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생활 위협하는 5대 가격거품 뺄 터’

이태복 5대 운동본부 상임대표(57)가 새로운 소비자 운동을 주도하는 시민운동가로 돌아왔다. 1970년대 손꼽히는 노동운동의 전략가에서, 사형 구형을 받은 양심수로, 주간노동자신문과 노동일보 발행인으로, 김대중 정부에서는 청와대 복지수석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그는 쉼 없이 달리며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그에 비하면 2002년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물러난 이후 보낸 지난 5년은 새로운 모색과 재충전의 시기에 해당한다. 그 사이 이 대표는 대학 강의를 맡아 사회복지 정책론 교재를 내고, 십대 이후 그의 삶을 지배해 온 도산 안창호 선생의 평전도 써냈다. 그런 그가 최근 ‘5대 거품 빼기’라는 간단치 않은 화두를 던졌다.“경기 침체로 국민 생활은 어려워지는데 정유회사, 이동통신사는 20%가 넘는 폭리를 남기며 호황을 누리고 있어요. 가격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고 산정 근거도 설득력이 없지만, 국민 개개인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지요. 매년 재산이 늘어나 아무 걱정 없는 정부 고위층은 이런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어요.”이 대표는 지난 4월 25일 1000여 명의 발기인이 참석한 가운데 5대 운동본부 창립식을 열었다. 앞으로 약값, 기름값, 카드 수수료, 휴대전화료, 은행 금리 등 국민 생활과 직접 관련된 다섯 가지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 거품을 빼는 활동을 벌이게 된다.국민을 ‘골병’들게 하는 가격 거품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아 약가 제도 개혁을 추진하던 2002년 무렵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당시 만성적인 건강보험 재정적자의 상당 부분이 턱없이 높게 책정된 약값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고 메스를 들이댔다. 그는 “약값 책정 과정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제약회사, 특히 다국적 제약회사에는 엄청난 노다지 시장이지요. 업체가 정한 가격이 거의 그대로 인정되는 구조였어요. 원가 자료 제출 의무도 없고 한마디로 부르는 게 값인 거죠. 기업 입장에서는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건 국민들이에요.”그런데 이런 ‘폭리 구조’는 의약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은행들은 대출 금리는 재빨리 올리면서 예금 금리를 올리는 데는 인색하다. 지난해 은행들은 수조 원의 순이익을 벌어들였는데 이 가운데 90%가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의 차이인 ‘예대 마진’에서 나왔다. 가만히 앉아서 떼돈을 번 셈이다. 이는 정유회사 이동통신사 카드사도 마찬가지다.“기업에 적정 이윤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국민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는 거품을 덜어내자는 거죠. 20%가 넘는 순이익을 올린다는 건 뭔가 비정상적인 상황이에요. 이런 구조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지요. ‘투명하고 공정한 가격 구조’는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봐요.”이 대표의 활동 초점은 두 가지다. 우선 원가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는 데 힘쓸 생각이다. 이를테면 기름값이나 휴대전화료가 어떤 근거로 책정된 것인지 밝히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가격심의위원회의 설치다. 기업들이 제출한 원가 자료를 토대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가격을 책정하자는 것이다.5대 운동본부는 출범식 직후 감사원에 산업자원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보건복지부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등에 대한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취지에 공감하는 국회의원들을 모아 ‘5대 거품 빼기 의원단’을 조직하고 천만인 서명운동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개혁은 공리공론보다 국민 생활의 변화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약력: 1950년 충남 보령 출생. 1976년 국민대 법대 졸업. 1999년 노동일보 발행인 겸 회장. 2001년 대통령비서실 복지노동수석비서관. 2002년 보건복지부 장관. 2007년 5대 운동본부 상임대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