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잃었다’ 통탄 이어져 … 뒤늦게 ‘본래의 역할’ 깨달아

두란노아버지학교를 통해 지난 9년간 19개국 170여곳에서 수만명의 아버지들을 만났다. 대부분은 한국인이지만 일본인, 러시아인 아버지들도 있었다. 그들은 왜 아버지학교 문을 연 것일까.처음 온 아버지들은 대부분 무표정하다. ‘내가 왜 이곳에 왔나’, ‘도대체 뭐하는 곳인가’라며 의아한 얼굴도 많다. 수업이 시작돼 참여동기를 묻는 시간이 오면 대부분이 ‘아내가 가라고 했다’, ‘우리 애들이 등 떼밀어서 왔다’, ‘친구들이 너는 꼭 가야 한다고 했다’ 등 제각기 다른 이유를 댄다. 정작 자신은 이유를 모른 채 타의로 온 이들이 대부분인 것이다.그러나 수업이 진행되고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오기를 잘했다’는 말을 한다. ‘왜 와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는 이도 늘어난다.많은 아버지들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들은 ‘아버지 역할’에 대해서 배운 바가 없다. 누군가와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남편이 돼 자녀를 낳고 자연스레 아버지가 됐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남편의 역할,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가르쳐 준 적이 없었고,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그들의 아버지였다.놀라운 사실은 많은 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그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부장적 가치관이 지배적인, 돈만 벌어다주면 웬만한 잘못은 용납되는 문화 속에서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자라났다.그들의 아버지는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분들이었다. 오직 생존을 위해,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살았다. 때문에 많은 가정이 술과 폭력으로 얼룩지고, 칭찬할 줄 모르는 엄격한 아버지들에게 자녀들은 많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 시대 아버지들은 그런 아버지를 모델로 보고 자랐고, 그것이 바로 이 땅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자란 것이다.산업화시대에는 아버지 세대의 경험과 업적, 나이가 충분히 존중받을 만했다. 그래서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그들의 아버지가 걸어갔던 그 길을 즐기며 갈 수도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상처들을 대물림하고 있기도 했다.그러나 급격한 문화ㆍ가치관의 변화, 정보화 시대의 도래, 황금만능주의, 여권신장, 교육환경 변화 등으로 인해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당황하고 있다.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미 그들의 경험과 나이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본보기로 보고 자란 아버지상은 배척받아 마땅하게 생겼다.정보화 시대에 그들의 경험과 나이는 시대에 뒤떨어진,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 등 자조 섞인 표현이 나오면서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더욱 흔들리고 있다. 어느 사이에 보수주의자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히고 만 것이다.가족들은 이미 가부장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 내게 해준 것이 뭐예요’, ‘아버지가 제게 해주신 것이 뭔가요’라는 말을 한다.아버지학교에 온 아버지들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될 때 가슴을 친다. 자아실현을 위해 사회로 나가는 아내들, 새로운 정보문화로 무장해 있는 자녀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이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정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직장조차 자신을 내칠 때, 그 회한은 극에 달하게 된다.아버지들은 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렸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닫게 된다. 잘못된 음주문화, 성문화, 언어ㆍ육체적 폭력을 미화하는 또 다른 폭력 등으로 인해 아버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음을 알게 된다.그러나 한번 아버지는 영원한 아버지다. 아버지는 온가족을 결속시키는 감독이다. 가족 개개인의 장단점을 살려주고 가족들이 하나 되게 만들어 성장할 수 있도록 결속시키는 감독의 역할을 지닌다. 자녀를 자신감 있게 자라게 하려면 가족으로서의 소속감을 심어주는 것 이상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최고의 선물이자 교육이다.아버지는 사랑이자, 축복의 통로다. 아버지의 어깨에 자녀들의 미래, 우리 민족의 미래가 걸려 있다. 힘을 내야 한다. 새로운 아버지의 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다.