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중심 상품·서비스 선보일 터’

대담 = 김상헌 취재편집부장김원배 근로복지공단 이사장(55)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노동문제 전문가다. 1973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첫발을 디딘 이후 30여 년 동안 줄곧 노동부에 몸담아 왔다. 청와대 노동비서관, 노동부 노사정책국장, 기획관리실장을 차례로 거치며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신 노사관계 구상’,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설치, 발전노조 파업, 민주노총 합법화 등 1990년대 노사 관계의 획을 그은 굵직한 현안들을 도맡아 처리했다. 그런 그가 지난 2월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맡아 정통 노동 관료에서 공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했다. 김 이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고객 중심’을 외치며 비대해진 공단에 새로운 혁신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5월 초에는 1995년 공단 창립 이후 처음으로 전체 임직원을 모아 단합대회와 경영 설명회도 개최했다. 지난 5월 14일 근로복지공단의 ‘제2의 도약’을 이끌고 있는 김 이사장을 만나 그의 개혁 청사진을 들어봤다.근로복지공단은 어떤 일을 합니까.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우선 산재보험 업무가 있어요. 1995년 공단 출범 때부터 이것이 주업무였지요. 산재보험료를 징수해 산재를 당한 근로자들을 치료해 주고, 보험 급여도 지급합니다. 원직에 복귀할 수 있도록 재활 프로그램도 운영하지요. 지난해에만 3조8000억 원을 산재보험료로 거둬들였어요. 또 하나는 일반 근로자들을 지원하는 복지 업무지요. 주로 저소득 근로자가 대상인데 생활안정자금도 지원해 주고 의료비, 장례비, 이사비, 장학금까지 700만 원 한도에서 3.7% 저리로 융자해 줍니다. 공단 출범 후 지금까지 75만 명이 혜택을 봤어요. 게다가 실직자를 위한 창업 지원 사업도 하고 전국 24군데 보육시설도 운영합니다. 퇴직금이나 밀린 임금을 대신 지급해 주고 추후 기업 상대로 추징하는 일도 합니다.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는 일이 무척 많지요.경영 환경은 어떻습니까.작년 말 노사정 합의로 새로운 산재보험 개혁안이 나왔습니다. 무려 80개 항목을 뜯어고치는 산재보험 40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대대적인 제도개혁이지요. 관련법 개정안이 올해 국회에 제출돼 내년부터 시행됩니다. 공단의 경영 환경이 확 바뀌는 거지요. 또한 정부는 4대 사회보험료 징수 일원화를 추진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공단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인 보험료 징수 업무가 국세청 산하 신설 공단으로 이관됩니다. 한마디로 주력 ‘업종’이 흔들리는 거죠. 공단의 개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새로운 업무,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야 해요. 기본 방향은 복지 사업 강화죠. 근로복지공단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전체 근로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우리만의 복지 상품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민간 보험사 수준으로 고객 서비스를 강화한다고 들었습니다.그동안 공단은 엄청난 양적 팽창을 경험했어요. 6조~7조 원의 자금이 왔다 갔다 하고, 비정규직까지 따지면 직원만 4000여 명이에요. 조직이 비대해지고 업무 양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 관료화의 문제가 생깁니다. 업무 프로세스가 체계화돼 있지 않고 업무 부담이 자꾸 늘어나니 고객 서비스에 소홀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더 이상 이대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시대지요. 모든 걸 고객 위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관료화의 문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예를 들어보지요. 공단 지사들을 보면 대부분 지방 노동청 옆에 있어요. 그런데 꼭 그럴 필요가 있나요. 일종의 행정 편의주의지 고객 위주로 위치를 정한 게 아니에요. 이걸 다 고객 중심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또 조직 편제를 바꿔 몇 군데 콜센터를 지역 거점화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민원이 있으면 해당 지역 지사를 일일이 찾아가야 해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게 하자는 거죠. 여수에 살든, 목포에 살든 민원이 생기면 광주지역 콜센터로 전화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콜센터가 각 지사에 통보해 처리하도록 하는 거죠. 사실 지사를 나누고, 담당 구역을 나눈 것은 우리가 편한 대로 한 겁니다. 고객들은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민원만 불편 없이 신속하게 처리하면 되거든요.복지 사업 강화 방안을 들려주시죠.복지 사업이 공단의 새로운 블루오션인 건 분명하지요. 이를 위해 복지 사업 분야의 대표 브랜드, 대표 상품을 만들 생각입니다. 지금 준비 중인 것 가운데 ‘근로복지 포털 사이트’가 있어요. 내년 오픈을 목표로 용역 발주를 진행하고 있지요. 여기에 일반 근로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상품 몰’이 들어갑니다. 여행, 레저, 영화, 연극, 스포츠 등 각종 상품을 다 모아놓는 거죠. 그러면 근로자들은 일단 여기에 접속만 하면 원하는 복지 상품을 모두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지요. 또 여기에 소득 수준에 맞춰 할인 혜택을 줍니다. 대기업 근로자는 할인 폭을 작게, 저소득 근로자는 할인 폭을 훨씬 크게 적용하는 식이지요. 지금은 근로자들이 콘도를 이용하려면 일일이 개별적으로 정보를 찾아 예약을 해야 합니다. 할인 혜택도 거의 없지요. 또 하나는 여성 근로자 고용 환경 개선 지원 사업이에요. 기업들이 여성 근로자들을 위해 수유실이나 여성 휴게실을 설치할 때 최대 5억 원까지 굉장히 싼 이자로 자금을 융자해 주는 사업이지요.산재보험 업무는 어떻게 달라지나요.종전의 산재보험 업무는 산재보험료를 징수해 산재를 당하면 치료해 주고 휴업 급여를 지급하는 게 거의 전부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재활 지원 쪽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지요. 산재보험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정상적인 사회 복귀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재활 사업 강화가 필수적이지요. 이사장을 맡으면서 제일 먼저 재활 사업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재활사업국을 신설하기로 했지요. 그동안은 1개 팀이 재활 업무를 맡았는데, 이걸 국으로 격상하고 팀도 2개로 늘릴 계획입니다. 재활 쪽은 아직도 할 일이 아주 많아요. 의료 재활뿐만 아니라 직업 재활, 사회 재활도 필요하지요. 직장에 복귀하면 초기 적응 기간에는 아무래도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업에 지원금도 줘야 합니다. 전문 상담사들을 두고 심리 상담도 해줘야 해요. 앞으로 이런 쪽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에요.개혁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공단이 처한 환경 자체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어요. 고객 중심으로 모든 걸 바꾸고 업무 프로세스도 혁신해야 합니다. 기존 업무를 정형화, 표준화, 단순화하면 직원들도 업무 부담이 줄어 사기가 올라가고 그러면 고객 만족도 역시 자연 올라갑니다. 그게 바로 효율이지요. 혁신하자고 하면 일만 많아지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지난 5월 초 천안 상록리조트에 전 직원을 모아놓고 새로운 경영 전략을 설명했어요. 내용을 듣고 직원들도 다 좋아해요. 부담을 주는 혁신이 아니라 일을 덜어주는 혁신, 공단의 미래를 위한 혁신이라는 데 공감한 거죠. 노동조합도 ‘경영혁신 태스크포스’에 함께 참여해 활동하고 있어요.노사 문제 전문가로서 생각하는 바람직한 노사 관계는 무엇입니까.노사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입니다. 그런데 신뢰는 바로 원칙을 고수하는 데서 생기지요. 사업주가 무조건 좋다고 해서 신뢰가 만들어지는 게 아닌 거죠. 안 되는 건 안 된다, 이런 원칙을 확실하게 해야죠. 그래야 노조도 극한 투쟁을 하지 않게 되지요. 해봐야 얻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장의 문제만 넘기기 위해 이런 원칙을 어기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또 한편으로 신뢰는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이때는 사용주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게 필요해요. 노조는 아무래도 피해의식을 가져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노조를 대화 상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게 첫걸음이죠. 확실한 원칙과 끈임 없이 대화를 통해 신뢰를 형성하면 노사 관계는 자연스럽게 풀릴 수밖에 없어요.약력: 1952년 서울 출생. 72년 서울대 응용물리학과 졸업. 81년 미 워싱턴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73년 행정고시 합격(14회). 90년 노동부 노사정책과장. 96년 청와대 노동비서관. 98년 노동부 노사정책국장. 2000년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 2001년 노동부 기획관리실장. 2004년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2007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현).정리=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