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물을 배출하며 역사상 큰 획을 그은 500년 명문가들은 요즘 기업환경에서 요구되는 ‘지속가능한 경영’의 모범과 함께 공통적으로 5가지의 덕목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명가의 토대를 닦은 ‘가문의 기획자’가 존재한다. 둘째, 자녀교육에 앞장선 ‘오디세우스형 CEO’가 있다. 셋째, 자녀들에게 등불이 되는 원칙이나 지침, 철학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넷째,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 대한 배려의 철학이 있다. 다섯째, 부(富)와 권력이 명가의 필수요소지만, 제일의 목표로 추구하지 않는다.흔히 명문가 하면 돈과 권력을 소유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돈과 권력은 명문가 조건의 극히 일부분으로 충분조건도 아니다. 역사상 수많은 부자와 권력자가 있었지만 지배계급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하지 못할 때는 가차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래서 지배계급이라 해도 모두가 명문가로 불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리세즈 오블리주’(Richesse Oblige), 즉 부자로서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한순간에 위기에 처하게 된다. 진정한 부자, 진정한 대기업의 리더십은 리세즈 오블리주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수백년 내려온 명문가의 비결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가문경영 그 자체가 오늘날 경영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가문의 기획자는 ‘가문주식회사’의 최고경영자(CEO)다. 가문의 CEO가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명문가로서의 위상과 명성이 달라질 수 있다. 수백년간 명문가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은 기업환경에 비유하자면 명품브랜드의 명성을 시대변화에 적응시키고 선도하면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한 것이다.인류 역사상 최초의 ‘가문CEO’는 오디세우스라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가 지은 <오디세이아>는 전쟁과 인간사를 그린 대서사지만 여기에는 명가의 조건과 리더십의 덕목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알려진 대로 명문가의 이타케의 왕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 참전하면서 아들 텔레마코스를 친구인 멘토(Mentor)에게 부탁하고 아들을 교육시켜 줄 것을 요청한다. 텔레마코스는 부친 부재의 20년 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아버지의 지혜를 닮아간다. 오디세우스는 아내 페넬로페에게 아들의 얼굴에 수염이 자랄 때까지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하면 재혼을 하고 왕국은 아들에게 넘겨달라고 부탁한다. 이 때문에 오디세우스가 돌아오지 않자 구혼자들이 몰려들어 페넬로페를 괴롭혔지만 이에 흔들리지 않고 지혜로 버티며 20년 동안 가정과 왕국을 지켜낸다.여기서 한 가정을 경영하는 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위기시에 위기관리를 위한 지침을 내리고 아들은 충실하게 따른다. 특히 아버지는 자녀교육을 위해 멘토를 두게 되는데, 이는 요즘 강조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 덕목이다.우리나라의 500년 명문가에도 오디세우스 같은 ‘가문의 기획자’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 가문CEO는 후손에게 귀감이 되고 원칙을 제시한다. 오늘날 경영학과 리더십학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가문경영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오디세우스와 같은 현명한 CEO를 둔 가문은 수백년 동안 도전과 응전을 벌이면서 가문의 영광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킬 수 있었다. 오늘날 세계적 기업들의 공통점으로 꼽히는 최고의 CEO, 최고의 인재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면 이들 명문가의 원동력 역시 위기관리에 나섰던 오디세우스와 같은 CEO와 텔레마코스와 같은 지혜로운 자녀들이라고 할 수 있다.오디세우스에서 볼 수 있듯이 가정도 경영의 관점에서 관리할 때 위기관리와 아울러 미래에 대비하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다. 자녀도 마찬가지로 기업의 임직원을 관리하듯이 인재경영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500년 명문가들은 온갖 위험요소를 이겨내고 고급인재를 배출하면서 가문을 유지해 왔다. 따라서 국내외 명문가들이 5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비결을 분석해보면 오늘날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요구되는 ‘위기관리’ 경영과 생존철학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최효찬·글쓰기&자녀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