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겐 봄바람처럼… 자신에겐 추상처럼

모두가 ‘예스(yes)’라고 할 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믿음직하다고 했던가. 오규석 씨앤앰커뮤니케이션 사장은 그런 면에서 분명히 튀는 인물이다. 모니터그룹 한국지사 컨설턴트 근무 시절 그는 ‘투자를 늘리겠다’는 모 석유회사의 경영진을 뜯어말리는 임무를 자처했다. 국내 3대 이동통신사 LG텔레콤의 새내기 임원 근무 시절에는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임원들 앞에서 당돌하게도 홀로 ‘조직개편안’을 들고 나섰다.결과가 나빴다면 할 말 없지만 그는 다행히 성공했다. 논리적 근거를 무기로 한 판단의 승리였다. 그리고 43세의 나이에 국내 주요 케이블TV 업체인 씨앤앰커뮤니케이션 사장 자리까지 올랐다.예스맨 사이에서 혼자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에너지, 그 근원은 “10년간 컨설턴트 일을 하면서 쌓아온 노하우에 있다”고 오 사장은 말한다.“컨설턴트로서 이 회사 저 회사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문제를 떠안고 고민하면서 세상과 경영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는 “1980년대 말 컨설턴트라는 직업이 주는 리스크와 스트레스를 견디어 낸 것이 큰 자산이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1996년 모 석유회사 회의실. “수요가 늘고 있으니 설비 투자를 늘려야겠다”는 말이 오고 갔다. 회의실 한구석에서 조용히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규석 컨설턴트가 갑자기 “지금은 설비 투자를 늘릴 때가 아니다”라고 치고 나왔다. 모두가 뜨악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당당했다.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너무도 명확했기 때문이다.확신이 생긴 그는 ‘본연의 업무와는 달리’ 경영진을 뜯어말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최고 경영진을 모두 만나서 왜 신규 투자를 해서는 안 되는지 설득했다. 해외 사례, 장기적인 석유화학 트렌드 등을 들어가며 조목조목 따졌다. 결국 설비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6개월 후 외환위기 사태가 터졌다. 설비 투자에 돈을 쏟아 붓지 않았던 회사는 별 문제없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넘길 수 있었다. 어느 날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오 컨설턴트를 불러 손을 꽉 잡으며 “그때 의견을 듣지 않았으면 다 망했을 뻔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합리적인 논리에 근거한 판단이 회사를 살린 것이다. 이 사건이 그에게는 컨설턴트 시절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자 기억에 남는 일이다.지금도 그는 ‘합리적인 이유’를 중시하는 경영자다. 그는 “팩트에 근거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야 한다”, “안건을 제시할 때는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뒷받침돼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하는 전형적인 분석형 CEO다. 또 자기 의견만 앞세우는 ‘귀머거리’는 절대 피해야 할 CEO상이라고 덧붙였다.컨설팅에서 통신 업계 실무자로컨설턴트로 10년이 흐르자 오 대표는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LG텔레콤이 사람을 뽑고 있었다. 통신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 오던 그는 이때 LG텔레콤과 연이 닿아 전략개발실장으로 발탁된다. 그는 당시 LG텔레콤에 수혈된 386세대 젊은 피로 화제를 모았다.그리고 1999년부터 2003년까지 LG텔레콤에서 전략개발실장, 마케팅실장, 전략기획담당 상무로 경력을 쌓아갔다. 당시 LG텔레콤 사장이었던 남용 현 LG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윤창번 전 하나로텔레콤 회장, 남중수 현 KT 대표이사 사장 등 국내 통신사업계를 이끌어가는 굵직한 인물들과 본격적인 친분을 쌓게 된 것도 이때다.LG텔레콤에서 모바일 뱅킹 서비스 ‘뱅크온’ 등을 런칭한 그는 2003년 LG텔레콤을 떠나 잠시 쉬며 재충전의 시기를 갖는다. 그러다 2004년 하나로텔레콤이 외부 임원을 수혈하면서 또 한번 통신 업계와 연을 맺게 된다. 당시 하나로텔레콤은 영업과 마케팅 등의 실무형 전문가를 찾고 있었다. 그는 경영전략실장 전무로 입사해 2006년까지 전략부문장, 마케팅 부문장 등의 업무를 맡았다.통신 컨설팅 업무를 맡은 후 6년간 통신 업계에서 쌓은 실무 경험만 보면 그는 누가 봐도 ‘통신 업계 통(전문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지난해 초 케이블TV 업체인 씨앤앰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사장으로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갸웃했다.하지만 달리 보면 그처럼 절묘한 시점도 없었다. 통신 방송 융합 이슈가 전면에 대두되면서 그는 가장 주목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통신·방송 융합 시대라고 하지만 통신과 방송 양 산업 간 장벽은 여전히 높고 사람 교유도 드물기 때문이다.통방 융합은 방송사업자에 기회‘통방 융합형 인재’로 주목받는 그는 현재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시장 환경 변화가 ‘위기가 아닌 기회’라는 점을 강조한다. 체질 고도화를 통해 사업 역량을 배가하고, 모든 업무 프로세스를 고객의 관점에서 재조명함으로써 고객 서비스 제공 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면 케이블TV만큼 통방 융합 시대를 지배할 강력한 플랫폼도 없다는 것이다.그는 방송 업계가 통신 업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에 노출된 경험이 없어 느슨하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할 일이 많아 힘이 난다고 말한다. 그는 “경쟁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아직도 공급자 위주의 영업과 서비스 정책이 많은 것이 방송 업계의 현실”이라며 “통신 업체와 싸우기 위해 더 세심한 고객 관리, 더 빠른 디지털케이블 TV 전환으로 기초 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또 수년째 삐걱대기만 하는 통방 융합을 가속화하려면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 아래 단계적인 컨버전스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융합에 대한 시각차를 극복하기 위해 통신과 방송 분야의 인력 교류가 더 확대되어야 함은 물론이다.그는 올해 씨앤앰커뮤니케이션이 해야 할 일로 디지털케이블TV 전환 가속화, 닥시스 3.0(케이블 모뎀 표준) 도입을 통한 100Mbps 광대역 서비스 확대, VoIP(인터넷 전화) 서비스 제공을 통한 ‘트리플 플레이 서비스(TPS, 케이블TV+초고속인터넷+인터넷전화)’의 기반 마련을 꼽는다.지금은 전국 케이블TV 평균 수신료가 6000원 정도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납득할만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또 서비스 개선이나 디지털 전환 등이 회사의 개별 이슈가 아니라 업계 전체의 이슈인 만큼 그 중요성을 인식해 다 함께 움직이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고 자기를 대할 때는 가을서리처럼 매섭게 하라’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을 좌우명으로 한 젊은 CEO 오규석 대표. 그가 통신 업계에서 보여준 발군의 실력을 방송 업계에서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약력: 1963년 서울 출생. 82년 경기고 졸업. 1988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및 동 대학원 경영학과 석사 졸업. 89년 모니터그룹 한국지사 이사. 1999년 LG텔레콤 전략기획담당 상무. 2004년 하나로텔레콤 전략부문장 및 마케팅부문장. 2006년 씨앤앰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