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넘어 세계로… 거침없는 질주
중국 자동차 산업의 이 같은 변화는 중국 경제의 뉴트렌드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고성장 명품부각 토종부상 쩌우추취(走出去·해외 진출) 거시조정이라는 5가지 트렌드가 그것이다.지난 4월 말 상하이의 푸둥개발구에 자리한 ‘상하이신국제박람중심’. 2007 상하이국제모터쇼가 열린 이곳에서는 9일간의 전시회 기간에 중국을 비롯, 전 세계 107개국에서 온 참관객이 50만 명에 달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세계 시장에 첫선을 보인 외국 회사 모델만 5개나 됐다. 중국이 세계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중국은 지난해 721만 대의 자동차가 판매돼 일본(573만 대)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동차 소비 대국으로 떠올랐다.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2002년 300만 대를 넘어선 이후 2003년 400만 대, 2004년 500만 대에 이어 지난해 700만 대를 돌파하는 등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베이징시에만 매일 1000대가량의 새 차가 도로에 나온다. 도로의 자전거 물결이 자동차 행렬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2001년 12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른 수입 관세 인하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가격 거품 제거 덕이 크다.판매값 떨어지며 수요 대폭발2001년만 해도 완성차 수입 관세는 70%였지만 단계별로 인하해 작년 7월 이후엔 25%로 뚝 떨어진 상태다.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에 집결하면서 경쟁이 가열돼 가격도 속락을 거듭하고 있다. 상하이GM이 5년여 전 13만 위안(약 1560만 원)에 내놓았던 모델은 지금 6만 위안(약 720만 원)까지 내려왔다.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 2003년 1000달러를 돌파한데 이어 지난해 2000달러를 넘어섰고 대도시는 이미 6000달러를 웃돌고 있다. 광저우는 지난해 1만 달러를 돌파했다.중국에선 마이카 시대의 도래와 함께 부자들을 겨냥한 고급 자동차 시장도 급팽창하고 있다. 명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본 자동차회사의 전략 변화에서 이를 읽을 수 있다. 일본의 닛산자동차는 이번 상하이모터쇼에 인피니티를 출품했다. 혼다가 지난해 아큐라를 투입한 데 이은 것으로 도요타가 1994년 일찌감치 렉서스를 들여온 이후 일본의 최고급 3개 자동차 모델이 모두 중국 시장에 진입하게 됐다. 인피니티는 오는 7월부터 중국에 출시될 예정으로 연말까지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 10여 개의 대리점을 세울 계획이다. 렉서스도 중국 내 대리점 수를 23개에서 내년 1분기까지 46개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 언론들은 이들 일본 3대 자동차회사가 최고급 3개 모델의 중국 내 생산 가능성도 검토 중이라고 전하고 있다. 일본 업체만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의 GM은 이미 캐딜락의 해외 첫 생산 기지로 중국을 택했다.외국회사 인수로 기술력 ‘껑충’중국 자동차 산업의 변화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토종 브랜드의 약진이다. 국영 자동차 회사인 치루이는 지난 3월 중국 시장에서 4만4568대의 차량을 판매, 1위에 올랐다. 치루이는 지난 1월 처음으로 월간 판매 2위를 기록했으나 두 달 만에 선두를 차지했다. 중·미 합작사인 상하이GM은 4만570대를 팔아 2위로 밀려났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중국 합작사인 베이징현대차를 제치고 중국 승용차 판매 4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킨 치루이의 질주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리자동차도 8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치루이와 지리는 토종 모델만을 생산하는 기업이지만 다국적 기업과의 합작으로 경험을 쌓은 중국 업체들도 독자 브랜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2001년만 해도 토종 모델은 중국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5%도 안됐지만 지금은 26%를 넘어섰다. 중국 업체들은 기술력 확보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하이자동차는 이번 상하이모터쇼에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선보였고 치루이는 연내에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내놓을 예정이다. 창안자동차도 2008년에 하이브리드 자동차 상용화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중국 업체들은 외국 자동차를 인수함으로써 오랜 세월 쌓아온 기술력을 한꺼번에 얻는 ‘축지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사들인 것이나 난징자동차가 영국 로버자동차를 매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상하이자동차는 지난해 초 향후 5년간 12억 달러를 들여 30개 자체 브랜드 자동차를 개발,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 출시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상하이차의 행보는 토종 업체들이 외자 의존에서 자립 단계를 넘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로 평가받는다. 쩌우추취로 불리는 중국 자동차의 해외 시장 공략은 이미 개시됐다. 아직은 수출 물량이 미미하지만 증가 속도가 빠르다. 중국의 완성차 수출은 지난 2002년 2만 대, 2003년 4만8000대, 2004년 7만8000대, 2005년 17만2000대에 이어 2006년 34만2400대로 급증하고 있다. 물론 이 가운데 80%는 저가의 트럭과 버스가 대부분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으로 나가고 있다. 하지만 치루이가 지난해에만 5만 대의 승용차를 수출하는 등 해외 승용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업체들이 늘고 있다.중동 등에 이어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인 치루이는 최근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세계 시장에 내놓을 차량을 함께 만들기로 했다. 미국 시장까지 겨냥한 포석이다. 치루이의 인통야오 회장은 독자 모델로 승부를 걸어 해외 시장까지 공략한다는 점을 평가받아 중국에선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지리자동차는 지난 2005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중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참가했고 이어 지난해 디트로이트모터쇼에도 참가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리는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에 현지 공장을 세울 것을 검토하고 있다. 창청자동차는 지난해 이탈리아에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500대를 선적했다.최근 러시아에서 열린 중국박람회에서는 이치 화천 치루이 위퉁 등 5개 중국 자동차 회사가 러시아 수출과 관련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치는 상업용 차량과 승용차를 중국에서 만들어 러시아에 수출하기로 하는 동시에 러시아에서 중형과 대형급 트럭을 합작 생산하기로 했다. 중국 언론들은 중국 자동차의 한국 시장 진출도 임박했다고 전하고 있다.중국 정부도 차이나 자동차의 해외 진출에 지원 사격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8개의 자동차 수출 전진 기지를 지정하고 입주 기업에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 44개 완성차 업체와 116개 부품업체가 첫 번째 수출 지원 대상 기업으로 선정됐다.중국 당국의 자동차 수출 지원책은 중국 거시 조정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동차는 지난해 3월 국무원(중앙정부)의 과잉 생산 업종 구조조정 지침을 통해 처음으로 과잉 공급 업종으로 공식화됐지만 일률적으로 긴축의 칼날만을 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키울 건 기우고 억제할 건 억제한다’는 게 그것이다. 잘나가는 회사는 팍팍 밀어주되 수출에서 저가 경쟁을 하며 뒷다리를 잡는 업체들은 아예 공장 문을 닫도록 하는 중이다. 독자 모델을 만들지 않고 공장 가동률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은 증설을 금지한 것도 마찬가지다. 양적 통제라기보다는 질적인 규제로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려는 중국의 구조조정 방향이 그대로 묻어 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 경제의 로드맵이 보인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