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기본은 변하지 않아요’

노기호 LG화학 고문(60)은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교수의 꿈을 키우던 노 고문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취업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1973년 LG화학(당시 락희화학공업사)에 입사해 기획부장, 신사업담당 이사, 나주공장장, 중국본부장, LG다우폴리카보네이트 사장 등을 차례로 거치며 30년 넘게 ‘LG맨’으로 살았다. 2001년 LG화학 사장에 올라 그룹의 ‘간판 최고경영자(CEO)’로 맹활약을 펼치다 2005년 3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퇴임 직후부터 초빙교수로 모교 강단에 서고 있다. 먼 길을 돌아 결국 교수의 꿈을 이룬 셈이 됐다.노 고문이 강의하는 과목은 ‘기업경영’이다. 공대 대학원생과 학부 고학년생 대상이다. 공대생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을 생생한 사례 중심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전략 회계 생산관리 경영혁신 국제화 등 다양한 주제를 토론하고 LG화학 공장과 연구소도 직접 방문한다.“첫 학기는 강의 준비가 어려웠어요. 1시간 강의하려고 1주일 동안 준비하기도 했지요. 이젠 요령을 터득해 한결 수월해요. 다음 학기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술의 융·복합이 활발해지면서 테크노 CEO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더 많은 이공계 경영인이 나와야 해요.”노 고문은 경영학 박사과정에도 등록했다. LG화학에서 체험한 ‘실전’과 학문적 이론을 접목하면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그가 경영자의 길을 아주 접은 것은 아니다.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 실전에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다.최근 노 고문이 관심을 갖는 주제는 리더십이다. CEO의 리더십은 기업을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한다. 과연 리더란 무엇일까?“리더는 연속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이지요. CEO도 대통령도 마찬가지에요. 옳은 의사 결정을 하려면 통찰력이 있어야 해요. 이건 타고나기도 하지만 길러지기도 하죠. 물론 전략적 사고와 논리적 분석력도 바탕이 돼야죠.”노 고문은 학생들에게 ‘리더십의 교과서’로 〈겅호!〉를 권한다. 한두 시간이면 읽을 만큼 분량이 적고, 메시지가 명쾌하기 때문이다. 그는 2001년 LG화학 사장 취임 직후 이 책을 모든 팀장급 직원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고,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리더십에 관한 수많은 책이 나왔지만 큰 맥락은 같다는 게 노 고문의 생각이다.“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4가지라고 봐요. 구성원들이 일관되게 좇아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유능한 인재를 길러야 해요. 주류와 비주류를 아우르는 갈등의 조정, 자발성을 끌어내는 칭찬과 격려도 필수죠. 이런 리더십의 기본 자체는 변하지 않아요.”<새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십>, <인듀어런스>, <새클턴의 위대한 항해>도 노 고문의 애독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모두 영국의 남극 탐험가 어니스트 새클턴의 리더십을 다룬 책들이다. 1914년 새클턴은 27명의 대원을 이끌고 세계 첫 남극대륙 육로 횡단에 도전한다. 그러나 탐험대는 배가 난파되면서 차가운 얼음 바다에 고립된다. 모두가 탐험대의 전멸을 예상했지만, 새클턴은 놀랍게도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며 637일 만에 27명의 대원을 모두 이끌고 귀환했다. 탐험대는 새클턴의 뛰어난 리더십 덕분에 팀워크와 희생정신, 서로에 대한 격려를 잃지 않고 극한의 생존 조건을 극복해 낼 수 있었다.“새클턴의 경우도 리더의 4가지 역할이 그대로 적용되지요. 진정한 리더는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나는 법이죠.”물론 리더십의 기본은 그대로지만, 환경 변화에 맞춰야 하는 부분도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화와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의사 결정의 ‘스피드’가 강조된다. 또한 화학 업체는 ‘지속 가능 성장’으로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