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미아리 점성촌과 압구정 점술밸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점술타운이다. 하지만 이 두 지역은 분위기와 손님, 영업형태 등 모든 게 다르다. 신구 점술문화를 대변하는 두 지역을 다녀왔다.미아리, 40년 전통의 최대 점성촌서울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역에서 길음동 방향으로 100m 정도 가면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역술인 마을이 있다. 고가도로 양편으로 70여곳의 역술원이 몰려 있는 ‘미아리 점성촌’이 그곳이다.이곳의 특징은 역술인 전원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이다. 애초부터 시각장애인들이 터를 닦기 시작했고 촌이 형성되고 나선 정상인은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더러 이곳의 명성을 업고 역술원을 개원한 정상인들도 있었지만 이곳 사람들의 반발이 심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모두 같은 원리의 점을 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작명, 사주, 궁합, 신수 등 여러 종류의 점을 보지만 원리는 모두 역학에 근거하고 있다. 사주를 대면 점자로 된 만세력을 짚어가며 점괘를 낸다.오전 10시. 점술원을 찾기엔 이른 시간이어선지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점술업계의 최대 성수기라고 할 수 있는 연초인데다 대학입시철인 점을 감안하면 미아리 점성촌의 한산한 풍경은 뜻밖이었다.“이맘때면 점집 앞이 문전성시라고 하는데 다 뜬소리입니다. 다른 때보다 좀 낫긴 해도 손님이 없긴 매일반입니다. 공치는 날도 허다합니다.이곳의 역술인 김상철씨는 미아리점성촌에 손님이 줄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손님이 몰려들어 ‘재미가 좋았지만’ 그 이후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점쟁이들이 알부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일부 부유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겨우 밥벌이를 하는 정도입니다. 복채가 2만~3만원 하는데 하루 평균 손님이 많아야 2~3명이고 없을 때도 많아요. 한달에 50만원도 못 버는 사람도 꽤 있죠.”김씨는 예전부터 다니던 40~50대의 단골들이 없으면 ‘목에 풀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숨을 쉰다. 인터넷에 역술 사이트가 들불처럼 일어나고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사주카페가 우후죽순 들어서는 통에 새로운 손님들이 뚝 끊겼다는 것이다. 점을 보는 인구는 분명 늘었는데 벌이는 오히려 시원찮아졌다는 푸념이다. 특히 비수기인 여름휴가철과 김장철에는 손님 보기가 쉽지 않다.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낡고 초라한 간판을 일정한 규격을 정해 새로 달기도 했고 미신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간판에 ‘도사’니 ‘도깨비’니 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표기도 못하게 했다. 성북구에선 이곳을 ‘집단 점성촌’으로 지정하고 ‘세계 점의 날’ 행사를 유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규격화된 간판은 다시 자율적인 선택에 의한 간판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성북구의 계획은 종교계의 반발로 수포로 돌아갔다.미아리 점성촌의 전성기는 80년대 중반이었다. ‘족집게 점쟁이’들이 즐비하다는 입소문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팔도에서 손님이 줄을 이었다고 김씨는 회고한다. 당시 돈으로 매월 100만~200만원 정도는 거뜬히 벌었다는 것이다. “맹인들은 앞을 보지 못하니까 손님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오로지 점괘에만 의존해 점을 봅니다. 당연히 정확도가 높지 않겠습니까. 그게 소문이 나서인지 손님이 구름처럼 몰렸던 적이 있었죠.”벌이가 줄었지만 미아리를 뜨는 역술인은 거의 없다. 다른 지역에서는 시각장애인에게 가게를 내주는 곳을 찾기 힘든데다 역술원 외에 할일도 마땅찮기 때문이다. 반면 새로 들어오는 역술인도 매우 드물다. 이러다 보니 이곳 역술인들의 평균 연령은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다. 한창때인 80년대 중반 주축 연령대였던 30~40대 역술인들이 그대로 남아 현재는 50~60대가 가장 많다. 70대도 간혹 있지만 40대 역술인은 흔치 않다.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는 재미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김씨는 말한다. 워낙 오래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서로 정이 깊기 때문이다. 앞으로 벌이가 나아질 것이란 희망도 잃지 않았다.“세상이 어려우면 점치는 사람이 많아질 거라는 생각은 오해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경제가 살아나고 이런저런 돈벌이 기회가 생겨야 이걸 할까 저걸 할까 결정하기 위해 점을 치는 겁니다. 올해는 경기가 좀 나아진다고 하니 이곳 사람들 벌이도 한결 좋아지지 않겠습니까.”압구정, 저가ㆍ퓨전ㆍ재미로…‘신나는 점보기’지난 1월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 로데오거리. 어둠이 내려앉자 화려한 명품매장ㆍ고급카페들이 하나둘 불을 밝힌다. 이곳은 ‘젊음의 거리’다. 5분만 바라보면 한국의 대표적인 첨단패션ㆍ유행이 한눈에 들어온다. 젊은이들의 해방구답게 기존 질서나 가치로부터 탈피하려는 신세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퇴근시간이면 몰려드는 인파로 교통정체까지 펼쳐진다. 그래도 압구정은 늘 붐빈다. 로데오거리의 엄청난 흡인력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희귀한 물건을 파는 이색 노점도 수두룩하다. 새로운 문화코드의 실험장 역시 로데오거리다. 로데오에서 뜨면 대한민국 어디서든 돈이 된다고 봐서다. 사주카페로 요약되는 ‘점술밸리’의 성황이 단적인 예다. 압구정에서 시작된 사주카페는 지금 나라 밖 일본에까지 진출해 있다.오후 5시30분. 사주골목으로 불리는 작은 골목길에 들어섰다. 로데오거리 입간판에서 첫 번째 왼쪽 골목이다. 30~40m의 거리에 ‘사주카페’라고 적힌 큰 간판만 3개다. 사이사이에는 고급카페가 줄이어 들어서 있다. 1층은 음식점 아니면 의류가게다. 골목 맨끝의 ‘사주공간’이란 카페에 들어섰다. 2층인데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카페엔 20여개의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외견만 보면 특별히 사주카페란 이름과 어울릴 만한 소품은 별로 없다. 3명의 남자 역술인이 간이의자에 나눠앉아 뭔가 설명하는 게 일반 카페와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아직 퇴근시간 전인데 구석 테이블 2~3개를 제외하면 모두 손님으로 찼다. 두서넛 짝을 지어 찾아온 여성손님이 대부분이다. 모두 20대처럼 보인다. 상담 모습은 진지하기보다 차라리 유쾌하다. 깔깔거리며 웃는 사람도 적잖다.사주를 보겠다고 밝힌 뒤 30여분이 지나 40대 역술인이 다가왔다. “손님이 많냐”고 물으니 “여기가 처음이냐”고 반문한다. 보통 오후 6시를 전후해 9~10시까지 손님이 제일 많다고 귀띔한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웨이터가 다가와 “다음 테이블은 10번”이라고 확인한다.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다. 사주용지를 꺼내더니 “뭐가 궁금해서 왔느냐”고 묻는다. 그러더니 길고 얇은 대나무를 통에 넣은 채 여섯 번을 뽑으라고 한다. 작고 납작한 3개의 나무토막도 6번 흔들어 놓았다. 바로 ‘육효’다. 역술인은 “다른 것도 보지만 개인적으론 육효의 정확성이 제일 높아 선호한다”며 세세한 운세풀이와 설명ㆍ조언 등을 풀어놓는다. 육효는 꽤 구체적이다. 일시까지 짚어주며 운세를 푼다. 가깝게는 일주일 후의 건강상태까지 들려준다. 사주풀이는 30분 정도 진행됐다. 상담료 1만원에 커피 값은 6,000원을 냈다.또 다른 사주카페 ‘솟대’를 찾았다. 카페 한가운데 은은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작은 분수가 있다. 옆엔 솟대가 세워져 있다. 촛불도 곳곳에 켜 있다. 이곳은 내림굿을 받은 무속인과 정통 명리학을 공부한 역술인이 함께 점괘를 풀어준다. 신기용 솟대 사장은 “압구정엔 가게마다 특징이 있다”며 “미아리에 비해 특화된 퓨전카페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단순히 음료를 마시기보다 점 자체를 보기 위해 들르는 20~30대 여성고객이 많다. 때문에 예약제로 운영된다. 신사장 자신도 부인과 함께 26년째 무속의 길을 걷고 있는 전문가다. 물론 카페운영은 경제적으로 ‘푼돈’이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야 무속의 존재가치도 빛을 발하는 법”이라며 “바뀐 문화에 걸맞은 새로운 상황설정을 해두고 싶어 카페를 열었다”고 밝혔다.인근에 위치한 ‘사주본가 솔브’ 주유림 사장은 99년 압구정에 터를 잡았다. 그전엔 이대 앞에서 점괘를 풀었다. 주사장은 “2000년대 초만 해도 성황을 이뤘는데, 지금은 조금 못한 상황”이라며 “경기 따라 손님들의 주머니사정도 달라지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연말연시지만 가족 모두의 운세를 보기보다 필요한 부분만 골라보는 실속파들도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역시 뜨내기보다 단골손님이 많다. 주사장은 무엇보다 실력을 강조했다. 그는 “이화여대 앞이나 종로보다 압구정 쪽이 실력이 더 좋다”며 “지금껏 살아남았다면 실력만은 검증을 받았다는 뜻”이라고 전했다.압구정 점술밸리엔 사주카페만 있는 게 아니다. 전문역술원도 한 축을 차지한다. 메카는 로데오거리 안쪽의 현대로데오상가 1층. 입구에서부터 홍보전단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유명 연예인의 사인과 TV화면, 언론기사 등이 사방에 걸려 있다. 얼추 5~6곳 이상의 역술원이 영업 중이다. 타로카드를 비롯해 샤머니즘 색채가 강한 신비한 소도구들이 진열돼 있다. 운수좋은날ㆍ예언의집ㆍ토정비결ㆍ점술타롯 등이 특히 유명한 가게다. 막 점을 보고 나온 대학생 커플은 “지금껏 세 번 정도 왔는데 꽤 재미있다”며 “친구들끼리 소개로 찾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특히 취업시즌 때 당락 여부나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의 궁합상담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은 보통 3만~5만원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