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고 의연하게 승부할 겁니다’

“태산이 움직이듯 뚜벅뚜벅 우리의 갈 길을 가겠습니다.”지난 9월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진로 본사 사장실에서 만난 하진홍 진로 사장은 의연한 모습이었다. 사실 두산의 소주 ‘처음처럼’의 상승세는 하사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두산의 월간 단위 전국 시장점유율이 지난 1월 5.3%에서 7월 10.1%까지 상승했다. 반면 진로의 경우 같은 기간 55.4%에서 53%로 소폭 하락했다. 특히 지난 6월에는 50.3%까지 떨어졌지만, 7월 들어 예전의 시장점유율을 회복하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하사장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19.8도짜리 저도주 ‘참이슬 후레시’(fresh)를 내놓으며 맞대응에 나서는 한편, 지금도 전개 중인 대대적인 반격전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하사장은 진로를 인수한 하이트맥주에서 잔뼈가 굵은 최고경영자다. 하이트맥주는 만년 2위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기어코 OB맥주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선 저력의 기업이다. 그래서일까. 하사장은 어지간한 위기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측근들의 귀띔이다. 실제로 달변은 아니지만 그의 말투 속에는 강인함이 묻어났다. 그는 “경쟁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경쟁이야말로 성장의 원동력”이라며 치열한 전투에서 이기고야 말겠다는 강한 집념을 숨기지 않았다. 도대체 하사장은 두산의 돌풍을 어떻게 잠재우겠다는 것일까.진로소주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 브랜드가 드문 게 사실입니다만 최근에는 시장지배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습니다. 요즘 심경이 어떻습니까.사업을 하면서 경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경쟁 없는 성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느 상황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올 들어 예년에 없던 경쟁구도가 형성됐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저는 결코 (경쟁구도를) 어렵게 생각하거나 갑작스럽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준비하고 있고, 의연하게 대처해나갈 것입니다.두산의 소주 시장점유율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진로가 초기대응을 안이하게 하지 않았냐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회사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초기대응을 안이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진로는 화의다 법정관리다 하면서 8년 가까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와중에 우리는 더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기업이 신제품을 내놓으니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린 것 같습니다.최근 ‘참이슬 후레쉬’라는 신제품을 내놓은 건 맞대응 성격이 강한 것 아닙니까.단순히 경쟁사의 신제품에 대응하기 위해 급조한 제품은 절대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는 또 다른 뭔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제품 출시계획이 있느냐고 재차 묻자 소비자의 취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신제품을 내놓기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이 정도 품질이라면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하에 리뉴얼 제품을 내놓은 겁니다.도수를 19.8도로 내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사실 두산이 20도 소주를 내놓기 전에 우리가 먼저 20.1도 소주를 내놓았습니다. 또한 20.1도로 내린다는 계획도 이미 오래전 세워놓았던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웰빙 제품을 요구하고, 우리는 충실하게 따르고자 한 것입니다.신제품의 특징을 설명해 주십시오.참이슬의 강점인 깔끔하고 깨끗한 맛을 유지하면서도 좀더 부담 없는 소주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했습니다. 이번 신제품은 청정지역인 지리산 기슭 및 남해안에서 자라는 3년산 천연 대나무를 1,000도 고온에서 12시간 동안 정성껏 구워 만든 숯으로 소주의 원료가 되는 주정과 용수를 깨끗하게 정제해 제조했습니다.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보면 됩니다. 라이트한 맛을 선호하는 신세대는 ‘참이슬 후레쉬’, 중장년층은 ‘20.1도 참진이슬로’, 그리고 헤비 유저들은 ‘25도 진로골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사장님께서는 줄곧 하이트맥주에서 일했습니다. 소주와 맥주영업의 다른 점이 있던가요.예전에는 소주와 맥주 모두 대중의 사랑을 받는 술이라고 여겼습니다. 막상 여기 와서 보니 소주는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술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맥주가 가볍게 한잔 마시고 즐기는 술이라면, 소주는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고 할까요.진로가 하이트맥주에 인수되면서 직원들의 마음을 추스르는 데 허점이 있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없지 않습니다.솔직히 우리 회사의 문서가 통째로 외부로 유출된 적이 있습니다. 추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그래봤자 직원들간에 위화감만 조성될 것 같아 ‘앞으로 그러지 말자’며 넘어갔습니다. 유례 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직원들을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회사 사정을 모두 공개하는 편입니다. 이를 통해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더 이상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자신합니다.두산측은 진로가 비방광고를 한다면서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합니다.(진로는 두산 제품이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등의 광고를 내보냈다.) 법적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우리는 정도를 걷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태산이 움직이는 것처럼 뚜벅뚜벅 우리의 갈길을 걸어갈 것입니다.두산의 상승세를 ‘찻잔 속 태풍’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시장장악력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십니까.경쟁사 제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다만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소주뿐만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에서 승리의 결정적 요인은 제품의 ‘퀄리티’라고 봅니다. 물론 마케팅의 역할도 중요합니다만 더 중요한 것이 ‘퀄리티’라고 직원들에게 늘 강조합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마케팅 자금의) 여유분이 상당하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만 다시 한 번 드립니다.진로재팬의 매각을 추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진로재팬은 수익을 많이 내는 알짜기업입니다. 하지만 이제 성장이 주춤해졌다는 판단입니다. 일본시장에서 소주업체간 경쟁이 훨씬 치열해졌기 때문입니다. 그전에는 소주업계와 맥주업계가 구분됐었는데, 지금은 영역구분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전국 단위의 유통망을 갖고 있는 맥주회사들이 소주사업에 속속 진출하고 있습니다. 올 들어 아사히가 소주를 직접 생산하고, 삿포르는 소주회사를 인수했습니다. 따라서 아직 최종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직접판매하는 것보다) 일본회사의 유통망을 활용하는 것이 소주 수출을 늘리는 데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2006년은 진로가 하이트맥주와 한식구가 되면서 새로 출범하는 원년입니다. 진로의 기업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갈 계획인가요.‘신뢰’가 넘치는 회사를 만들 겁니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 등이 원활해지면 ‘신뢰경영’은 자연스레 이뤄질 것입니다. 그리고 직원들과 대화할 때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열정을 가져달라’, ‘책임감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이것들이야말로 진로가 법정관리 등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도 한국 대표 주류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신뢰와 열정과 책임감이 넘치는 기업문화를 구축할 것입니다.진로의 중장기 전략이 궁금합니다.우선은 내년에 기업공개를 합니다. 올해 판촉비를 많이 쓰고 있지만 기업공개하는 데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닙니다. 길게는 오는 2010년까지 전체 매출의 30%를 해외에서 벌어들일 것입니다(진로의 현재 해외매출 비중은 10% 정도다).정리=권오준 기자 / 사진=서범세 기자하진홍 진로 대표이사1949년생. 67년 진주고 졸업. 71년 경상대 농화학과 졸업. 73년 서울대 대학원 식품공학과 졸업. 88년 서울대 대학원 농학박사. 72년 조선맥주 입사. 86년 조선맥주 이사. 90년 조선맥주 전무. 2001년 하이트맥주 부사장. 2003년 하이트맥주 사장(생산담당). 2005년 진로 대표이사 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