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한 기업실적 ㆍ유동성 호재 많아도 악재 만만찮아

뉴욕 증시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의 상승세가 범상치 않다. 미국을 비롯한 한국 중국 등 24개국 증시가 올 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러다 보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는 찬탄이 나온다. “사상 최대의 초호황 국면에 슈퍼 상승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도 깊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증시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서서히 힘을 얻고 있다. ‘너무 올랐다’거나, ‘투자 리스크를 너무 간과한다’는 경고도 나온다. 실제 거칠 것 없던 뉴욕 증시는 쉬어가려는 모습도 엿보인다.케인즈는 “경제 전망은 예술”이라고 했다. 맞히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다. 시장 참가자들의 투자 심리가 주된 이유로 작용하는 증시는 말할 것도 없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조차 ‘시장의 힘’ 앞에서 전망치를 수정하는 곤욕을 치르는 게 요즘이다. 그런 만큼 증시가 어떻게 움직일 것이라고 감히 전망하는 건 어쩌면 오만이다.그렇지만 상황과 변수는 따져볼 수 있다. 호재도 있고 악재도 있다. 호재가 나타나면 악재가 보이지 않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악재만 보이는 게 증시다. 글로벌 증시를 이끌고 있는 뉴욕 증시에도 환경적 요인의 호재와 악재는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3대 양호한 여건으로 글로벌 경제의 호황과 양호한 기업 실적, 풍부한 유동성을 꼽는다. 반면 주택 경기의 장기 침체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파문에 따른 신용경색 우려, 금리 상승 추세를 3대 불안 요인으로 간주한다. 이런 요인들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증시를 움직일 전망이다. 현재로선 호재가 더 강해 장기적으로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뉴욕 증시는 지난 2월 말 ‘중국발 쇼크’로 휘청거릴 때만 해도 ‘올 농사는 물 건너 갔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웬걸. 경제 지표 호조로 상승세를 타더니만 대형 기업 인수·합병(M&A)으로 가속도를 냈다. 좀 쉬어갔으면 하는 기색이 역력할 무렵에 기업 실적 호조가 다시 상승을 견인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다우지수는 지난 7월 18일까지 올 들어 무려 31차례나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기염을 토했다.이 세 가지가 앞으로 추가 상승을 점치게 하는 3대 여건이다. 우선 글로벌 경제 호조의 경우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현재진행형 사실’이다. 유럽과 일본의 경제는 탄탄대로다. 중국과 인도 등 개발도상국 경제는 과열을 염려할 정도로 초호황이다. 주택 경기 침체라는 늪에 빠진 미국 경제마저 지난 2분기부터는 회복세가 뚜렷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별로 나쁜 상황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이 같은 호황세는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이러다 보니 경제 전문지 <포천>은 2000년 이후의 경제 호황을 ‘사상 최대의 경제 호황’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보기술(IT)의 혁신을 통해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이 가능하다는 ‘신경제 붐’이 일었던 1990년대와 오일 쇼크 직전의 1970~73년 글로벌 경제 붐보다도 더 강한 초경제 호황이 지난 2000년 초부터 계속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글로벌 5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들 입에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탄성이 나오고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경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이만한 호황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포천>은 전했다.특히 세계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성장의 과실을 각 나라에 분산하는 효과를 내고 있어 한나라의 호황이 다른 나라로 빠르게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작년부터 세계 증시를 견인해 온 ‘유동성의 힘’도 여전히 분출되고 있다. 세계적인 저금리를 바탕으로 풍부해진 유동성은 각국 증시를 넘나들고 있다. 더욱이 상품 시장의 오름세가 주춤해진 데다 세계적으로 부동산 경기가 조정 양상을 보여 돈은 증시로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힘입어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 M&A 소식이 꼬리를 물고 있다. 물론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 조짐을 보이면서 유동성의 위축을 우려하는 시각이 없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엔화 약세에 따른 ‘엔 캐리 트레이드’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데다 글로벌 금리도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어서 유동성의 힘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미국 기업의 실적 호전도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여건이다. 미 500대 기업의 순이익 증가율은 지난 1분기에 평균 10.3%를 기록해 15분기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갔다. 1분기 미 경제성장률은 0.7%. 이를 감안하면 기업 수익도 줄어야 한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외국에서 순이익의 40%가량을 챙기다보니 기업 수익의 증가세는 그칠 줄 모른다.물론 2분기 500대 기업의 순이익 증가율은 4.4%로 급속히 둔화될 것이란 게 현재까지의 전망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속성상 순이익 전망을 보수적으로 한다. 따라서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예상치보다 평균 3%포인트 순익 증가율이 높았다. 더욱이 미 경기가 2분기부터는 본격적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2분기 순이익 증가율도 예상치를 훨씬 웃돌 것이란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세계 경기의 동반 호황과 왕성한 M&A로 대표되는 유동성의 힘, 여기에 양호한 기업 실적이 어우러지면 ‘급등에 따른 우려’는 단순히 우려에 그칠 것이란 게 낙관론자들의 주장이다.그렇지만 불안 요인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툭하면 증시 표면에 등장해 발목을 잡곤 한다. 가장 첫 번째 불안 요인은 주택경기의 장기 침체. 당초 올 하반기에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던 미 주택 경기의 침체는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등 대부분 금융회사들은 주택 경기 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수정 전망을 이미 내놨다.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주택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경기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구체적으론 올 성장률이 2.25~2.5%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FRB가 지난 2월 전망한 2.5~3.0%보다 0.25~0.5%포인트가량 낮은 것이다.주택 경기 침체에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여파도 쉽게 가시지 않는 불안 요인이다. 서브프라임 파문은 특히 신용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쳐 신용경색을 야기할지도 모른다는 점 때문에 증시에 미치는 직접적인 파괴력이 더욱 크다.실제 서브프라임에 주로 투자하던 베어스턴스의 2개 헤지 펀드는 사실상 청산 상태에 봉착했다. 서브프라임 부실이 크다 보니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담보로 발행된 채권에 주로 투자했던 헤지 펀드의 자산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베어스턴스는 긴급자금을 투입해 청산만은 막아보려 애쓰고 있다. 그렇지만 투자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2개 헤지 펀드의 값어치가 별로 없다’고 고백한 것처럼 손실은 예상을 뛰어 넘는다.서브프라임 문제가 심각한 것은 채권 시장 및 신용 시장에 연쇄 파급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서브프라임을 담보로 발행된 채권은 물론 모기지를 기반으로 한 채권을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더욱이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와 S&P가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하향 조정해 우려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심리는 갈수록 확산돼 대출담보채권(CDO) 전체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야금야금 오르고 있는 금리도 태풍의 눈이다. 물론 미국 기준금리는 계속 동결된 상태다. 그렇지만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 등의 수익률이 오르면서 모기지 금리도 오르는 추세는 이어진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세계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다.금리 인상은 곧 유동성 위축을 의미한다.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게 어려워지는 만큼 M&A도 한풀 꺾이게 된다. 일본 금리마저 올라 엔 캐리 트레이드가 해소될 경우 유동성이 썰물처럼 고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국제 유가마저 배럴당 80달러에 육박하며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하고 있어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다.월가에는 ‘증시는 우려(worry)의 벽을 타고 오른다’는 격언이 있다. 우려가 많을수록 증시는 오른다는 얘기다. 이런 격언은 지금까지는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앞으로도 격언이 맞아 3대 양호한 여건이 3대 불안한 여건을 누를 수 있을지 주목해야할 듯싶다.하영춘·한국경제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