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달인·식객 등 인기작 ‘강추’

최근 만화가 산업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재미 차원을 넘어 정보 전달 효과가 있는 에듀테인먼트 미디어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장편 만화는 최고경영자(CEO)들의 필독서로 꼽히거나 직장인들의 대화 주제에 오르내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설 연휴야말로 이 같은 트렌드에 동참할 기회가 아닐까. 만화 칼럼니스트가 권하는 ‘설 연휴에 읽을 만한 만화 10선’을 소개한다.신의 물방울 (아기 다타시)타고난 미각을 가졌지만 와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주인공이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겨 놓은 비밀의 와인 ‘신의 물방울’을 둘러싼 대결을 벌인다. <신의 물방울>의 줄거리다. 여기에 도미네 잇세라는 천재 와인 전문가가 합세,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신의 물방울>은 현재 가장 잘 팔리고 있는 일본 만화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만든 만화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렇게까지 대성공한 것은 만화에서 다루고 있는 와인이라는 소재가 잠재적으로 큰 수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신의 물방울>은 재미있게 읽다 보면 와인에 대해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출 수 있다는 데 매력 포인트가 있다. 칠레 와인과 프랑스 와인의 차이라거나 포도 산지의 토양이 포도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들 말이다. 재미있게 읽다 보면 차곡차곡 알게 되는 교양 만화의 전형적인 사례인 셈이다. 주인공의 화려한 디캔팅(와인의 맛이 성숙되도록 별도의 용기에 따르는 기술)을 보면 자신도 한번 해보고 싶어지는 건 덤이다. 한국과의 합작으로 드라마화가 진행된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더욱 흥미를 끈다.십자군 이야기 (김태권)“이슬람권에서 바라보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는 이 질문을 다음과 같이 역사 속으로 옮겨낸다. “이슬람의 시각에서 바라본 중세의 ‘십자군 전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작가가 보기에 이 두 전쟁은 너무나도 닮은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를 아는 것은 현재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하게 된다. 김태권의 만화 <십자군 이야기>는 이슬람과 서구문명의 충돌, 당시의 경제 문제, 인물들의 역사적 사고방식, 우연적인 사건이 대국의 방향을 결정하는 역사의 장난, 이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역사적 사료를 풍부하게 제시하면서도 그것이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도록 가공하는 작가의 솜씨가 출중하다. 더군다나 술술 읽히는 만화의 미덕 역시 그대로 살아 있다. 각 인물과 국가의 흥망성쇠에 푸욱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만만치 않은 역사적 지식으로 중무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너무나도 덜 알려진 이슬람 세계에 대해서 가장 쉽고 재미있게 알려줄 수 있는 교양 만화이기도 하다. 고교생에서부터 30대 후반까지, 넓게 커버할 수 있는 만화로, <먼 나라 이웃나라>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 ‘지식 만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시마과장 (히로카네 겐시)직장 만화의 대명사다. 대부분의 직장 만화가 빈틈없고 패기 넘치는 주인공이 어떻게 승리를 거머쥐는가를 그리는 반면, 주인공 시마는 오히려 어느 정도 우유부단하고 스스로 양심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유연하게 타협하기도 하는, 적당한 처세를 하는 인물이다. 때로는 운도 따르고 때로는 타인의 도움도 받아가면서 대기업 안의 파벌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차근차근 승진의 계단을 오르게 된다.만화의 제목도 시마가 승진함에 따라 만화의 이름이 <시마과장>, <시마부장>, <시마상무> 등으로 변해왔다. 이혼남이라는 설정의 시마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매 에피소드마다 여성들이 따라다니는데, 이러한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직장생활 묘사와 함께 직장인 시마의 캐릭터가 리얼리티가 있어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모은 대표적 장수 만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가 히로카네 겐시의 다른 작품 <정치 9단> 역시 비슷한 이유로 추천할 만하다. 이 작품은 정치판에서의 <시마과장>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제목 때문에 한국의 전대 대통령 각하를 다룬 만화라고 오인하지 말 것!맛의 달인(글 하나사키 아키라, 그림 가리야 데츠)동서신문사 기자인 지로와 유코가 신문사의 기획특집 ‘최고의 메뉴’를 만들기 위해 두문불출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두 사람 앞에 나타난 벽이 있다. 유명한 미식가이며 동시에 유명한 예술가인 우미하라, 즉 지로의 아버지가 동서신문사와는 라이벌 관계의 신문사에서 비슷한 특집을 진행할 참이다. <맛의 달인>은 요리 전문 만화의 교본이라 할 만하다. <미스터 초밥왕> 등이 요리를 소재로 한 격투 만화에 가깝다면 <맛의 달인>은 요리 자체에 대한 지식과 교양의 전달에 보다 집중하는 시사만화로서의 성격을 많이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런 초밥이 있다’, ‘이런 초밥은 무슨 맛이 난다’와 같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일본 내에서 특정 요리의 위치와 사회적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라는 보다 넓은 식견을 갖출 수 있게 해준다. <맛의 달인>은 ‘요리는 사회적 가치를 지닌 문화예술’이라는 강한 주장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며 그에 대해서 꽤나 설득력 있는 논지를 펼친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와 흡사한 두 주인공, 지로-유코 콤비의 연애 전선도 잔잔한 재미를 준다. 두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는 요리에 대한 지식 전달에 보다 충실한 안정적인 만화로 변화, 90권이 넘는 장수 만화로 자리매김했다. 뛰어난 만화이지만 쌀알을 하나하나 골라내 밥을 지을 정도로 정성을 강조하는 대목에 있어서는 좀 지나치다 싶을 수도 있을 법하다.식객 (허영만)<맛의 달인> 등 일본인의 입맛에 맞춘 요리 만화가 한국인에게도 빅히트하는 것을 보고 누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적인 요리 만화가 필요하다!” 된장찌개와 황태탕을 다루는 그런 만화 말이다. 허영만이 신문지면에 연재하기 시작한 <식객>은 이러한 기획과 필요의 산물이다. <맛의 달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하긴 어렵지만 기존 허영만 만화의 미덕을 유지하며 솜씨 좋게 요리 만화의 영역으로 옮겨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식객>은 일본 만화와는 달리 요리 자체에 대한 전문지식보다 요리에 담긴 한국인의 정서나 사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소금’이 소재라면 자식을 서울로 떠나보내고 혼자서 염전을 지키는 할아버지가 그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금’이 맛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의 소재마다 공들인 취재를 동반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식객>을 보면 우리가 한국인의 먹을거리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대찌개>와 <아귀찜>은 어느 쪽이 더 오래된 음식일까.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그것만으로도 이 만화는 꽤 성공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타짜 (글 김세영, 그림 허영만)아직 읽지 않았다면, 설 연휴에 몰아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만화도 없을 것이다. 영화 <타짜>를 봤지만 원작 만화를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허영만의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타짜>는 스토리 작가 김세영과 함께 했던 과거의 걸작들, 즉 <카멜레온의 시>나 <고독한 기타맨>을 되레 뛰어넘는 걸작으로 공인받고 있다. ‘도박’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허영만의 만화가 항상 그렇듯 그 시대의 사회상과 사회 속 인간들의 생존방식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시대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이야기’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만화 <타짜> 속에 숨겨진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도박의 역사가 곧 사회의 역사다. 도박은 그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의 욕망과 함께 흘러온 것이다.” <타짜>의 1, 2, 3, 4부는 각각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하고 있다. 1부의 도박꾼들이 ‘섰다’를 하고 있다면 1980년대인 2부에서는 모두들 ‘고스톱’을 하고 있다. 3부가 되면 포커 하우스 열풍을 다루고 있다. 3대에 걸쳐 도박에 얽혀드는 인물의 욕망과 사연에 푹 빠져 읽다 보면 어느새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어떻게 흘러왔는가에 대한 성찰에 젖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각종 속임수 기술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덤이다. 안다고 해서 속지 않으리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너는 펫 (오가와 야요이)베테랑 신문기자인 스미레는 미모도 출중하고, 학력도 높고, 업무 수행 능력도 뛰어나다. 스미레는 애인과 결별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운 박스 안에서 ‘애완견’ 대신에 소년 다케시를 줍게 된다. 스미레는 그가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모모)와 닮았다고 생각하고 소년 다케시(이제부터는 모모) 역시 스미레의 집이 편해서 눌러 살게 된다. 여성 취향의 직장인 로맨스 만화로서 20, 30대 초반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너는 펫>. 제목 그대로 집에 두고 ‘펫(애완용)’으로 기를 법한 귀여운 감성적 남자 모모와 ‘남성’으로서 매혹될만한 하스이씨 사이에서의 방황과 갈등을 다뤘다. 조금은 파격적인 소재지만 일본만화가 흔히 그렇듯이 직장생활이나 미혼 여성의 생활에 대한 리얼한 묘사가 뛰어나기 때문에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한국도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니 만화에 공감할 독자들도 늘어나는 셈이다. 일에 있어서는 완벽한 듯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보통의 여성과 다를 바 없이 결단력 없이 갈등하는 스미레의 방황하는 모습 또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됐고 한국 케이블 TV에서 방영된 바 있다.원아웃 (가이타니 시노부)야구를 좋아한다면 설 연휴에는 이 만화를 추천한다. 바닥을 기는 성적의 구단 리카온즈의 4번 타자 고지마는 휴양지에서 야구 도박을 목격하게 된다. 그 속에서 100km 안팎의 직구만을 가지고 수많은 타자를 돌려세우는 도구치 도아를 발견하게 되는데…. 도아는 ‘상대의 심리를 읽어내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상대가 준비되지 않은 곳에 공을 뿌려대는 것이었다. 상대의 심리에 약점이 없다면 약점을 만들어서라도 공략한다. 도아의 잔혹한 승부사 기질을 본 고지마는 도아를 자신의 구단에 입단시킨다. 그러나 구단을 싼 값에 팔아넘길 생각을 하고 있는 구단주는 리카온즈가 오히려 더 나쁜 성적을 내기를 바랄 뿐인데…. <원아웃>은 승부사 도아가 ‘지는 체질’의 리카온즈를 어떻게 ‘이기기 위한 체질’로 바꾸어나가는지, ‘내부의 적’이라 할 수 있는 구단주와는 어떻게 싸워나가는지를 즐기는 만화다. 그림체가 친숙하지 않다는 것이 약점이라 하겠지만 누가 읽어도 재미있을 법한 데다 야구를 좋아한다면 더욱 볼 만하다. “너희들의 실력은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너희들의 자세가 문제다”라는 도아의 냉혹한 말에 어느새 중독돼 버릴지도 모른다. 야구만의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소년탐구생활 (김홍모)모든 세대는 어린 시절에 대한 자신만의 아이콘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북한의 금강산 댐 수공 뉴스와 뒷산 밤 서리라든가, 겨울이면 강의 얼음을 깨뜨려 배처럼 타고 놀기 등이 그렇다. 그리고 만화잡지 <보물섬>. 이러한 소재가 친숙하게 느껴진다면 당신도 이 만화를 즐길 준비가 돼 있다. 작가 김홍모는 자기 세대 추억의 아이콘 하나하나를 기억에서 되살려 정갈한 에피소드로 묘사했다. 뛰어난 수채화풍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김홍모는 데뷔작을 아름다운 동화풍의 비주얼과 유머로 촘촘히 채워나갔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끄집어내며 작가 스스로도 매우 흐뭇하지 않았을까. 눈이 내린 날 아침, 강아지와 함께 첫 발자국을 내딛는 그런 기분을 만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1권짜리이므로 선물용으로도 적합하고 산뜻하게 읽기에도 좋다. 어쨌든 귀성길 차량 행렬은 매우 긴 법이니 선물용으로 준비한 책을 먼저 뜯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할 일이다.대사각하의 요리사(가와수마 히로시, 니시무라 미츠루)호텔의 프랑스 전문 요리사 코우는 손님과 직접 대면하는 요리를 만들고 싶다는 고민을 하던 차에 베트남 대사관의 요리사로 근무할 기회를 얻게 된다. 어떤 요리를 내놓는가에 따라 중요한 외교 자리가 파탄 나거나 반대로 첨예한 갈등이 벌어질 자리가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을 체험하게 된 코우는 자신만의 요리 비전을 펼쳐나갈 기회를 얻게 되는데…. 요리 만화가 잇달아 히트하면서 어느새 우리는 수많은 요리 만화를 접하게 됐다. 그만큼 작품 간에 차별화를 꾀하려는 노력도 치열하게 벌어진 셈이다.대사관 요리사를 소재로 한 <대사각하의 요리사>는 차별화에 성공한 케이스로 언급할 만하다. 외교관과 요리사 양쪽을 다루고 있는 만큼, 세계 각국의 식문화와 국제 정세 양쪽을 균형 있게 다루는데 성공한 것이다. 코우의 파트너로 일식 요리사가, 제자로 중식 요리사가 배정되는 중반 이후에는 일본프랑스 중국 삼국 요리의 향연이 펼쳐지기도 한다.단점이 있다면 외교적 현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일본 중심적이라는 것인데, 어차피 어떤 만화에든 한계는 있는 법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읽을 수 있다면 <대사각하의 요리사>는 분명히 미덕과 재미를 지니고 있다. 일본 외무부 내의 이해관계나 파벌 싸움 같은 이야기도 현실적인 재미를 주고 있다.김남훈·만화 칼럼니스트 kkamakgu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