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관가의 연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여느 해 연말처럼 차분하고 포근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술렁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공무원연금 개혁 때문이다.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지난달 30일 국회 상임위(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을 때 ‘뭔가 해냈다’며 좋아하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사실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가 공론화된 것은 오래됐다. 올 초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연내 국민연금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예고됐던 사항이다. 유 장관은 “국민연금을 개혁하자면 공무원들부터 솔선해야 한다”며 동반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었다. 그리고 이 예고는 국민연금 개혁안의 국회 통과가 임박하면서 현실화되고 있다.이미 개혁안의 대강이 나와 있다. 행정자치부 내 ‘공무원연금제도 발전위원회’가 만든 것이다. 위원회는 지난 4일 그동안의 작업 결과(개혁안)를 행자부에 제출했다.큰 틀은 국민연금처럼 ‘더 내고 덜 받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현재 ‘퇴직 전 3년간의 월평균 보수’의 최대 76%까지 지급하고 있는 연금 지급률을 25∼50%로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다.지급액의 기준 자체를 ‘퇴직 전 3년간 평균 보수’에서 ‘퇴직 전 10년’ 또는 ‘퇴직 전 20년’ 등으로 떨어뜨리는 방안도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연금 수령 시기는 국민연금처럼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늦추고, 보험료율도 현재 17%(공무원 8.5%+정부 8.5%)에서 5년마다 1%포인트씩 올려 27%까지 올리는 방안도 함께 제시됐다. 단, 이런 개혁안들은 퇴직자, 현직자, 신규 임용자들에게 각각 다르게 적용할 계획이다.위원회는 신규 임용 공무원들을 아예 국민연금에 가입시켜 장기적으로 공무원연금을 없애는 방안도 함께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공무원, 개혁 방침에 반발 움직임정부는 이런 개혁안을 토대로 연말까지 정부안을 확정해 발표하고 공청회 등을 열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만든 뒤 내년 상반기에 국회에 낸다는 계획이다.이런 개혁안의 대강이 공개되면서 공무원 사회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공직 20년이 되어가는 한 하위직 공무원은 “개혁안을 만드는 공무원들은 테러를 당하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다른 공무원은 “2000년 연금개혁 때도 많은 사람이 손익을 계산해 공직을 떠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공직에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번에 또다시 그런 위기가 온 것 같다”고 불안해했다.공무원노조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을 저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9일 광화문에 모여 “연금을 절반 수준으로 삭감하려는 정부의 계획은 150만 공직자에 대한 테러“라고 주장하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특수직역연금 개혁을 강행할 경우 현 정권의 퇴진 운동과 함께 태업이나 총파업까지 강행하겠다”고 말했다.정부는 고심하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하려면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특수직 연금을 그대로 둘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만성적 적자인 공무원연금의 재정 상태는 더 이상 개혁을 미룰 수 없게 만들고 있다. 1960년 도입된 공무원연금은 1993년 처음으로 65억 원의 적자가 발생한 이후 올해 그 폭이 6700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 돈은 모두 국민 세금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적자폭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된다. 2010년 2조1430억 원에 이어 △2020년 8조9890억 원 △2040년 24조150억 원 등의 적자가 예상된다.그렇다고 개혁을 강행하기도 쉽지 않다. 섣불리 나섰다가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할 경우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사상 초유의 행정 공백 사태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남의 머리(국민연금) 깎는 데는 이골이 난 공무원들이 ‘제 머리(공무원연금)’는 얼마나 잘 깎을지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