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집하면 왠지 어둡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음습함과 무거운 기운이 공기를 가른다. 대부분은 음침하고 좁은 쪽방 한가운데에 한복을 입고 점술도구 앞에 앉아 있는 역술가를 떠올린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 눈에는 굳이 돈 들여 찾고 싶은 공간은 아니다. 오죽하면 ‘점집 분위기’란 말까지 생겨났을까.이랬던 점집이 요즘엔 변신 중이다. 그것도 화려한 대변신이다. 개축이기보다 신축에 가깝다. 일단 손님 곁에 한층 다가섰다. 무엇보다 서울 미아리로 대변되는 점술 집성촌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가시적이다. 시너지보다 차별화를 무기로 내세운다. 대신 뻗어나가는 방향은 무차별적이다. 어디든 수요만 있으면 달려간다. 요즘 인기 있는 곳은 강남ㆍ신촌ㆍ종로로 요약된다. 특히 신촌의 이화여대 앞이나 종로통이 새로운 점술 유망상권으로 부각 중이다. 곧 압구정 점술밸리를 따라잡을 태세다.신개념 점집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밝고 가벼우면서 탁 트인데다 세련된 인테리어는 기본이다. 음침하고 쾌쾌한 분위기는 ‘No’다. 과거의 폐쇄적인 공간활용은 금기다. 편안함을 위해 공간배치를 널찍이 시도한 곳이 많다. 점술소품만 해도 위협적이지 않다. 동서양의 온갖 점술도구가 손님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이른바 ‘퓨전화’다. 마케팅은 공격적이다. 그간 앉아서 손님을 기다렸다면 이제는 손님을 위해 발로 뛰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인터넷 활용은 필수다. 시장규모 2조원대의 주역들답게 ‘디지털 점쟁이’를 슬로건으로 내건 역술인이 많다.신개념 역술원은 가격대부터 차별적이다. 어차피 대중화가 목적이었기에 가격 자체가 대중화됐다. 박리다매가 노림수다. 싸게는 4,000~5,000원에서 비싸봐야 5만원 안쪽이다. 여기서 5만원은 유명 역술인으로부터의 최고급 풀코스(사주+애정+금전 등) 상담을 뜻한다. 타로카드 질문 하나가 제일 싼 편이다. 사주카페라면 평균 1만원 안팎이다. 2명이 보는 궁합은 2만원부터다. 나이 따라 차별하는 곳도 적잖다. 25세까지 1만원이던 게 그 이상은 2만원을 받는 식이다. 아무래도 질문ㆍ응답수준과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전문역술원은 가격이 좀 세다. 보통 3만~5만원대다.점집 대변신의 선두주자는 ‘사주카페’다. ‘점술+음료’가 섞인 퓨전 지향의 특화 카페다. 원조는 89년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문을 연 ‘사주공간’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17년째다. 로데오거리의 사주카페 상권은 ‘점술밸리’로 불리는 압구정의 대표상권 중 하나다. 현재 주변상권까지 확대하면 20여개의 사주카페가 영업 중이다. 신기용 솟대(사주카페) 사장은 “이제는 테마 없이 차만 마시는 카페는 경쟁력이 없다”며 “사주카페는 특별한 재미를 찾는 신세대의 입맛에 맞춘 것”이라고 평가했다. ‘점술밸리’에는 사주카페만 있는 게 아니다. 차별적인 서비스와 점술도구를 내세운 전문역술원도 상당수 정착했다. 사주카페와 시너지 효과를 내는 건 물론이다. 상호경쟁ㆍ견제로 고객만족도를 높인다. 대표적인 게 압구정 현대로데오상가 1층의 점집촌. 사주부터 타로ㆍ보석ㆍ구슬ㆍ룬카드 등 동서양을 대표하는 이색적인 점술방식이 총동원된다.사주카페는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압구정이 1세대라면 이화여대 앞(신촌)과 종로는 최근 붐 업된 2세대 상권이다. 신개념 점집의 세포분열은 조용하되 꾸준하다. 노림수는 두 가지다. 점술의 저변확대와 수익모델 향상이다. 희귀한 원석 인테리어로 유명세를 떨친 신종 테마카페 토탈오즈스타닷컴은 얼마 전 압구정점을 폐쇄했다. 대신 종로ㆍ대학로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홍순혁 토탈오즈스타닷컴 마케팅팀장은 “압구정은 잘될 때는 성황인데 손님이 끊어지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며 “부침 없이 꾸준한 매출을 일으키자면 변신이 불가피했다”고 전했다. 이화여대 앞의 부각도 주목거리다. 사실 이화여대 앞은 압구정과 원조경쟁을 다툴 만큼 역사는 오래됐다. 하지만 상권화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대아ㆍ에로스ㆍ홀림ㆍ퍼플레인 등이 유명하다.21세기형 신개념 점집에는 주인들도 변했다. 이제는 정형화된 무당 모습이나 나이 든 역술인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디지털시대의 점술가는 겉모습과 이력 자체가 특이하다.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가 수두룩하다. 명문대 출신에 몇몇은 의사ㆍ교수 등의 프로필을 갖추기도 했다. 외국인 고객을 위한 ‘영어 전용 카운슬러’도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치열한 고객유치전에서 이기기 위한 다양한 무기는 필수다. 주가ㆍ유가 예측 등 자신만의 특화 분야를 내세운 이도 적잖다. 가령 이수 에스크퓨처닷컴 사장은 외환딜러 출신답게 주식 장세전망에 발군의 실력을 자랑한다. 신세대 고객의 눈길을 끄는 데는 옷이나 머리모양을 특이하게 하는 게 최고다. 역술인도 마찬가지다. 개량한복을 입거나 머리를 물들인 젊은 역술인이 많다.고객층 역시 변했다. 시대상황을 반영해 한층 젊고 다양해졌다. 주력은 20~30대다. 사주카페나 특화된 전문역술원이나 고객 차이는 별로 없다. 물론 열에 아홉은 여성고객이다. 특이한 건 대개가 단골손님 위주로 영업이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심심풀이 땅콩식의 뜨내기 고객은 별로 없다. 주유림 사주본가 솔브 사장은 “사전에 예약해 찾아오는 손님이 90% 이상”이라며 “차만 마시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몇몇 사주카페는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된다. 고객의 차별화는 상권에 따라 달라진다. 이화여대 앞은 여대생이 주류다. 반면 압구정은 30~40대 여성이나 남성사업가도 적잖다. 솟대 신사장은 “뭔가 결정을 내리는 일이 많은 젊은 남성사업가의 상담문의가 꾸준하다”며 “돈이 흐르는 동네답게 압구정은 투자문의도 많다”고 전했다.점을 푸는 도구는 다양하고 세분화됐다. 전통적 방법은 글(책)로 푸는 사주와 몸으로 읽는 점 등 둘로 나뉜다. 내림굿을 받은 무속인이 점을 친다면 사주는 정통 명리학으로 푼다. 여기에 최근에는 타로카드로 상징되는 다양한 신종기법이 가세했다. 육효ㆍ보석ㆍ찻잎ㆍ수정구슬ㆍ룬카드ㆍ자미두수ㆍ구궁 등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숫자를 이용하는 주사위ㆍ동전점은 게임처럼 즐기며 점을 칠 수도 있어 젊은이들에게 인기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건 타로점이다. 타로는 동양의 주역과 비슷한 서양점술이다.사업성을 검증받은 몇몇 사주카페는 프랜차이즈화를 고려하고 있다. 잠재고객이 충분한데다 입지선정만 괜찮으면 짭짤한 수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저울질 단계다. 섣불리 출점경쟁을 벌이기보다 요모조모 따져볼 게 많아서다. 그도 그럴 게 점술업계 최초로 프랜차이즈를 시도했던 J사의 행보가 최근 주춤하고 있다. 한때 5개까지 점포가 늘었지만 지금은 본점만 남아 있다. 겨울을 제외한 비수기가 너무 긴 게 단적인 악재다. 점술로 특화된 테마빌딩 건립 붐도 수그러들었다. 사주백화점을 지향하며 한때 공격적인 분양마케팅을 펼친 H쇼핑몰은 최근 방향을 토속음식점으로 틀었다. 시행사 관계자는 “시간이 갈수록 문의가 줄어드는데다 다른 입주자들까지 점집의 입점을 꺼려해 방향을 바꿨다”고 밝혔다.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