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를 군사도시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특히 북한과의 지리적 근접성 때문에 이런 인식이 더욱 강했다.하지만 이제 파주는 더 이상 회색빛 군사도시가 아니다. 최첨단 LCD를 생산해 내는 차세대 클러스터로 솟아올랐다.LG필립스LCD(이하 LPL)의 부지는 무려 51만평이다. 이보다도 넓은 59만평이 LPL의 협력업체를 위해 마련됐다. 40만평의 선유지구와 19만평의 당동지구에 입주를 눈앞에 둔 업체만도 30여개다.LPL은 디엠에스와 파이컴 등 30개 회사가 이미 파주 입주 계약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들 업체 가운데 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곳은 꽃피는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공사 부지가 꽁꽁 얼어 공장 건설이 어렵기 때문이다.세정장비 등을 만드는 디엠에스의 한 관계자는 “파주의 사무실 입주 계약을 마쳤다”며 “LPL의 협력업체로 최종장비를 유지, 보수하고 애프터서비스를 철저히 하기 위해 파주에 상주하는 직원을 늘렸다”고 설명했다.99년 설립된 디엠에스는 회사 설립 이듬해부터 LCD 기술력으로 화제에 올랐다. 2000년 기존 TFT-LCD 공정용 세정장비 크기를 3분의 1로 축소시킨 고집적세정장비(HDC)를 개발했다. 이어 2001년에는 셀(Cell)공정 주요장비인 자외선 경화기(UV큐어) 개발을 이끌었다.파주에 공장 짓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업체의 부러움을 사는 회사도 있다. 한국SMT와 파주전기초자, 탑엔지니어링 등은 일찌감치 파주에 공장을 지었다. LCD 클러스터의 초석을 다지며 더 많은 회사의 파주 입주를 반기고 있다.파주 LCD 단지에 자리 잡은 대표적인 회사로는 한국SMT를 꼽을 수 있다. LPL의 협력업체인 한국SMT는 지난해 9월 파주에 둥지를 틀었다.한국SMT는 LCD모니터와 LCD TV용 인쇄회로기판(PCB) 어셈블리를 생산, 공급하는 회사다. 한마디로 LCD 구동을 위한 핵심회로 부품을 만들고 있다.구자섭 한국SMT 사장은 “우수한 표면실장기술(Surface Mounting Technology)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하겠다”며 “LCD 강국을 이루는 데 밑거름이 되겠다”고 설명했다.한국SMT는 지난해 중국 난징에도 현지법인을 설립한 저력 있는 회사다. 중국 난징의 LPL 공장에 제품을 공급해 올해 중국에서만 6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전천균 한국SMT 차장은 “2006년 파주에서 올릴 매출액은 32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파주전기초자(PEG) 역시 회사명 그대로 파주 LCD 산업단지에 위치한 회사다. LPL과 일본 NEG의 합작법인인 파주전기초자는 파주 당동지구를 터전으로 삼았다. LPL이 40%, NEG가 60%를 각각 출자해 자본금 360억원으로 출범했다.파주에 세운 공장은 전공정을 거친 LCD 유리원판을 가공한다. 파주전기초자를 통해 LPL은 핵심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아울러 물류비용 절감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경북 구미에 본사를 둔 LCD장비전문업체인 탑엔지니어링도 지난해 6월 파주에 공장을 세웠다. 회사 자체는 93년 문을 연 13년 역사의 기업이다. 탑엔지니어링은 일찌감치 95년 LCD장비 개발에 진출했다. 지난해에는 LPL과 함께 LCD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파주에도 공장을 만들었다.박창순 탑엔지니어링 전무는 “탑엔지니어링은 LCD 공정 장비인 초정밀 액정토출장비(Dispenser) 전문기업”이라며 “초정밀 반도체 장비의 국산화 개발 성공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아 왔다”고 말했다.사실 2002년까지 만해도 LCD디스펜서(LCD액정주입장치)의 국산화율은 0%였다. 불과 1년 후에는 국산화율이 0에서 100%로 뛰어올랐다. 그야말로 ‘신화’를 쏘아올린 것이다. LPL과 탑엔지니어링이 공동으로 국산 장비를 개발한 것.LPL은 탑엔지니어링이 시제품을 개발하면 원재료를 제공하며 검증작업을 돕겠다고 했다. 공동개발을 다짐한 두 회사는 2002년 한배를 탔다. 탑엔지니어링과 LPL 직원들이 함께 시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디스펜서 개발 테스트를 위해 필요한 액정은 고가 재료다. 한회 시험 비용에만 1,700만원이 들었다. 하지만 이 두 회사의 직원들은 성공 제품이 나올 때까지 ‘100회’ 시험을 거쳤다.끝없는 도전에 결국 국산 제품을 눈앞에 보게 됐다. 국산 장비는 일본산보다 가격이 30% 저렴하기 까지 하다. 두 회사가 공동 개발한 LCD디스펜서는 오차범위에서도 혁신을 이뤘다. 약 0.3%의 오차범위로 수백억 원 이상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두고 있다. 또 외국 제품에 비해 신속하게 기술을 지원, 제품생산 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이제는 파주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리적, 시간적 리스크를 대폭 덜어냈다.파주가 LCD 클러스터로 뿌리 내리면 어떤 효과를 거둘까. 일단 3만5,000~4만개 안팎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현재 약 25만명인 파주 인구 또한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08년이면 지금의 2배인 5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4만개 안팎 일자리 창출지역 개발의 기본 중 기본인 도로 자체도 번듯해 졌다. 지난해 9월 파주시는 자유로와 통일로를 잇는 군도 3호선의 이름을 바꿨다. 바뀐 이름은 바로 ‘LG로’다. 비포장이던 2차선 길은 이제 4차선 포장도로가 됐다.파주 상권과 지역 경제가 활황을 맞을 것이라는 예상도 뒤따른다. 파주지역의 땅값도 뛰어 올랐다. 4년 전까지만 해도 파주지역의 논밭은 평당 15만원 정도였다. 지금은 10배 가량 오른 수준이다.LCD 클러스터는 파주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LCD 산업단지와 산ㆍ학 협력을 맺은 두원공대의 개교는 산학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밖에도 국제관광대학과 신흥대학 파주캠퍼스가 설립, 학생을 기다리게 된다.파주 LCD 산업단지가 거둬들일 매출액도 기대를 뛰어 넘는다. 경기개발연구원은 ‘경기지역에 미치는 파급효과분석’에 따르면 LPL이 위치한 파주LCD단지(월롱지구)의 설비투자액은 5조3,000억원, 예상매출액은 3조원이다.이뿐 아니다. 협력업체가 들어설 선유지구의 설비투자액은 4,324억원이며 예상매출액은 9,992억원으로 분석했다. 또 다른 협력업체 지구인 당동은 설비투자액 2,764억원, 예상매출액 1,564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분석 자료에는 업체 모두가 포함되지는 않아 실제 예상매출액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경기개발연구원은 파주 LCD 클러스터의 전·후방 연관효과 또한 분석했다. 월롱지구와 당동지구의 총 생산유발액은 15조3,158억원, 총 부가가치 유발액은 6조1,094억원으로 조사했다. 여기에다가 총 수입유발액은 8,505억원, 총 노동유발인원은 9만835명으로 봤다. 그야말로 ‘초대형’ LCD 클러스터가 파주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