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 회장은 ‘근검절약’ 가르침 받아 … 고건 전 총리 ‘공직삼계’

중국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이자 황족이던 유향은 아들이 일찍 관직에 오르자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매사에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말로 아들을 일깨웠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건 전 총리가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할 때 그의 아버지인 고형곤 박사가 ‘누구 사람이라고 낙인찍히지 말라’, ‘남의 돈 받지 말라’, ‘술 잘 먹는다고 소문내지 말라’는 이른바 ‘공직삼계’(公職三戒)를 내려준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아버지는 때로는 자신의 삶 자체를 통해서, 또 때로는 삶의 지혜가 담긴 한 마디의 말로써 자녀의 인생을 안내하고 가르친다. 가업을 물려받은 재계의 총수나 사회 각계의 인사들 중에도 아버지의 가르침 한 마디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례가 많다.이건희 삼성 회장이 37살의 나이로 그룹 부회장에 올랐을 때 이병철 회장(사진)은 그에게 붓글씨로 ‘경청’(傾聽)이라는 글귀를 써주었다.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듣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이 같은 가르침은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이회장은 본인이 직접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하기보다 귀 기울여 듣기만 하고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97년 외환위기 후 구조조정을 벌일 때도 원칙만 던져놓고는 간부들의 보고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삼성에서 전문경영인들이 소신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진 것도 결국 이회장의 ‘경청’하는 경영 스타일이 밑거름이 된 셈이다.구본무 LG 회장이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에게 받은 가장 큰 가르침은 근검절약이다. 구명예회장은 평소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돈을 낭비하고 천하게 쓰는 것을 우리 집에서는 최고 악덕 중 하나로 여겨왔다. 부는 사람의 노력에 따른 결정체이지만 언젠가는 여러 제도를 통해 사회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부는 귀중한 것이지만 집착할 것은 아니다”는 가르침을 자식들에게 강조했다. 구회장은 이 같은 가르침에 따라 신사업을 검토할 때도 낭비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업은 애초에 생각도 못하게 했으며 이것이 LG 정도경영의 밑바탕이 됐다.SK 최태원 회장은 부친 최종현 회장에게 지식의 중요성을 배웠다. “내가 물려주고 싶은 재산은 물적재산이 아니라 지적재산이다. 지식이 있으면 재물은 따라온다. 하나 지식 없이 재물만 있다면 그 재물은 오히려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강조하던 아버지의 말씀을 최태원 회장은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제가 경영수업을 하고 있던 어느 날 회사경영으로 어렵고 힘든 문제를 상의 드리기 위해서 선친을 찾아뵈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다 들으시기도 전에 ‘그건 네 문제구나! 네가 고민하고 네가 풀어라’ 하시면서 또 다른 할말이 없으면 나가보라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스스로 지식을 활용해 길을 찾으라는 깨우침이셨죠.”조석래 효성 회장 3형제의 경우 부친 조홍제 회장이 78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3장의 휘호를 써서 나눠주었다. 장남 조석래 회장에게는 ‘덕을 숭상하면 사업이 번창한다’는 뜻의 숭덕광업(崇德廣業)이라는 글귀를 줬다. 차남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에게는 ‘쉬지 말고 힘을 기르라’는 뜻의 자강불식(自强不息)을, 삼남 조욱래 효성기계 회장에게는 ‘항상 재난에 대비하라’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을 남겼다. 조석래 회장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깨끗한 삶을 지킨 것은 덕을 숭상하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실천한 덕분이라는 평가다.롯데그룹의 후계자로 최근 경영일선에 나선 신동빈 롯데 부회장의 경우 신격호 회장에게 배운 일등주의 정신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 신격호 회장은 자식들에게 항상 “잘할 수 있는 사업, 기존 사업과 연관된 분야를 중심으로 신사업을 구상한다. 그렇지만 글로벌 감각을 접목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가르쳐왔다.최근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두산의 경우 회장 집무실에 선대 박두병 회장의 가르침이 그대로 걸려 있다. 근자성공(勤者成功), 즉 근면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이다. 박용곤 명예회장과 박용오 그룹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등 형제들도 어릴 때부터 근검절약과 근면함을 몸에 익히며 성장했다. “다른 집 아이들보다 내 자식이 더 많은 용돈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선친의 생각에 따라 미국 유학 때도 직접 자취를 하면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