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 양극화 심화…주류 판매는 늘어

지난 5월 16일 오후, 서울 강남대로의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양재점. 점심시간이 지난 평일 오후 시간대인 데도 식당 안은 활기가 돌았다. 전체 350석 가운데 3분의 1가량 자리가 차 있었다. 양재점은 전국 92개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점포 가운데 매출 2위를 차지하는 우량 매장이다. 지난해 양재점에서만 45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 들어서도 지난 1분기 전년 대비 7%가량 매출이 증가했다. 예약 건수도 지난해에 견줘 15% 늘어나 경기 회복세를 실감하게 한다. 김동진 양재점 점주(46)는 “오늘은 비 오는 날씨 때문에 오히려 손님이 적은 편”이라며 “보통 이 시간대에도 테이블이 절반가량 찬다”고 말했다.주가 올라도 여의도 식당가는 ‘썰렁’최근 고객들의 씀씀이가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는 ‘객단가(고객 1인당 지출액)’다. 양재점의 지난해 객단가는 2만6000원이었는데 올 들어 500원가량 증가했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의 주력 품목인 스테이크 종류의 가격은 2만7000~3만1000원대. 예전에는 가격 부담 때문에 스테이크 하나만 주문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요즘은 디저트나 샐러드 등을 함께 찾는 손님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올해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의 성장률이 높게 나타난 것은 지난해 매출이 부진했던 데도 한 원인이 있다. 이동통신사와 연계한 할인 프로그램이 전면 폐지되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 김 점주는 “지난해 초까지는 어려웠지만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지난해 양재점은 떨어진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격적인 영업 전략을 폈다. 12시던 오픈 시간도 11시로 1시간 당겨 영업시간을 늘렸다. 예전에는 기피했던 배달 주문도 적극적으로 받고, 각종 구청 행사 등을 지원하는 지역 마케팅도 활발하게 펼쳤다.경력 20년의 외식업 전문가인 김 점주는 “과거 외식업은 경기가 나빠질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좋아질 때는 가장 늦게 회복되는 업종으로 통했는데 이번에는 회복 속도가 훨씬 빠르다”며 “주5일제 시행과 고객층이 두터워진 게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아직 회복기라고 말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게 외식 업계의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덧붙였다.하지만 모든 외식업체들이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처럼 경기 회복의 ‘온기’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곳이 상당수다. 이들에게는 경기 회복을 나타내는 통계 수치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증권사가 밀집해 있는 여의도는 주가지수에 경기가 좌우되는 대표적인 상권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런 등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올 들어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면서 주가 1600시대가 열렸지만 여의도 식당가의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하다.1979년 여의도에 처음 문을 연 대형 고급 중식당 ‘홍보석’의 백봉현 지배인(46)은 “주가는 오르고 있지만 체감 경기는 오히려 작년보다 나쁘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는 “주식 시장은 좋아졌지만 보유세 부담, 아파트값 하락 전망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크게 위축됐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5층 상가 건물에 들어선 다른 음식점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홍보석은 250평 규모의 대형 중식당으로 30여 명이 종업원이 일한다. 백 지배인은 “하루 매출이 1000만 원 정도 돼야 겨우 수지가 맞는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하루 평균 매출이 1000만 원 이상 쉽게 나왔지만 최근에는 800만 원대로 뚝 떨어졌다. 객단가도 3만 원대에서 2만5000원대로 오히려 낮아졌다. 백 지배인이 경기 흐름을 판단하는 잣대는 저녁 회식 고객의 숫자다. 오피스 타운이라 점심시간에는 대부분 자리가 차지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쪽은 직장의 부서 회식이다. 백 지배인은 “저녁 회식 손님이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파격적인 할인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며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그때와 비슷하게 할인 행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소규모 음식점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더욱 ‘살벌’하다. 경기도 일산 중산마을 아파트상가에서 돼지 갈빗집을 하는 오흥수 씨(51)는 업종 전환을 고민 중이다. 2년 전 6000만 원을 투자해 식당을 인수했는데 매출이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 씨는 “한때는 하루 매출이 30만~40만 원까지 나오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 정도 매출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주변에 음식점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경기 침체로 고객들의 씀씀이가 줄어든 게 결정적이다. 그는 “식당을 찾은 손님들도 주로 값싼 수입산 돼지갈비를 찾는다”고 말했다. 한동안 ‘청송 얼음 막걸리’를 팔아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이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반짝 인기’로 끝나고 말았다. 오 씨는 “중산층이 사라지고, 양극화가 심화된다고 하는데, 그 말을 절감하고 있다”며 “이제는 아주 고가 전략으로 가거나, 아니면 초저가로 가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맥주 판매 전년 대비 8.4% 증가통계 수치로만 본다면 주류 판매는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 1~4월 위스키 판매량은 95만8796상자(500㎖ 18병)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늘어났다. 2003년(마이너스 10.3%), 2004년(마이너스 17.7%)의 마이너스 성장이나 2005년과 2006년의 1.9~2% 저성장에 비해 뚜렷한 호조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소비재 중 경기 민감도가 높은 맥주 판매도 마찬가지다. 올 1~4월 맥주 판매량은 6039만7800상자(500㎖ 20병)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4%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의 주류 판매 증가가 경기 회복의 신호탄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진단이 엇갈린다.원효대교 북단에 있는 하이트맥주 서서울지점 물류센터. 500평의 대지에 500㎖ 20병으로 환산해 2만5000상자의 병맥주와 캔맥주, 생맥주 제품이 들어차 있는 이곳에서는 하루 평균 8000상자의 맥주가 팔려나간다. 은평구 서대문구 종로구 중구 마포구 용산구 등 서울 서부지역 6개구의 38개 중간도매상이 주고객이다. 물류센터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보면 작년에 비해 출고량이 약간 줄어든 편”이라고 말했다. 대한주류공업협회가 발표하는 판매량 통계는 전국 통계라 지역별 편차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하이트맥주 본사 측도 1~4월 판매 증가를 경기 회복 신호로 해석하는 데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하이트맥주 홍보팀 관계자는 “물론 소비 증가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최근 판매 증가의 요인은 복합적”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지난해 맥주 판매가 부진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높게 나타난 측면이 있다. 또한 지난해 말부터 맥주 회사들이 일제히 신제품을 내놓으며 마케팅을 강화한 데다 5월 초 출고가 인상을 앞둔 가수요도 무시할 수 없다. 이 관계자는 “여느 해보다 무더울 것이라는 올 여름 시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