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주택판매 ‘뚝’… 비관론 힘 얻어

미국 주택 경기가 관심이다. 잘 나가던 뉴욕 증시도 주택 경기에 의해 브레이크가 걸렸다. 특히 지난 1분기 경제 성장률이 1.3%로 낮게 나오면서 주택 경기와 그 영향에 따른 논란이 심해지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여전히 “주택 경기 침체 여파가 경제의 다른 부문으로 전이되는 조짐이 아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UBS 등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은행들은 “주택 경기 침체 여파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며 “FRB가 틀렸다”고 반박하고 있다.이렇게 보면 미 주택 경기는 경제와 뉴욕 증시는 물론 글로벌 증시의 방향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로 떠올랐다. 주택 경기의 향방에 따라 경제와 증시 흐름이 달라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한 가지 더 문제는 미국에 집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집값이 바닥인 상태에서 집을 사고 싶은데 도무지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으니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 경기가 바닥을 친다고 해도 단기간 내 호조세로 반전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주택 경기 침체가 이어진다고 해도 집값 하락률은 둔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결국 5년가량 장기 투자를 위해 미국에 집을 사려는 사람에 한해 지금을 투자 적기로 고려할만하다는 게 이들의 권유다.바닥 안보이는 집값 하락미 주택 경기는 올해 초만 해도 바닥에 다다른 것으로 보였다. 집값 하락은 좀 더 이어지겠지만 거래 부진에서는 탈출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다름 아닌 비우량주택 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이다. 살아나는 것처럼 보였던 매수 심리는 다시 움츠러들었고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압류당한 사람들의 한숨은 더욱 커졌다.이는 통계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지난 3월 미 기존 주택 판매량은 612만 채로 2월보다 8.4%나 급감했다. 지난 1989년 이후 18년 만에 가장 큰 감소율이다. 작년 동기에 비해선 11.3%나 뚝 떨어졌다. 지난 3월 중 고르지 못한 날씨가 거래를 감소시킨 주된 이유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지만 예상보다 큰 감소율은 우려감을 더욱 크게 하기에 충분했다.이뿐만 아니다. 부동산에 투자됐던 여유 자금은 상당 부분 이미 발을 뺀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뉴욕 증시를 끌어올린 자금의 25%는 부동산 시장에서 나왔다는 게 월가의 추산이다.실제 작년에 거래된 ‘두 번째 집(세컨드 하우스)’ 거래량은 전체 주택 거래의 36%로 줄었다. 이 비중은 2005년엔 40%를 차지했었다. ‘두 번째 집’은 이미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추가로 사는 집을 말한다. 목적은 두 가지다. 휴가철 별장으로 사용하거나 투자용으로 집을 사두는 것이다. 별장용으로 거래된 집은 107만 채로 전년보다 4.7% 증가했다. 반면 투자용 집 거래량은 165만 채로 28.9%나 급감했다. 전체 주택 거래에서 투자용 주택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5년 28%에서 작년엔 22%로 낮아졌다. 실수요자를 제외한 투자용으로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그만큼 줄었다는 얘기다. 부동산 시장에 들어 있던 투자 자금이 그만큼 탈출했다는 얘기도 된다.월가 전문가들은 “돈 있는 사람들은 이미 2005년에 다 부동산 시장에서 빠져 나왔다”고 지적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파문으로 매물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반면 투자 자금은 오히려 빠져나가고 있으니 주택 경기가 좋을 리 없다. 바로 주택 경기 침체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는 이유다.금리 논쟁으로 번진 주택 경기지난 1분기 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3%로 뚝 떨어졌다. 작년 4분기(2.5%)는 물론 월가의 당초 예상치(1.8%)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요인은 역시 주택 경기 침체다. 지난 1분기 중 주택 건설 투자는 17%나 감소했다. 주택 거래가 안 되니 투자도 안 되고 그러다보니 경제 성장률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택 경기 침체의 심각성을 바로 봐야 한다며 기준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주택 경기 침체 여파가 경제의 다른 부문으로 전이되는 조짐은 없으며 따라서 인플레이션 억제가 가장 큰 통화정책 목표”라는 벤 버냉키 FRB 의장의 판단이 틀렸다는 주장도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골드만삭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잰 해치우스는 “주거용 주택 투자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버냉키 의장이 과소평가하고 있다”면서 “주택 경기 침체가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FRB가 결국은 올해 안에 0.25%포인트씩 세 차례 기준 금리를 인하해 현재 5.25%인 금리가 4.5%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메릴린치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비드 로젠버그는 “주택 경기 침체가 미 경제 전반으로 전이되고 있다”며 FRB가 올해 4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UBS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머리 해리스는 “주택 가격은 앞으로 10%가량 더 하락할 수 있다”며 주택 경기 침체의 심각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이에 대해 버냉키 FRB 의장은 아직 요지부동이다. “호조를 보이고 있는 고용 사정으로 인해 민간 소비 증가세가 여전하다”며 “이에 따라 주택 경기 침체에 따른 파장이 최소화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입장이 지속될 경우 주택 경기 침체에 따른 금리 논쟁, 나아가 경기 논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늘어나는 한국인 부동산 투자미 주택 경기가 바닥을 헤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미국 주택 구입 열기는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는 게 현지 부동산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이들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뉴욕 LA 애틀랜타 등 대도시 지역의 집값은 미미하지만 반등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이들 지역의 신규 주택은 금세 분양되고 있으며 한국식 아파트의 건설 열기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한껏 완화된 해외 부동산 투자 여건에 원화 강세, 바닥에 다다른 것으로 여겨지는 미국 주택 경기가 어우러지면서 한국인의 해외 투자 열기가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뉴스타부동산 등 미국 내 대형 한인 부동산 업체는 한국에서 미 부동산 투자 설명회를 통해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물론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해외 부동산 투자 건수가 늘고 있다는 통계가 있지만 아직은 전체 흐름을 가늠하기엔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연초 국제부동산거래기구(IRETO)는 작년에 한국인들이 구입한 미국의 주거용 부동산은 20억 달러(약 1조877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 2005년의 12억7000만 달러에 비해 57.5%나 늘어난 것이다. 투자 규모는 올해 더욱 늘어나 줄잡아 40억 달러가 미 부동산 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IRETO는 전망했다.그러다 보니 미국 건설 업체들도 한국인을 겨냥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LA 코리아타운 주변에 지어지고 있는 콘도 대부분은 한국의 아파트를 모방했다. 한국인 투자자들을 겨냥한 셈이다. LA코리아타운에 22층짜리 건물을 개발 중인 코아 월셔 웨스턴사는 186채의 콘도를 한국에서 팔아 달라고 한국 부동산 업체에 의뢰할 정도다.현지 한인 부동산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단기 매매 차익을 노린다기보다는 자녀 교육용이나 노후 대비용이 대부분”이라며 “이들의 경우 장기 투자 관점을 갖고 있어 투자할만한 상태”라고 평가하고 있다. 5년 이상의 장기 투자 관점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금이 투자 적기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상당하다. 다만 3년 이하의 단기 매매차익을 노리고 투자하는 사람들은 투자를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결국 여윳돈이 있으며 5년 이상 장기 투자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주택 경기 바닥 논쟁이 한창인 지금을 매입 시기로 고려할만하다는 얘기다. 물론 판단은 투자자의 몫이지만 말이다.뉴욕=하영춘·한국경제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