 증가했다. 일본계인 크리드와 레드우드, NCC, 어번 코퍼레이션이 한국 진출을 선언했고 독일계인 데카(DEKA), 데기(DEGI)를 필두로 각국 연기금들도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그렇다고 해서 프라임급 물건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 못한 것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모건스탠리는 지난 7월 남대문로 5가 대우센터빌딩을 9600억 원에 매입했다. 당초 예상치인 7000억~8000억 원을 크게 뛰어넘는 금액이다.“요즘은 외국 기관투자가들에게 ‘괜찮은 물건 있는데 보겠느냐’는 e메일을 보내면 바로 다음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는 답장을 받습니다. 국내에 와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도 좋으니 물건만 찾아달라는 e메일을 받는 일이 부지기수죠.” (CBRE 임세훈 부장)외국계 업체들의 한국 부동산 짝사랑은 포트폴리오 다각화 측면이 강하다. 우리나라가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 곡선을 그려 왔다는 점도 국내 부동산 시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새빌스-BHP코리아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서울 오피스 시장은 꾸준한 임대료는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한 반면 공실률은 다른 아시아 주요들에 비해 크게 낮아 안정적인 기조를 나타냈다.(표 참조)한 외국계 부동산 업체 관계자는 최근 들어 부쩍 “본사로부터 ‘실탄(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보내 줄 테니 ‘제로 수익률’ 이상 나오는 물건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지시를 받는다면서 “본사에선 중국은 고수익 고위험 구조고 일본은 저수익 저위험 구조인데 비해 한국은 수익률 면에서 일본을 앞서고 위험도는 중국보다 훨씬 덜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러다 보니 물건을 찾는 곳도 과거 3대 권역(도심, 강남권, 여의도·마포)에서 탈피, 서울과 일산, 분당 등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6월 분당구 서현동 분당삼성플라자 3만여㎡를 1400억 원에 애경으로부터 매입했고 수내동 초림빌딩 역시 7월 제너럴일렉트로닉(GE) 부동산부문이 525억 원을 주고 론스타로부터 사들였다.개발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AIG가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개발에 나섰고 미국계 부동산 개발 회사인 게일인터내셔널, 포트만 등이 송도 자유무역지역 개발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달 초 용산역세권 국제업무지구의 최종 사업자로 선정된 삼성물산 컨소시엄에는 아지아펀드, AIG 등이 투자자로 참여했고 싱가포르투자청(GIC)은 파주운정신도시 중심상업지구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레드우드는 포천 이동면에 골프장 개발을, 싱가포르 개발 회사인 CDL은 동양제철화학 인천공장 부지 내 복합단지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도이치뱅크도 골프장 개발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새빌스-BHP코리아의 홍지은 팀장은 “서울 지역 어디든 11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16525여㎡(옛 5000여 평) 이상만 되면 무조건 구입하려는 경향이 크다”면서 “대구 밀리오레와 부산 스폰지 등 쇼핑몰 재개발에 외국계 자본인 도란 캐피털 파트너스가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라고 전했다.싱가포르 개발회사인 아센다스는 지난 7월 경기도 광주시 물류 창고인 데코와 이천시 마장면에 위치한 코리아2000을 10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들여 인수했고 같은 싱가포르계인 알파 인베스트는 광주시 초월면에 위치한 YK038과 안성시 방초리 에버게인 등 3곳의 물류 창고를 매입했다. 맥쿼리, 리얼티어드바이저스 등은 부동산 간접 시장 확대에 대비, 자산관리회사(AMC)를 공식 설립하는 등 시장 선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일본계 부동산 개발 회사인 크리드는 200억 원 내외 소규모 건물만을 매입하려는 등 상품에 대한 수요 또한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송창섭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