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따라오고 선진국 문턱은 높습니다. 자칫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습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고의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 기술은 지식재산권으로 보호됩니다. 파이를 독점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보다 효과적인 생존법이 어디 있습니까.”미국 법무법인 맥더모트 윌 앤 에머리의 이인영 변호사는 지식재산권 확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강조했다.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이를 보호하고 경쟁자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보호되지 않는 기술은 무용지물이라는 설명이다.지식재산권은 특허권, 실용신안권, 저작권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가운데서 기업경쟁력과 관련, 핵심적인 권리는 기술과 관련한 특허권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1세기는 첨단기술시대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기업들이 잇달아 국내기업들에 제기하고 있는 지식재산권 침해소송이 특허에 몰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특허가 경제발전에 미치는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신규 출원된 특허 1,000건은 4,460억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주가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특허 취득 공시가 난 종목은 공시 전일과 당일 양일에 걸쳐 평균 4% 정도 가격이 상승했다.근래 벌어지고 있는 특허침해소송은 과거에 없던 일이다. 그만큼 국내기업들이 해외 선진업체에 위협적인 경쟁자로 성장했다는 의미다. 유독 PDP-TV 등 국내기업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전자ㆍ정보통신 분야에 분쟁이 속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도 그 배경이다. 전자산업진흥회의 정재관 특허지원센터 팀장은 “시장성이 보이면 분쟁의 가능성도 커진다”며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그동안 국내기업은 ‘특허’에 대해 안일했던 것이 사실이다. 보호할 기술도 없었고 소송을 당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세계 특허전쟁의 참전국이 될 만한 실력을 갖춘 것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특허전략을 마련하고 노하우를 축적하는 데 역량을 모으기 시작했다. 회사 내에 특허전담팀을 구성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특허정보를 기술개발과 결합, 시장성 있는 아이템을 개발하는 등 특허를 경영에 접목하는 방안도 수립하고 있다. 전담팀의 규모도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현재 250여명 가량인 인력을 2010년까지 450명선으로 늘리기로 했다.중소기업들도 특허에 눈을 뜨고 있다. 삼성전자가 ‘특허경영’을 선포하고 LG전자, 삼성SDI 등이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목도한 것이 컸다. 전자ㆍ정보통신 분야의 벤처기업들이 특허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인식전환의 도화선이 됐다. 반도체장비 전문업체인 미래산업의 경우 일찌감치 특허에 눈을 돌려 이제는 일본의 선두업체들도 경계하는 ‘특허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특허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전환하면서 특허 출원 및 등록이 급증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국제특허도 세계 상위권에 이르렀다. 이 속도라면 5년 내 세계 4위의 특허대국이 될 것이란 기대도 들린다. ‘기술 한국’의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한 것이다.정부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특허청은 특허정보를 제공하고 저렴한 가격에 특허출원과 특허권리를 분석해준다. 또 특허지원단을 구성, 전략적인 연구개발에 투자를 집중할 수 있도록 특허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기존의 특허를 사업화하는 데도 수천억원의 예산을 배정, 이미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하지만 ‘특허 선진국’으로 가기에는 아직도 갈길이 멀기만 하다. 특히 분쟁에 대한 대응력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특허 관련 기관의 관계자는 “최근 벌어지는 일본과 한국의 특허분쟁은 80년대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벌어진 분쟁과 유사하다”며 “일본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일본이 80년대부터 특허분쟁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한 데 비해 우리는 90년대 들어서야 준비를 해 노하우와 경험,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소송을 진행할 전문 법조인은 열손가락에 꼽힐 정도다.이철우 지식재산권 전문변호사는 우리나라의 법학 교육제도에서 전문가 부족의 이유를 설명한다. 학부에서 법을 전공하고 학부 때 사법시험에 합격, 법조인이 되는 상황에서 특허 전문변호사에 필수적인 기술에 대한 이해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이다.하지만 최근 들어 특허 변호사를 지원하는 법조인이 늘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변호사는 “지식재산권 분야는 늘 시장이 있었고 지원자도 많았지만 양성 시스템이 취약해 실제 전문가 배출에 한계가 있었다”며 “특허 분야에 뜻을 두는 변호사가 많지만 이들이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 제 몫을 하기까지에는 최소한 몇 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특허분쟁의 양상은 갈수록 다양화, 지능화되고 있어 분쟁 전문가의 부족은 상당한 고민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전문가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 분쟁에 무방비로 노출된 꼴이다. 심지어 적잖은 중소기업이 권리가 자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쟁 대응능력이 취약해 사업을 포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해외기업의 특허 공세가 거세짐에 따라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사업분야가 유사한 기업들이 공동대응을 하는 등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전자산업진흥회는 지난해 해외전문가들을 초빙해 세미나를 개최하고 올해는 특허분쟁대응 매뉴얼을 내놓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지난해 말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35개의 전자 관련 기업의 CEO들이 모여 ‘특허CEO포럼’을 발족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체계적이고 효과적인 특허전략을 세우는 것도 시급하다. 등록된 모든 특허가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옥석이 있다. 시장파괴력이 있는 특허를 개발하고 이를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중소기업 CEO들의 특허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인식은 못하고 있다”고 한 중소기업 관계자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