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관료도 가차없이 목날려 ㆍㆍㆍ해외 비난여론에 '지나치다'반발

장면 1: 지난 10일 오전 쩡샤오위 전 중국 식품약품감독관리국장의 사형이 집행됐다. 사형선고를 받은 지 한 달여 만이다. 금품을 받고 발급 금지 또는 인가 철회 대상 의약품에 일련번호를 승인해줘 6종의 가짜 의약품이 양산되도록 한 혐의다. 2005년까지 8년간 중국 13억 인구의 식품과 약품 안전을 책임졌던 수장은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쩡 전 국장은 중국이 1978년 개혁 개방을 시작한 이후 부정부패를 이유로 사형당한 4번째 장관급 인사다.장면 2: 같은 시간 베이징의 국무원 신문판공실(국정홍보처) 기자회견장. 식품약품감독관리국 농업부 위생부 등 5개 부처가 국가식품안전 11·5(2006~10년)계획을 소개하는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올 들어 ‘메이드 인 차이나’가 세계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량제품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일들이다. 중국 지도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국 경제잡지 <재경>은 ‘중국 제조에 닥친 폭풍’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경쟁국 기업들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중국산 저가 제품을 선호해 온 전 세계 소비자들이 중국산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위기”라고 진단했다. 중국산 제품의 불량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중국산 제품이 세계 시장 곳곳에 빠른 속도로 침투하면서 이의 안전 문제가 세계를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세계 시장으로 실려 나가는 중국산 제품이 올 상반기에도 급증하면서 이 기간 중국의 무역 흑자는 사상 최대 규모인 1125억 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독성물질이 포함된 식료품과 의약품 생활용품 등 중국산 불량제품의 위험성이 올 들어 크게 부각되면서 미국 유럽 등 각국에서 중국산에 대한 제재조치가 잇따르고 있다.미국에서 중국산에 대한 불신은 지난 3월 미국의 개와 고양이 수천 마리가 숨지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미 식품의약국(FDA) 조사 결과 동물 사료에 들어가는 밀단백에 인체에 유해한 멜라민이 함유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자동차 부동액 등에 쓰이는 화학물질인 디에틸렌글리콜이 중국산 치약에서 발견됐고, 중국산 수산물에서도 인체에 유해한 항생제 성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FDA는 항생제와 불법 화학물질이 검출된 중국산 양식 수산물 5종의 수입을 금지했다. 중국산 원료 조미료를 사용한 미국 회사의 스낵 제품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것으로 지목돼 소송까지 제기됐다. 리콜 조치를 받은 중국산 제품이 꼬리를 물고 생겨나자 켈로그 토이저러스 등 미국 기업들도 자사가 수입 판매하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안전 검사를 부쩍 강화하고 나섰다. 미국의 한 건강식품 회사는 아예 ‘차이나 프리(China Free)’ 표시 라벨을 붙이기로 했다. 식용 및 동물용 건강식품을 만들어 파는 ‘푸드포헬스인터내셔널’은 미국에서 가공 포장된 유기농 원료만을 사용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중국산 위험 경계령은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들에 독성 중국산 치약을 최근 적발했는지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이탈리아의 농민연맹 로마지부는 이탈리아산으로 둔갑한 중국산 토마토로부터 시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일본은 중국산 치약 수백만 개에 대해 리콜을 실시했고, 말레이시아는 치약을 위주로 중국 제품에 대한 수입 검사를 강화했다. 필리핀도 국수와 사탕 어묵 등 중국산 식품을 수입할 때 검사 기준을 높였다. 홍콩도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파크앤숍이 신선한 중국산 채소에 한해 컴퓨터 바코드를 부착한다는 광고를 시작했다. 이 바코드는 농장의 이름과 주소 등 채소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중국산 불량 문제는 자국 내에선 이미 위험수위에 이른 상태다. 짝퉁 양주는 기본이고 석회석을 이용해 만든 가짜 달걀은 물론 우유 하나 없는 가짜 우유, 아이들 머리가 커지게 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짝퉁 이유식, 폐 가죽을 수거해 만든 젤리 등은 이미 사회문제화된 사례들이다. 패스트푸드를 먹은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 얼굴에 수염이 나고,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가 비정상적으로 가슴이 커지는 일도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세계보건기구(WHO)도 중국에선 매년 미국 전체 인구에 맞먹는 3억 명이 불량음식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까지 했다.중국산 불량 문제에 대해 중국 지도부는 강한 위기감을 갖고 있다. 당장 내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중국은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성장으로의 성장 방식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비중을 늘려 싸구려 메이드 인 차이나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중국의 구상이 불량 문제라는 장애물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불량제품에 대해 고강도 규제를 펴는 동시에 중국산에 대한 해외의 비난 여론이나 수입 규제에 대해 공격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 이중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우선 장관급 인사에 대한 사형 집행은 중국 당국이 불량제품 근절을 위해 부패 고리를 끊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보게 한다. 최근 중국 최고인민법원이 주식을 선물로 받는 행위 등 10가지의 구체적인 뇌물 수수 유형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혁 개방 이후 지방정부에 과감하게 권한을 이양함으로써 중앙의 통제가 느슨해지면서 부패가 만연해지고 이는 불량제품에 대한 단속을 피해갈 부패 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중국 당국은 부정부패 척결에 나서는 한편 모든 식품에 대해 리콜 시스템을 적용하는 규정도 연내 마련하기로 했다. 화학원료나 첨가제를 넣어 불량식품을 만들어 온 180개 식품 업체를 최근 폐쇄하는 강경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베이징시는 아예 불량제품 생산을 적발한 시민들에게 주는 포상금을 종전의 5배 수준인 5만 위안(약 600만 원)으로 올렸다. 중국 언론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저질 제품으로 인식되던 일본산을 고품질의 대명사로 바꾼 일본의 사례를 배우자는 주장도 편다. 국가품질감독검사검역총국은 6362개 중국 기업이 만든 114개 분야 7200여 개 품목 조사 결과를 최근 내놓았다. 불량률이 19.1%로 다섯 개 중 하나는 불량으로 나타났다.중국 당국은 자체 정화 노력과 함께 해외의 비난 여론에 강경 대응하기도 한다. 리창장 국가품질감독검사검역총국 국장은 “미국의 조치는 무차별적이고 수용하기 힘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미국에서 수입되는 식품도 많은 경우가 수준 미달임을 탐지해 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의 중국산에 대한 잇단 수입 규제가 자칫 무역 보복전 양상으로 번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 내에서 판매되는 외국산에 대한 불량 문제를 부각하는 중국 당국의 조사 결과나 이를 집중 조명하는 중국 언론의 보도도 이어진다. 중국산에 대한 외국의 경계감이 중국내 반외자 정서로 번지는 꼴이다.그런 점에서 중국산 불량 문제는 강 건너 불구경 할 일이 아니다. 자칫 반외자 정서에 휘말릴 경우 중국에서 어렵게 쌓은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품질 관리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반면 13억 중국이 안전에 높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품질 경쟁력이 앞선 한국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원가 경쟁력에는 밀렸지만 품질 면에서 앞선 강점을 내세워 중국 시장에서 차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오광진·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